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
전시기간 : 2015.7.21-2015.11.1
전시장소 :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글 :주수완(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고고미술사학과 조교수)
<신라의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이라는 전시 제목은 왠지 며칠 남지 않은 리움 미술관의 <세밀가귀(細密可貴)> 전시를 연상시킨다. 고려를 방문한 북송대의 사신 서긍(徐兢)이 고려의 미술을 보고 평했다는 ‘세밀가귀’의 제목은 지금은 “럭셔리”라는 말로 흔히 대변되는 “명품주의”의 한 단면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황금문화’를 강조한 이번 전시 제목도 “럭셔리”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기 때문이다. 특히 경주국립박물관 개관 70주년으로 행해지는 전시이니만큼 경주가 내세우는 신라의 모든 것을 보여주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1990년대에 광화문 중앙청에 자리했던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스키타이의 황금>이라는 제목으로 스키타이 특별전을 개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만해도 이렇게 보물찾기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듯한 제목이 흔치 않았던 탓에 엄청난 인파가 이 전시를 관람하러 몰렸던 기억이 생생하다. 예나지금이나 황금에 대한 인간의 관심은 높기만 하다.
이번 전시의 기본 컨셉은 사실 2013년 가을부터 2014년 봄까지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열렸던 <황금의 나라, 신라(Silla, Korea’s Golden Kingdom)>에 기초한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전시에 대해서는 한국미술정보개발원 사이트의 한국미술 전시리뷰에도 소개된 바 있는데(<황금의 나라 신라> 리뷰 바로가기), 이번 전시의 제목도 원래의 전시컨셉을 반영하여 붙여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만 원제목에는 없었던 ‘불교미술’ 컨셉을 추가하여 이를 보다 강조한 셈이다. 여하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의 전시와 거의 동일한 전시이므로 이전의 소개와 중복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 전시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실 전시실 안에 들어서면 처음 관람객을 반겨주는 것은 금관과 같은 황금유물이지만, 막상 깊숙이 들어가 보면 ‘황금’ 컨셉에 점차 새로운 주제들이 포개어진다. 유리, 은제품, 기와, 석조물, 청동공예 등 다양한 소재의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황금문화’라는 제목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었으리라. 전시는 크게 중심주제인 황금문화 외에 능묘, 대외교류, 왕경, 불국토라는 5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보면 언뜻 <황금문화와 불교미술>이라는 제목은 실제 전시 구성요소인 5개의 주제 중에서 두 주제만을 내세운 것이기 때문에 뭔가 전체를 아우르는 컨셉이 부제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울러 다른 네 개의 주제, 즉, 능묘, 대외교류, 왕경, 불국토라는 주제 안에도 황금문화가 내재되어 있어서, 예를 들어 傳황복사탑 출토의 순금제 불좌상이나 능묘출토의 금제 유물은 황금유물의 컨셉에서도, 불국토 혹은 능묘의 컨셉에서도 다루어질 수 있음에도 황금문화가 별도의 주제인 것처럼 소개된 것은 다소 혼란을 초래하기도 한다. 아마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전시 컨셉도 살리고, 경주박물관만의 장점도 드러내기 위해 고심한 결과로 이해된다.
황남대총 남분 출토의 철기, 5세기
황남대총 남분 출토 은제 국자
그러나 여하간 전시유물 하나하나의 수준은 언제나 놀랍기만 하다. 우선 황금과는 무관하지만, 황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엄청난 양의 철기를 마치 막 발굴된 상태인 것처럼 유리장에 포개어 전시한 것은 유물 하나하나를 접할 때와는 또다른 생생한 느낌을 전달한다. 황금처럼 귀한 재료는 아니지만, 철기는 당시 국가의 국방력을 상징하는 것이기에 황금 못지않은 강렬함을 선사하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출토된 은제국자에도 눈이 간다. 하나의 은판을 두드려 만든 이 국자는 손잡이가 구분구불하게 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어떻게 보면 올챙이 한 마리가 꾸물거리며 헤엄치는 듯 하고, 어떻게 보면 물 뿐 아니라 물결의 흐름까지 담아내는 듯하다. 철제 솥 옆에서 이러한 국자 3점이 동시에 발굴되었다고 하는데, 실용적인 목적에서는 불편해보이기 때문에 의식용으로 특별히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구불구불한 손잡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치 않지만, 일상용기와 달리 잘못하면 국물이나 액체가 손잡이를 타고 흐를 수도 있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설계된 것은 의식용 국자로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굳이 강조하려고 했던 의도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과거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는 불편한 디자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주방기기이면서도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홍보하는 명품 주방기기를 보는 것 같아 신선한 느낌이 든다.
손잡이가 달린 금동제 그릇, 금관총출토.
