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장태영 전
전시기간 : 2015.7.22.-8.27
전시장소 : 서울 레이블 갤러리
글 : 박영택 (미술평론가, 경기대교수)
하이데거식으로 말하자면 하나의 병도 ‘세계 내에 존재’한다. 실용적 차원의 물건인 병은 인간의 육체에 접속되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지만 그 자체로 굳건하고 당당한 조각품, 오브제이기도 하다. 나는 병이 지닌 완벽한 대칭의 형태와 견고한 물성에 매료된다. 병 자체만을 단독으로 설정해 그린 모란디의 정물화는 병을 병으로만 보지 않고 그것을 구축적인 건축물의 일부, 그러니까 그에게 친숙한 고대 이탈리아 신전이나 성당 등의 기둥이나 벽면과 대등한 존재로 바라보았을 때 가능했던 것이다.
일상 속의 친숙한 사물, 도구들을 관습적인 시선에서 벗어나 바라본다면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얼마나 매력적인 존재인지 깨달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가란 존재는 기존의 사물과 인간의 관계를 전복적(顚覆的)으로 사고하는 이들이다. 그래서 ‘아름답다’는 것의 지평을 확장하고 그것을 발견하는 놀라운 눈과 마음을 안기는 이들이다.
사실 병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 안에 담길 수용성의 액체를 보관한다는 점에 방점이 놓여있다. 따라서 유리가 지닌 투명성과 단호한 물질감은 자신이 내포하고 있는 액체를 보여줌과 동시에 그것을 보호한다는 이중의 역할로 인해 요구된 것이다. 이처럼 유리의 발명과 그로 인해 탄생한 다양한 병, 용기는 인간의 삶을 실용적이고 미적인 차원 모두에서 충족시켜왔다.
그러나 작가들에게 병은 특정한 용기가 아니라 개별적인 미술품, 조각이자 오브제로 인식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또 다른 요인은 병의 표면에 붙어있는 레이블(라벨)이다. 눈에 띄는 감각적인 문양과 색채, 문자와 숫자 등으로 디자인된 레이블은 병의 표면에 피부로 서식하면서 병을 또 다른 존재로 환생시킨다.
장태영은 관능적인 형태를 지닌 맥주병과 거기에 붙은 레이블을 정면으로 응시해서 촬영했다. 단독으로 설정된 맥주병은 자신의 존재감을 다소 비장하고 당당하게 보여준다. 몇 군데에서 쏟아지는 강렬한 빛을 받은 맥주병은 허공에서 흡사 부양하는 듯하다. 그로 인해 현실적인 병이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특히 역광의 빛으로 녹아 실체감을 지우고 있는 병의 윤곽선이 그 느낌을 고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맥주병은 무엇보다도 유선형의 형태를 지닌 병의 표면에 부착된 레이블로 인해 빛을 발한다. 레이블의 역할은 상표, 상품에 관한 일련의 정보를 제공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소비자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흡입해내기 위한 전략 아래 고려된 뛰어난 디자인을 지닌 ‘회화’다. 작가는 아름답고 감각적인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맥주병을 선별해서 수집한 후에 흡사 증명사진을 찍듯 하나씩 촬영했다.
광고 사진과 별다른 구분이 없어 보이지만 여기에는 선전 문구가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작가는 흔한 맥주병 하나를 다시 보게 해 주고 그것을 오랫동안 응시하게 해준다. 그러자 맥주병은 단지 맥주를 담은 유리 용기가 아니라 레이블과 함께 어우러져 매력적인 오브제, 조각 작품, 혹은 극사실주의 회화처럼 존재한다. 일상 속에서 경이를 발견하는 시선이고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지우는 팝아트적인 전략도 감지된다.
장태영의 이 사진은 오늘날 소비사회에서 대량생산되는 특정 상품, 그 유리병과 레이블의 관계를 다시 보게 해주고 그것이 지닌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이른바 ‘상품미학’이 그만큼 지배적인 것임도 드러낸다. 환상적인 분위기를 배경으로 자리한 맥주병이 화려한 레이블을 부착한 상태에서 자신의 존재를 더없이 ‘블링블링’하게 보여준다. 장태영의 사진을 통해 우리는 맥주병을 치장한 모든 미학적 요소를 섬세하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