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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론의 글씨 (3) - 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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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李匡師, 1705-1777)
대대로 판서 이상의 벼슬을 지낸 명문가 집안의 이광사. 장남은 연려실기술의 저자 이긍익입니다. 친가 외가 처가 모두 소론이었으며, 소론의 몰락으로 23년의 유배생활 끝에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남아 있는 대부분의 글씨가 유배지에서 쓴 것입니다.


신한평 <이광사 초상> 1775년, 견에 채색,  53.6x67.6cm, 국립중앙박물관 보물 제1486호


이광사의 그림도 몇 점 남아 있는데 그의 문인 취향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광사 <고승완회도(高僧玩繪圖)> 비단에 수묵담채, 24.2x22.2cm, 간송미술관


이광사의 사상적 스승은 양명학의 정제두, 서예의 스승은 윤순입니다. 수집가 친구 김광수를 통해 탁본이나 귀한 자료를 접하고 고법을 연구해서 전서와 예서도 중시했습니다. 원교체가 유명하지만 그의 전서와 예서를 알아주는 이도 많았습니다.


이광사의 전서, 17x12cm, 개인


이광사는 『(원교)서결』등의 글을 통해 ‘사람이나 물상이 동일한 모양이 없고 행동도 다른 것과 같은 이치로 살아 움직이는 것은 정해진 형태가 없다’고 하여 글씨 또한 모양이 다양하고 어긋나거나 기울어지며 왕성하고 기이한 느낌이 호탕하게 나타나야 한다고 말합니다. 획을 한번에 죽 긋지 않고 여러 번 굴려 근골을 세우는 길곡법(佶曲法) 같은 그의 서예 미학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나중에 원교체로 이름지어지기도 하는 그만의 서체는 송설체와 단정한 서풍으로 잔잔하던 조선 서풍을 뒤흔들게 됩니다. 


이광사 <행서 오언절구> 105.4x56.3cm 


그런데 추사 김정희는 이광사의 글씨를 무자비하게 깎아내렸지요. 그래서인지 이광사의 글씨는 왠지 고루한 듯한 이미지를 쓰게 됐습니다. 
추사는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인 <서결>에 대한 비판 글인 <서원교필결후(=원교필결(서결) 뒤에 씀)>에서 이광사를 ‘붓도 잡을 줄 모르고, 먹도 쓸 줄 모르는 형편없는 서예가’라며 매섭게 비판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서원교필결후>19세기 중반, 간송미술관, 보물 1982호
"원교필결에 이르기를 ‘우리 동쪽나라는 고려말 이래로 모두 언필(붓을 뉘어서 쓰는 것)로 써서 휙의 위와 왼쪽은 부끝이 지나는 바라 그런 까닭으로 먹빛이 진하고 매끈하며, 획의 아래와 오른쪽은 붓허리가 지나는 바라 그런 까닭으로 /먹빛이 엷고 거칠어서 획이 모두 치우치고 메마르니 완전치 못하다’라고 했다. 그 말은 자세하게 분석한 것 같으나 가장 말이 안 되는 소리다. 위는 다만 왼쪽만 있고 오른쪽은 없으며, 아래도 다만 오른쪽만 있고 왼쪽은 없단 말인가. 붓끝이 지나는 바로는 아래에까지 미치지 못하며 붓허리가 지나는 바로는 (위에까지 미치지 못한단 말인가). 지금의 계책으로 삼아야 할 것은 먼저 모름지기 팔뚝을 들고 중봉으로 움직여서 필봉으로 하여금 필획내에 있게 하는 것이다..."



윤 백하가 양봉래라면 이광사는 황기로에 댈 수 있겠습니다. 이광사의 글씨를 윤순의 것과 비교해서 볼 때 삼수변(氵), 한 일(一)자 같은 것을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두 사람의 한 일 자를 비교해 보면 윤 백하는 비슷한 속도로 긋고 이광사는 완급이 심한데 팍팍치면도 중간에 멈칫하는 구간이 있거나 하여 동세가 있습니다. 또한 이광사는 쭉쭉 세로로 뻗는 획이 특기인데 힘을 주다보니 옆으로 흔들리거나 휘게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이광사, 오언율시 행서, 각 23.5x29.8cm 개인


권돈인(1783-1859)의 글씨도 획이 내려올 때 떨리거나 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추사의 대단한 점을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됩니다. 그의 글씨는 힘을 주면서도 흔들림이나 기울어짐 없이 똑바로 내려 긋습니다. 


권돈인 서간, 357.7x50.2cm



추사 김정희 서간. 32x53cm 


이광사는 견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 힘을 많이 주다 보니 희게 비백이 나타나는 일이 많습니다. 다시 추사가 떠오르는데, 추사는 견에 쓰는 것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아마 일부러 견을 피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견에 쓰다보면 아무래도 잘 나가지를 않으니까 그랬을까요. 견은 초상화 등 미묘한 표현에 강점을 둔 그림에서 자주 쓰입니다. 견이라고 다 섬세한 표현이 가능한 것은 아니고 가는 올로 짜서 표면이 고운 것을 써야만 초상화를 그려낼 수 있습니다. 

윤 백하와 이광사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 해서에서는 윤순, 이광사, 조윤형의 글씨가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습니다. 경향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행서와 초서라고 봐야겠지요.

SmartK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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