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강경구 목판화전
전시기간 : 2015.9.2.-9.25
전시장소 : 서울 나무화랑
글 : 박영택 (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강경구의 목판화는 모필(毛筆)의 맛이 매력적으로 감촉되며 흑과 백의 단호한 대비, 순간의 단호한 결정으로 판가름이 나는 칼 그리고 매순간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편린, 그 단상이 도상적으로 압축돼 찍혀 나오는 것이었다. 운필의 탄력적이고 자유스러운 흐름과 먹을 다루면서 체득된 흑백구성 그리고 전각으로 다져진 사각형 화면처리와 칼의 맛 등으로 인해 이루어진 매력을 접하게 한다. 그러니 목판화는 동양화를 전공한 그가 잘 해낼 수 있는 매체다.
목판화란 철저하게 나무의 평면성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 여기에서는 스케치가 중요하고 모필로 그려지는 붓 맛이 나는 도상의 힘이 우선한다. 그는 흑백의 구성과 칼 맛을 살리는 일을 핵심으로 여기며 이를 조형적으로, 회화적인 맛이 나게 표현하고자 한다. 그의 판화는 붓이 서지 않으면 판화는 될 수 없다는 것을 은연중 말해준다. 그러니까 그의 목판화는 모필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그려내는 붓 맛이 그대로 칼 맛으로 전이되어 나오는 편이다.
목판의 힘은 칼의 맛에서 발생하는 긴장도에 연유한다. 그는 칼을 통해 그만의 필법, 골법을 만들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삶의 체험에서 연유하는 감정이나 정서를 설명적이지 않은 언어로 드러내고자 하고 이를 위해 칼을 댄다. 칼로 나무를 깍아내는 행위 사이에는 매번 결정적인 선택의 순간이 놓여있다. 인생이 그렇듯이 목판화도 동일하다.
그림의 내용은 그동안 해온 회화작업의 연장선들이자 또한 진도 팽목항에서 일어난 세월호 침몰장면, 서대문형무소 풍경, 무료한 일상에서 문득 접한 주전자와 의자의 그 실존성, 작업실 옥상에서 건너편 청계산을 바라다보는 자신 그리고 거울에 비친 작가의 얼굴, 나뭇가지에 걸친 새들, 다리를 벌리고 앉아있는 여자, 그 여자의 대책 없이 벌어진 구멍, 암수가 교미를 나눈 후 서로를 잡아먹는 사마귀의 초상, 물속을 헤엄치거나 걷고 있는 사람, 창살에 갇힌 얼굴 등등이 단순하고 명료하게 깎여서 찍혔다.
그들은 한결 같이 한국 사회, 정치 현실과 함께 자신의 일상에서 겪어내 것의 소회로 불려온 것들이고 이를 상기하고 복기한 것들의 도상화, 시각화의 과정을 겪어낸 것들이다. 강경구는 그가 겪어내는 일상, 현실 등에 대한 여러 단상과 감정을 표현해내는 수단으로 회화와 함께 목판화를 겸하고 있다. 여기서 매체는 선택적이다.
그는 다양한 양식, 기법을 통해 자신의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것을 우선시한다. 그런데 모필과 종이, 먹, 전각에 친숙한 그에게 이 목판화는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종합적이면서도 각각의 장점을 취할 수 있는 선에서 다루어지고 있다. 이 점이 여타 판화가들과 다른 지점이라고 본다.
그러니까 기존 판화가들이 판화 자체의 방법론에 얽매여있는 편이라면 그와는 다른 회화적이며 조형적 맛과 운치로 가득하면서도 예리한 칼, 힘 있는 흑백 구성, 그려진 부분과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긴장관계(깎아낸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를 거느리고 있는 판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니 판화 역시 회화적인 힘(조형의 힘)으로 충만해야 하며 특히 모필의 맛, 자연스러움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측면에서 필자가 주목하는 좋은 목판화를 선보이는 작가들은 고인이 된 이상국을 비롯해 서상환, 강경구, 유근택 등이다. 물론 오윤의 목판화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아마도 강경구는 오윤과 이상국의 목판화 및 독일 표현주의 판화 등에서 자극 받은 것들을 모두 용해해서 그만의 개성적인 목판화를 선보이고자 했을 것이다. 그 결과물이 이번 판화전에 출품한 작품들에서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