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예단의 네 사람 : 삼연, 사천, 겸재, 관아재 (3) 2023.03.13
조영석(1686~1761) 또한 노론 중심부에서 이병연, 정선과 친밀하게 지냈습니다.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조영석의 형 조영복은 김창협의 제자로 도승지, 개성유수, 한성부우윤 등을 지냈지만, 조영석 본인은 대과 급제에 실패해 지방 현감 같은 낮은 자리를 전전하다 70이 넘어서야 당상에 오릅니다. 조영석은...
백악예단의 네 사람 : 삼연, 사천, 겸재, 관아재 (2) 2023.02.08
사천 이병연김창흡의 제자라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이 사천 이병연(1671~1751)과 그의 친구 겸재 정선(1676~1759)입니다.이병연의 집안은 노론이었지만 같은 한산 이씨 집안 중 아계 이산해는 동인-북인이었습니다. 아계의 삼촌 이지무(이지함의 형)의 집안은 노론이 되어 이산보 등으로 이어집니다.한...
백악예단의 네 사람 : 삼연, 사천, 겸재, 관아재 (1) 2022.12.13
백악산 아래 장동 김씨 자리잡다백악산(북악산) 아래 살아서 백악예단이라고도 부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이들이 살던 동네로 먼저 가보겠습니다.청와대와 자하문터널 사이쯤에 장동(장의동)이 있고(자하문의 또다른 이름이 장의문입니다), 청풍계(淸風溪)와 백운동(白雲洞)에서 이름을 따 왔다는 청운동도...
김상숙과 김기서 부자 2022.08.30
광산 김씨의 글씨광산 김씨 중 많은 사람들이 안동 김씨나 여흥 민씨 등 노론 중심세력과 비슷한 글씨 양상으로 몇몇만이 글씨를 잘 쓴다고 할 만합니다. 안동 김씨 중에는 김상용(金尙容, 1561~1637),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잘 썼고, 여흥 민씨 중에 민정중(閔鼎重, 1628~1692)...
이인상과 이광사의 글씨 2022.07.20
앞서 등장했던 이인상의 절친, 동춘당의 5대 후손 송문흠은 이인상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저평가되었지만 이인상 못지 않은 좋은 글씨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다만 이인상과 다른 점은, 이인상은 자존심이 몹시 강했던 사람이었는지라 남아 있는 작품들 중 태작이 별로 없고 완성도가 다 높은 데 비해, 송문흠은 전해지...
이인상과 친구들 - 이윤영, 송문흠 2022.06.15
앞서 말했듯, 이인상은 주변의 선비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눴습니다. 친구들은 이인상을 좋아하고 존경했는데, 능호집의 발문을 적은 김종수(金鍾秀)는 “이원령(이인상)은 기이한 선비이다. 비쩍 마르고 목이 길고 수염과 눈썹은 적고 얼굴에는 기미가 잔뜩 끼었다. 매양 산보하면서 소리 높여 시를 읊조리매 멀리...
자신의 골기를 가진 그림과 글씨, 이인상 2022.04.24
이인상(李麟祥 1710-1760)알다시피 추사 김정희는 까칠한 양반이어서 남 칭찬을 잘 안 하는데, 윗세대 선배들 중 유일하게 칭찬한 사람이 능호관 이인상입니다. 그의 글씨는 예서나 해서도 좋지만 전서 또한 아주 좋아서 당대 전서는 제일인자라는 평을 듣기도 했습니다.이인상의 전서. 당나라 가도의 <...
소론의 글씨 (4) 조윤형, 서무수, 서명균 2022.03.04
조윤형(曺允亨, 1725-1799)백하 윤순의 제자 이광사, 그리고 그 이광사를 제자 조윤형이 이어갔습니다. 다만 이광사의 글씨보다 조윤형의 글씨가 좀더 윤 백하의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무엇 때문인지 조윤형이 백하 윤순의 사위라고 전해지기도 했었는데, 그것은 잘못입니다.) 이광사는 스승으로부터 해서 ...
소론의 글씨 (3) - 이광사 2022.01.12
이광사(李匡師, 1705-1777)대대로 판서 이상의 벼슬을 지낸 명문가 집안의 이광사. 장남은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입니다. 친가 외가 처가 모두 소론이었으며, 소론의 몰락으로 23년의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글씨가 유배지에서 쓴 것입니다.신한평 <이광사...
소론의 글씨 (2) - 백하 윤순 2022.01.12
백하 윤순(1680-1741)윤 백하는 글씨뿐만 아니라 글도 잘 짓고 성격도 활달했다고 전해지며, 소송 같은 긴 문서들을 슥 보고 외워 옮겨 적고 몇 십 건 처결을 바로바로 내렸다는 일화도 있는 만큼 머리도 좋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 집안도 좋고 스스로 직책도 높았습니다. 대제학, 요즘으로 치자면 서울대...
소론의 글씨 (1) 당색이 얽힌 집안들 2021.12.15
노소론이 얽힌 집안들우암 송시열을 위시한 노론의 글씨에 대해서 이야기했으니 이제 소론의 글씨에 대해 짚어봐야겠네요. 서예가라는 타이틀을 가질 정도, 즉 ‘누구누구체’라고 이야기할 정도가 된다면 당색이 크게 의미 없지만, 일반 학자나 선비들은 스승이나 주변 사람들의 글씨를 따르게 되어 글씨에 당색이 비쳐지...
우암과 미수의 사람과 일화 2021.11.01
우암 송시열은 몸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었던 듯 동뇨(童尿)를 먹었다고 하지요. 어린아이의 오줌, 즉 동뇨는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는데, 몸에 좋다고 찾아 먹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주로 오줌을 끓여서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하고 반짝이는 알갱이, ‘추석(秋石)’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혈관을 깨끗하게 하는 ...
미수 허목의 글씨 2 - 전서를 닮은 해서 2021.10.11
미수의 해서체미수 허목은 전서만 뛰어났던 것이 아니라 전서 쓰는 법을 적용해서 쓰는 해서 또한 아주 좋습니다. 그의 해서체는 전서 식으로 쭉쭉 내려 힘 있게 쓰는 글씨로 이를 찾는 이들이 꽤 있어 현재도 그의 간찰들이 종종 시장에 나와 거래되곤 합니다. 미수의 해서와 행서는 전서의 기운을 가지고 있는 글...
미수 허목의 글씨 1 - 전서 "미수체" 2021.09.08
우암의 라이벌, 미수 허목과 묵재 허적우암 송시열의 맞은편에 있는, 당시 밀접한 관계가 있던 인물들인 미수 허목, 묵재 허적, 백호 윤휴 등의 인물에 대해서도 함께 알아야 합니다. 먼저 미수(眉叟) 허목(許穆 1595-1682). 그는 정치나 역사, 유학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서예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
송시열의 후예 - 노론의 글씨 2021.08.02
숙종 이후 남인이 몰락하고 나자, 노론이 소론과 대립하면서 정계를 이끌어나갔고 영조 즉위 이후에는 소론이 이끌었던 이인좌의 난을 누르고 노론이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됩니다. 영․정조 시대 탕평책으로 그 이전과 같은 붕당의 의미는 없다고 하지만 19세기 이후에도 송시열에 의한 배타적 성리학을 밑바탕에 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