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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욕망의 쌍곡선은 교차할 수 없고 따라서 유토피아는 없다 - <아키토피아의 실험>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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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아키토피아의 실험 전
전시기간 : 2015.6.30.-9.27
전시장소 :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제5전시실
글 : 이강근 (서울시립대 건축학과 교수)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4층의 제5전시실(건축 갤러리)에서는 ‘ARCHITOPIA’ 혹은 ‘아키토피아의 실험’이란 제목의 건축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제6전시실에서는 5월부터 ‘우리가 알던 도시’라는 제목의 사진전시회도 계속되고 있는데, 공통된 성격의 두 전시가 한 공간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세운상가 동영상과 모형


두 전시는 도시와 건축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건축전이 유토피아를 표제어로 내세워 건축가와 건축주(정치가, 행정가 혹은 대중)의 관계 속에서 구상되거나 사그라진 욕망을 주제로 하고 있는 것과 달리, 사진작가 두 사람의 공동전에서는 각기 삶의 터전에 닥쳐 온 재난과 재개발로 인하여 상처받고 사라져 간 꿈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간극이 드러난다.

세운상가 서가형 아카이빙

미술관은 이 두 전시를 함께 관람하도록 배려함으로써, 20세기 후반 개발독재 시기에 건축과 도시가 우리에게 주었던 희망, 좌절, 상처, 치유 등을 동시에 생각할 여지를 제공한다. 생활을 담는 그릇이자 정서적 환경이기도 한 건축을 내세우지만 도시에 재난이 닥치면 생활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정서적 안정은 상실되게 마련이다. 재개발을 빌미로 살던 터전이 크게 변화되거나 아예 거기서 쫓겨나 낯선 곳으로의 이주를 강요받은 사람에게 새로 들어선 건축이나 도시가 ‘이상적’인 것일 리 없다. 

세운상가 최초 설계안 청사진(서울시 소장)


옆으로 길게 늘어선 전시실의 오른쪽 입구를 기점으로 해서 전시실의 주제는 유토피안의 꿈이다. 그 유토피아로 세운상가를 내세운다. 그런데 세운상가는 1960년대 후반 한국전쟁 후 피난 끝에 종삼에 정착한 실향민들의 무허가 주택지를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파괴하고 내쫓은 바로 그곳에, 독재자와 행정가의 욕망을 잘 반영한 거대 건축으로 세워졌다.
 


세운상가 최초 설계안 청사진(단면도의 공중보행용 데크와 구조)


과연 그런 정치적 상황 아래서 건축가의 이상이 설 자리가 있었을까. 건축가는 주택문제 해결과 상업의 부흥이란 현실적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근대주의 건축의 독트린을 충실하게 반영한 주상복합 설계안을 제안했지만, 건설회사의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와 부딪혀 거의 실행되지 못하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철거 후 재개발 혹은 재생 논의는 세운상가에 담으려고 했던 미완의 이상이 우리 사회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세운상가 전경


이번 전시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된 청사진 16장(소장: 서울시, 작성: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은 건축가의 초기 설계안이자 현실의 세운상가로 왜곡되기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건축가의 이상이 무엇이었는지를 탐색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2개 전시공간으로 나뉘어 전시된 대형흑백사진, 모형, 아카이빙 자료, 동영상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전시기법은 산만하기는 하지만 관람객으로 하여금 보고, 듣고, 읽고, 만지고, 공감하도록 요구한다. 


파주출판도시 모형

오른쪽 입구 왼쪽 3개 공간에는 ‘건축도시로의 여정’이라는 주제 아래 파주 북시티와 헤이리 아트벨리를 차례로 전시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구상되고 1990년대에 본격화된 두 장소의 마을만들기는 건축코디네이터와 건축설계지침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북시티는 코디네이터의 지도 아래, 아트 벨리는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 공동 논의 아래 진행되었다. 


판교단독주택단지-파주출판도시 최초 종합개발계획, 1997, 박병주 그림

모든 과정을 온전하게 보여 주는 아카이빙, 모형, 단계별 설계안, 심포지엄 자료집, 종합계획도 등은 전시실을 둘러보는 이들에게 관람자 이상의 역할을 요구한다. 옵티컬레이스(시각창작 집단)의 북시티 출퇴근자 동선조사 그래프는 북시티가 추구한 ‘자족적인 도시’가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각 자료로서 전시 자료에 대한 비평적 독해를 가능케 한다. 




 판교단독주택단지- LANDSCAPE DESIRE

제5전시실의 왼쪽 입구 내부에는 옵티컬레이스가 작성한 ‘건축가 세대론’이라는 원그래프가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어서 호기심을 자아낸다. 32개 건축가(그룹)을 대상으로 1970년부터 2014년까지의 건축가의 작업량을 원의 크기와 색깔로 나타냄으로써 개인별, 시기별 추이를 한 눈에 비교 판독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욕망의 주거풍경’이란 주제 아래 전시한 판교신도시의 대규모 단독주택단지를 이해시킬 한 방편으로, 참여 건축가의 활약상을 비교, 이해할 수 있도록 그래프로 표현한 것으로 판단된다. 



황효철, 유형을 보다. 2013-2014


하지만 서울시와 경기도로의 전입인구를 전입지별로 비교할 수 있게 그린 막대그래프와 마찬가지로 옵티컬레이스의 시각 작업이 ‘판교단독주택 단지’의 현재를 이해하는 데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해설이 필요하다.
 


최호철, 판교택지개발지구 -돈이 자라는 땅, 2005

세 번째 시각 창작물인 <판교 유토피아-판교 지구단위계획 ‘해야 한다’와 ‘해서는 안된다’의 세계> 야말로 건축 작업의 복잡성을 전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적절한 해설문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도면 위에 법규 조항을 가득 적은 거대하고 복잡한 도표와 황효철의 사진 작업, <유형을 보다>를 연관지어 집터의 입지 조건에 따른 적용 법규의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개성있는 건축가의 개별적 추구의 결과가 하나의 유형으로 인식될 만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면 어땠을까. 

이 세 번째 주제에서 건축가 개인의 욕망을 한껏 드러낼 수 있는 조건에서조차 한국의 현대 건축가들이 개성 있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았다면 이 전시는 꽤 성공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언하자면 유토피아가 정치적 이념인 것처럼 한국근대화의 혹은 현대화의 접점에서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 앞에 선 건축가의 욕망이야말로 관념의 외형을 입은 자본일 수밖에 없음을 직시할 때 이 전시회의 복잡한 장치와 미장센은 성공적이라 할 것이다.(*)
이강근(서울시립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2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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