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매난국죽 선비의 향기전
전시기간 : 2015.6.4.-2015.10.11.
전시장소 : 서울 동대문 DDP
중증호흡기증후군(SARS)를 사르스가 아닌 사스라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도 메르스가 아니라 머스 정도로 불러야 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나마 든다. 이름을 잘못 불러주었다고 앙얼(殃孼)을 부린 것인가. 평화(?)롭던 온 나라가 이 메르스 때문에 한바탕 뒤죽박죽이 돼 버렸다.
이정 <순죽(筍竹)>(《삼청첩》) 흑견금니 25.5x39.3cm
잘 차려놓은 꽤 많은 미술 전시도 피해를 봤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동대문 DDP의 넓고 쾌적한 공간에서 네 번째로 기획한 ‘간송문화전 4부-매난국죽 선비의 향기’전도 직격탄을 맞았다. 그래서 전시는 8월말 종료였던 예정을 바꾸어 10월 중순까지로 연장키로 했다.
서늘한 바람과 함께 국화 피는 계절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오히려 ‘선비의 향기’ 테마가 보다 실감나게 된 듯한 안도감도 있다. 그런데 선비의 향기란 다분히 은유적이다. 메르스 때문이 아니라 근래 들어 세상이 한층 뒤죽박죽됐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정 <고죽(枯竹)>(《삼청첩》) 흑견금니 25.5x39.3cm
낙관은 萬曆甲午十二月十二日 灘隱 寫于公山萬舍陰村寓이다.
향기를 운운하기도 힘들 정도로 욕망과 욕심, 무례와 무치(無恥)가 횡행하는 시대이다. 위로는 고위 관료에서 아래로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 편에 선다는 소위 운동가들도 한통속으로 여겨지는 모습이다. 예의염치(禮義廉恥)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차에 선비의 향기를 들고 나왔으니 미술이 정치적이라는 것은 현대미술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라고 할만하다.
어쨌든 이 전시에는 식물 가운데 그 모습, 성질, 성격, 특징이 군자나 선비의 모습으로 비춰진 사군자-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를 테마로 한다. 고상하기는 하지만 사군자 그림은 일반에게 친숙하지 않다. 애초부터 상징적 의미로 인해 그려졌기 때문에 사실적 묘사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이는 조선 후기에 뜻(意)을 그리는 것을 중시한 문인화 이론이 전해지면서 이와 같은 경향은 한층 더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렵기도 하다.
이정 <난죽(蘭竹)>(《삼청첩》) 흑견금니 25.5x39.3cm
사정은 이렇지만 조선시대 사군자 그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거기에 조선사회 전체에 통용됐던 철학적 분위기가 그림으로 구현돼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주류는 말할 것도 없이 문인 양반. 이들의 삶의 목표는 세속적 행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레벨인 도덕의 실현체인 군자가 되길 꿈꾸었다. 그것이 유교 철학인데 이를 위해 이들은 늘 학문 수양에 힘썼고 아울러 검소, 소박, 절제, 양보 등의 도덕을 실천했다.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닌 문인들이 그림으로 이상(理想)을 드러낸 것이 사군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거기에는 절제나 꾸임 없는 솔직함, 무욕이 줄기와 잎 그리고 가녀린 꽃에 의탁돼 표현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선 문인화가들이 보여준 상징주의 회화의 흐름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정 <월매(月梅)>(《삼청첩》) 흑견금니 25.5x39.3cm
사정은 이렇지만 18세기 들어 문인생활을 동경하는 시민 사회가 성장하면서 직업 화가들도 시장 요청에 따라 이를 그렸다. 몰락한 양반출신의 직업화가 심사정(1707-1769)은 이런 수요에 응했는데 이 전시에는 그가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 모두가 소개되고 있는 점은 좋은 볼거리가 된다.(네 종류를 모두 능숙하게 그린 화가는 그 외에는 강세황 정도이다)
심사정 <오상고절(傲霜孤節)> 지본담채 27.4x38.4cm
어느 전시고 소개된 그림을 다 머릿속에 넣을 수 없어 하나만을 꼽는다면 이 전시는 응당 조선중기의 왕족화가 이정(李霆 1554-1629)이 그린 삼청첩이 꼽혀야 한다. 그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칼을 맞아 한 팔에 큰 부상을 당했으나 그 후에도 그림을 놓지 않고 이 대작을 남겼다. 41살 때인 1592년12월에 그린 이 화첩에는 자료가 드문 중기의 그림으로 사군자가 모두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내노라 하는 문장가, 시인, 서예가가 이를 찬양한 글이 함께 있다.
제대로 친다면 보물, 국보가 되고도 남을 작품이다.(내용은 대나무 12면, 대나무와 난 1면, 매화 4면, 난 그림 3면을 그리고 21수의 자작시로 구성돼 있다. 더욱이 여기에는 문장과 시로 이름난 간이 최립(簡易 崔笠)과 오산 차천로(五山 車天輅)의 서문과 시를 당시의 명필 석봉 한호(石峯 韓濩)이 쓴 것이 한데 묶여 있다)
심사정 <괴석형란(怪石荊蘭)> 지본담채 32.5x26.5cm
이 화첩은 그동안 간송미술관의 여러 전시에 나왔으나 번번이 몇 쪽만 소개되는데 그쳤다. 까닭은 아껴서만은 아니었다. 병자호란 때 일부가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또 구한말 일본으로 반출되는 과정에 습기를 먹어 손상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 전시에 앞서 전문가의 손으로 이를 1년여에 걸쳐 말끔히 수복했다. 따라서 《삼청첩》은 이번이 사실상 그 전모가 완전히 소개되는 첫 번째 기회인 셈이다. 사군자의 상징적 표현에 익숙치않다 해도 이만한 미술사적 역사의 현장(?)이라면 이것 하나만도 충분히 오랫동안 감상해 볼만 전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