傳 경주 송화산 출토 석조반가상, 높이 125㎝, 7세기경
손잡이가 달린 금동제 그릇으로 소개된 유물은 실은 요즘 사람들에겐 그저 흔한 “팟(pot)”이라고 설명될 수 있는 모습이다. 주자(注子), 혹은 주전자라고 해도 되지만, 이 유물처럼 동글동글하고 옆에 통통한 손잡이가 달린 형상은 영락없는 “팟”이다. 겉에는 금도금을 하고, 구연부와 손잡이는 은으로 감쌌으며, 손잡이와 몸통이 접합된 부분에는 연판무늬, 손잡이에는 넝쿨무늬를 묘사한 이 팟도 당시에는 지체 높은 사람들이 선망했던 식탁문화가 얼마나 현대적인 디자인과 맞닿아 있는지 보여준다. 특히나 이 팟이 출토된 금관총은 일제 강점기 미흡한 발굴조사 이후, 최근 우리 연구자들의 손으로 다시금 발굴되어 새로운 많은 사실들이 밝혀진 바 있어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과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전시에 출품되는 데 있어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국보 83호 반가사유상도 이번에 경주박물관을 찾았지만, 아쉽게도 2주만 전시되었다. 원래 경주 인근 출토로 알려진 국보 83호 반가상이 일제 강점기 경주를 떠난 후 처음으로 고향을 방문하는 사건으로 기대가 모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 특별전에서 4개월여 내내 자리를 지켰던 반가상이 경주에서는 겨우 2주만 전시된다는 것에 다소 실망한 경주시민들도 계시리라 생각한다. 아마 우리에게는 너무 친숙한 작품이기 때문이거나, 혹은 그간의 장기간의 전시로 인한 피로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로 이해하려고 한다. 그 빈 자리는 경주 송화산 출토의 석조반가사유상이 대신하고 있었는데, 비록 얼굴과 팔에 손상을 입었지만, 정교한 자세를 특징으로 하는 반가사유의 도상을 딱딱한 돌을 깍아 만들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인 작품이다. 다만, 이 작품이 왜 이렇게 높은 단 위에 전시되었는지는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일단 반가사유상이 실제 불단에 봉안된 사례는 동아시아 3국에서 그 실례를 찾기가 매우 어렵다. 거의 유일하게 일본 나라 추구지(中宮寺) 본당에 반가상이 봉안되어 있지만, 본당 자체가 새 건물이어서 이것이 원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부족하지만, 이 사례와 비교해보았을 때, 이번 경주 전시에서 석조반가상은 다소 높다고 느껴지는 대 위에 올려져 있다. 왜 이렇게 높은 각도로 올려다보게 전시를 했는지 궁금하다. 그렇더라도 평소보다 더 정교한 부분까지 감상할 수 있게 조명을 주고 있어, 옷자락의 흘러내린 부분이나 섬세하게 접힌 부분이 잘 도드라져 보이며, 보살의 발바닥에서는 탄력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또한 뒷부분까지도 돌아가 볼 수 있어 평소 이 작품에 관심이 많은 분이라면 좋은 관람 기회가 될 것이다.
사천왕사지 출토 소조신장상 3종의 복원조합, 7세기
근년 발굴되어 큰 화제를 모았던 사천왕사지 출토의 소조 신장상편도 대거 출품되었다. 과거에는 대략 두 종류의 소조신장상 도상에 대한 복원적 고찰이 이루어져 왔는데, 이번 발굴을 통해 확인된 세 번째 도상의 복원적 조합이 밝혀져, 이제 완연히 밝혀진 세 도상이 나란히 전시되는 것이다. 이는 『삼국유사』에 조각승 양지(良志)의 작품으로 등장하고 있어 우리나라 조각사상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경주 외동읍 입실리 절터 출토의 사방불이 새겨진 탑신석(서탑). 높이 85㎝, 9세기
외동읍 절터 동탑 부재에 새겨진 약사불입상
외동읍 입실리 절터에서 출토된 사방불이 새겨진 탑신석도 간과할 수 없다. 사방불이 새겨진 탑신석은 드물지 않지만, 이렇게 사방불을 입상으로 표현한 사례는 희귀할 뿐만 아니라, 좌상에서 보이던 것과는 다른 수인을 볼 수 있어 불교도상학 자료로 중요하다. 특히 동탑 탑신에 새겨진 사방불상은 상호도 아름답다. 삼국시대에 환한 미소를 보이던 불상들은 통일신라시대에 들어 근엄한 표정으로 바뀌는 경향이 강한데, 여기서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이면서도 드물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어 더욱 반갑다.
경주경찰서 소재의 석조무인상
傳인용사지출토금동신장상편
잘 알려진 경주 괘릉의 서역인 무인상과 유사한 석조무인상의 웅장한 파편도 새롭다. 이 작품은 인용사터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금동신장상의 머리파편과 함께 눈길을 끄는데, 마치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하반신이 다 부숴졌음에도 끝까지 따라오는 무시무시한 기계인간처럼 아직도 얼마든지 호위의 임무를 감당할 수 있다는 듯 그 얼굴표정이 살아있다.
신라는 유독 금을 많이 선호한 나라였다. 그것은 단지 사치와 향락에서의 의미가 아니라 북방기마민족 나라들의 문화적 특징이기도 했기에 특별히 신라의 황금문화를 주제로 한다는 것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최근에는 신라의 유물에 들어간 그 많은 금의 출처가 월성 앞을 흐르는 문천에서 채취한 사금이라는 설도 제기되어 크게 주목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경주박물관 개관 70주년과 함께 <실크로드 경주 2015> 테마 행사로서의 성격도 가지고 있어 국립경주박물관이 신라와 경주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는 점에서 “황금문화”의 제목만으로는 모든 것을 담아내기 어렵다. 따라서 “황금문화”라는 제목에만 너무 얽매이지 말고 신라미술의 대표선수들이 등장하여 펼치는 화려한 갈라쇼라고 생각하고 전시장을 찾는다면 그야말로 신라문화의 정수를 접하는 보기 드문 기회가 될 것이다.
(사실 왠지 국보83호 반가상의 ‘황금’적 면모가 강조되는 것은 마치 클림트의 <아델라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이 금공품의 범주에서 다뤄지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관람료는 무료이며 11월 1일까지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