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규 10 - 적멸공간 2018.03.28
오직 작업에만 매달리다가 홀로 여행을 떠나 지천에 널려있는 과거 석물 조각과 사찰에 자리잡은 불상들을 만났다. 과거와의 끝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1971년 3월 7일 경남 양산군 통도사에 머물며 불상을 아로새기던 어느 날 그는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처럼 썼다.“통도사에는 암자가 열세 개나 있는데 수도...
권진규 9 - 현실과 이상 2018.02.28
권진규는 다음과 같은 난해한 방정식을 소묘집 한켠에 써 놓았다. 낱말을 기호화하여 수식의 요소로 전환시킨 다음 각각의 낱말이 어떻게 변환되고 구성되며 또 재구성되는지를 섬세하게 해명해 두었던 것이다.현실=동물+몽夢이상주의=현실+몽보수주의=현실+유머꿈-유머=광신狂信꿈+유머=환상幻想현실+몽夢+유머=예지叡智그...
권진규 8 - 추상과 우화 2017.11.14
한국신문회관에서 열린 제1회 개인전 개막식에서 가운데 선 권진규. 1965년 9월 1일1965년 9월1일부터 열흘간 한국신문회관 화랑에서 열린 권진규의 첫 개인전은 ‘아시아의 유물을 연상시키는 원시형태를 현대에 투영’한 테라코타 45점으로 가득했다. 권진규는 이 개인전을 통해 회심의 역작을 선보일 자신이...
권진규 7 - 성북시절 II 신화와의 대화 2017.10.31
권진규가 테라코타에 깊이 빠진 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돌이나 브론즈는 상하기 쉽지만 테라코타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며, 둘째는 불로 구울 때 발생하는 우연성이고, 셋째는 마지막 과정을 다른 기술자에게 넘겨주지 않고 작가의 손으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권진규 <잉태한 비너스&g...
권진규 6 - 성북시절(1959-1964) 1 추억과의 대화 2017.07.24
1959년 여름, 권진규가 평판이 상당했던 일본을 등지고 귀국했던 이유를 헤아릴 수 있는 단서는 1971년 6월 어느 날 그가 한 고백에 감추어져 있다.“무사시노의 스승이며 로댕 정통을 그의 제자 부르델에게서 물려받은 시미즈 다카시 선생 아래서 8년 동안 수학하다가 탈바꿈의 내적 요청 때문에 귀국했습니다...
권진규 5 - 도쿄에서의 열정어린 나날들 2017.06.26
적막과 영원의 지향 무사시노를 졸업한 1953년은 권진규에게 매우 특별한 해였다. 신혼생활을 시작했고, 지난 해 입선했던 이과회 공모전에 다시 <기사>와 <말머리>, <양머리>를 출품하여 특선에 올랐기 때문이다. 수상자에게는 프랑스 유학을 보내주었는데 이런 특전은 커다란 ...
권진규 4 - 도쿄 시절, 형의 죽음과 일본미술과의 만남 2017.05.23
형의 죽음1948년, 권진규는 속리산에서 서울로 돌아왔다. 성북회화연구소에 계속 나가야할지 서울대학교 미술학부로 진학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니면 일본 유학에 도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임만 가득했다. 그때 일본 의과대학을 졸업한 형 권진원이 폐렴으로 위독하다는 전보가 날아들었다. 이미 일본...
권진규 3- 현해탄시절 (1943-1948) 방황 2017.04.12
1943년 2월 무렵, 형과 함께 현해탄을 건넜다. 경성을 거쳐 부산항에서 관부선을 타고 시모노세키항에 내려 다시 기차를 타고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에는 먼 친척인 권옥연, 함흥출신 박영익, 이수억, 김흥수, 이세득이 있었다. 권진규가 이들을 만났는지 알 수 없지만 고향 선배들이니 찾았을 법 하다. 권진...
권진규 2 - 춘천 시절 1938-1943 2017.03.29
늑막염 때문에 휴학하여 보통학교를 열여섯 살에 겨우 졸업하고, 이미 동기들 모두 상급생이 되어 있었던 함흥고등보통학교에 용기내어 응시했으나 두 해나 학업을 중단했던 터라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재수를 해야 할지 망설이며 회복기를 보내고 있을 때 새로운 기회가 찾아들었다. 춘천 쪽에 탄광을 소유하고 있어 ...
권진규 1 - 이성계의 도시 함흥, 그리고 권진규의 어린 시절 2017.03.14
권진규가 태어난 1922년 함흥은 거대한 도시였다. 함흥 읍내 이름도 자자한 권씨 가문의 며느리 조춘이 둘짜 아들 권진규를 낳았다. 할머니의 정성으로 형, 두 누님, 누이동생 둘과 함께 별 탈 없이 쑥쑥 자라났다. 권진규가 여섯 살 무렵 중앙유치원에 나갔을 때 이미 누님과 형 모두 그곳을 거쳐 보통학교로...
이중섭 - 글 없는 그림 편지 <소가 오리에게> 2016.12.17
1940년 12월 25일. 야마모토 마사코는 문화학원 재학생으로는 마지막 성탄절을 보냈다. 해가 바뀌면 3월에 졸업하기 때문에 학교 교정에서 그녀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중섭은 재미있는 생각을 떠올렸다. 도쿄에서 도쿄로 편지를 보내기로 한 것이다. 그 편지에는 받는 사람 주소만 쓰...
이중섭 - 발병, 그에 관한 기록 <낙서화> 2016.11.23
1955년 4월 미국공보원 전시장에서 처음으로 이상 상태를 보이더니 점차 병세의 징후를 드러냈고, 끝내 7월 어느 날 성가병원에 입원했다. 구상은 최초의 발병 상황을 다음처럼 기록했다.그는 결국 발병하게 되었는데, 즉 하루는 그때 내가 근무하던 『영남일보』주필실로 돌연 대구경찰서 사찰과장으로부터 전화가 ...
이중섭 - 절망 <어둠에 갇힌 파랑새와 아이들> 2016.10.19
이중섭 <우리 안에 든 파랑새> 26x35.5cm 종이 1955철망이 화폭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배치하고 우리 바깥에 검정 새 세 마리와 복숭아꽃, 안쪽엔 웅크린 채 큰 눈을 뜨고 응시하는 파랑새를 그렸다. 철망우리가 마치 철창 감옥과도 같은데 주위의 새들도 형태가 뚜렷하지 않다. 흐릿한 게 녹...
이중섭 - 1955 대구에서의 전시 <눈과 새와 여인> 2016.09.20
이중섭은 1955년 2월 24일 대구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구상, 이기련과 함께 셋이서 작품전을 준비하겠다’는 마음을 갖고서였다. 서울에서의 전시를 마치고 팔리고 남은 작품을 가지고 대구로 내려갔던 것이다. 대구에 도착한 그는 『영남일보』 주필 구상의 주선으로 대구역 앞 경복여관 2층 9호실에 거처를...
이중섭 - 미도파화랑 작품전의 두 소 2016.08.23
<흰 소>, <소와 아동>1955년 1월 미도파화랑 이중섭 작품전에 출품된 <흰 소 1>은 <통영 붉은 소 1>과 더불어 절정의 걸작이다. 조정자의 조사 결과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품으로 재료는 종이에 유채, 제작 연대는 서울 시절로 명기하였는데, 1972년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