흐릿하고 안타까운 이미지 속의 기억 - <여주경展> 2015.10.07
삶은 촘촘한, 그러나 너무도 모호한 기억/상처로 수놓아져 있다. 산다는 것은 지난 기억을 갉아먹으며 나가는 일이고 기억에 기생하는 일이다. 우리들 모두는 각자 저마다의 완고하고 비밀스러운 기억을 고치처럼 두르고 산다. 그것들은 대개 불투명한 잔상으로 남아있다.여주경의 흐릿하고 안타까운 이미지와 색채는 기...
검고 깊은 그림 - <이재삼展> 2015.09.23
이재삼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자연(나무)을 주목해서 그렸다. 그 특정한 소재인 자연/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
추사 김정희의 글씨와 우성 김종영의 조각 -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 2015.09.23
“불계공졸(不計工拙)과 불각(不刻)의 시(時)·공(空)”이라는 철학적인 제목부터 비범한 이번 전시는 그동안에 있었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와 우성(又誠) 김종영(金鍾瑛, 1915-1982) 두 거장과 관련된 행사 중 가장 이색적인 전시회이다. 130여년의 차이를 두고 서화와 조각...
간소한 그림, 짧은 문장 그리고 어울림 - <노석미展> 2015.09.16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 모든 활동의 총체가 현상일 텐데 이 세계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의미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세게는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 보여 지기 이전에는 아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본다는 것은 오랜 기...
각선에서 느껴지는 모필의 맛 - <강경구 목판화展> 2015.09.16
강경구의 목판화는 모필(毛筆)의 맛이 매력적으로 감촉되며 흑과 백의 단호한 대비, 순간의 단호한 결정으로 판가름이 나는 칼 그리고 매순간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편린, 그 단상이 도상적으로 압축돼 찍혀 나오는 것이었다. 운필의 탄력적이고 자유스러운 흐름과 먹을 다루면서 체득된 흑백구성 그리고 전각으로 ...
70년간 한국 동시대미술의 궤적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 2015.09.15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 전(展)은 광복 70주년을 기념하여 격동의 현대를 살아온 한국인의 삶, 그리고 꿈을 보여주기 위해 기획된 전시이다. 광복 이후 70년이 한국미술에 있어서는 ‘현대미술’의 궤적이라고 볼 수 있는 적당한 영역이기 때문에, 방대하...
선비 없는 시대에 흘려주는 고아한 옛 향기 -<매난국죽 선비의 향기>전 2015.09.09
중증호흡기증후군(SARS)를 사르스가 아닌 사스라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도 메르스가 아니라 머스 정도로 불러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나마 든다. 이름을 잘못 불러주었다고 앙얼(殃孼)을 부린 것인가. 평화(?)롭던 온 나라가 이 메르스 때문에 한바탕 뒤죽박죽이 돼 버렸다. 이정 <순...
신라 미술의 화려한 갈라쇼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2015.09.08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이라는 전시 제목은 왠지 며칠 남지 않은 리움 미술관의 <세밀가귀(細密可貴)> 전시를 연상시킨다. 고려를 방문한 북송대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의 미술을 보고 평했다는 ‘세밀가귀’의 제목은 지금은 “럭셔리”라는 말로 흔히 대변되는 “명품주의”의 한...
한국미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흔드는 <세밀가귀細密可貴>전 2015.09.02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무명천으로 된 흰옷을 입고, 질박한 그릇을 사용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삶과 그러한 성정에서 우러난 미감.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미를 그렇게 떠올린다.꼭 그것이 좋기만 한 것...
공을 들인 정물화 - <권오선展> 2015.09.02
담기 oil on canvas 116.0x91.0cm 2015꽃과 과일은 나무의 축복이다. 한 그루의 나무에 달린 무수한 열매는 빛나는 이미지다. 꽃과 과일은 식물의 정점이다. 흙으로부터 비롯된, 수분과 태양으로 연유한 그 결실은 인간에게 달콤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안겨주는 대상이다. 인류의 기원이 되는...
밥 안에 핀 꽃 - <임영숙展> 2015.08.19
임영숙이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은 모두 밥과 꽃그림이다. 더러 집이 있다. 흰 그릇에 밥/꽃이 가득하다. 뽀얀 백자 사발과 단색으로 마감된 배경은 평면적인데 반해 밥 안에 자리한 꽃은 사실적인 묘사로 무척 환영적이다. 그로 인해 생동감 있게 자리한 꽃이 무척 감각적으로 부각되는 연출이다. 꽃은 마치 밥그릇...
“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 -대전시립미술관, 광복 70주년 한... 2015.08.11
대전 시립미술관에서는 지난 5월부터 광복 70주년 한국근현대미술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전시는 오원 장승업에서 최정화, 이불의 동시대 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뚜렷한 흔적을 남긴 67명의 거장들을 초대하여 격렬했던 지난 20세기를 성찰해...
좋은 목기 보는 안목이 좋은 그림 보는 눈 -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 2015.08.05
인사동 골동거리는 오래된 만큼 별별 구수하고 재미난 횡재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는 화가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물건을 몹시 좋아하는 어느 화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인사동 나들이를 하루걸러 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림 하나를 그려주고 물건을 가져갔다고...
욕망의 쌍곡선은 교차할 수 없고 따라서 유토피아는 없다 - <아키토피아의 실험>... 2015.07.22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4층의 제5전시실(건축 갤러리)에서는 ‘ARCHITOPIA’ 혹은 ‘아키토피아의 실험’이란 제목의 건축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제6전시실에서는 5월부터 ‘우리가 알던 도시’라는 제목의 사진전시회도 계속되고 있는데, 공통된 성격의 두 전시가 한 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세운상가 동영...
‘블링블링’한 맥주병 - 장태영展 2015.07.22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병도 ‘세계 내에 존재’한다. 실용적 차원의 물건인 병은 인간의 육체에 접속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굳건하고 당당한 조각품, 오브제이기도 하다. 나는 병이 지닌 완벽한 대칭의 형태와 견고한 물성에 매료된다. 병 자체만을 단독으로 설정해 그린 모란디의 정물화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