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거장-예술과 역사의 동행, 거장들의 세기적 만남
전시장소 : 대전시립미술관
전시기간 : 2015. 5. 23 ~ 8. 23
글 : 김미정(미술사, 한국근현대미술)
김복진, 미륵불, 1935, 114x47x47 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광복 70주년 특집이라는 전시 컨셉에 비추어 볼 때, “전쟁과 이산” 은 가장 핵심이 되는 장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심혈을 기울였을 터, 재일조선인 화가 전화황의 1960년 작품 <낙오자>를 핵심으로 송영옥과 월북화가 배운성의 작품이 여럿 출품되었다. 배운성이 독일에서 그린 조선 풍속화 수점은 대작 <가족도>와 함께 관람객들의 큰 관심을 얻고 있었는데, 북유럽 전통의 유입으로 인한 도상의 특이함, 가족이라는 우리에게 각별한 주제 때문인 듯했다. 전쟁기 이별과 가난의 기억이 새겨진 이중섭, 박수근의 작은 그림에 우리가 한없이 몰입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편 이우환의 <조응>이 디아스포라의 공간에 배치한 점도 이전에 볼 수 없는 방식이었다. 단색조 회화와의 형식적 유사성보다는 일본에서 모노하 미술가로 활동했던 이우환의 역사적 위치를 먼저 헤아린 결과였다.
전화황, 전쟁의 낙오자, 1960, 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 컬렉션
이러한 미묘한 변화는 전시 후반부에서도 드러나는데, 단색조 회화에 뒤이은 분방한 최욱경 작품의 배치라든가 민중미술의 시작을 홍성담의 <5·18 연작-새벽>으로 압도한 것 등이다. 이동훈과 임동식을 비중 있게 전시에 편입시킨 것은 충청지역 대표 미술관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한 당연한 결과였다. 이 모든 다채로움은 20세기 한국미술사의 정론을 넘으려는 대전시립미술관의 적극적인 시도가 가져온 즐거운 변주였다.
임동식, 2002, 본춘이와 화가 아저씨. 봄 여름 가을 겨울, 대전시립미술관 소장
그렇다면 명작을 앞세워 대중성을 담보하고 새로운 서사로 한국미술사를 재편해 보려는 애초의 의도는 얼마나 달성된 것일까.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이식과 증식”, “민중과 대중” 같은 반복적 대구가 혼성의 시공간이었을 역사를 이분법의 프레임에 가두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묵은 계승으로 채색화는 혁신으로 본다거나, 한국 사회의 탈근대성을 민중에서 대중사회로의 진입으로 쉽게 치환해버리는 것 등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식”이라는 용어는 근대미술을 자칫 모방의 역사로 깎아내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정작 전시는 근대기 양화를 신문화의 포용으로 열린 해석을 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잘못된 작명이 불러온 오해인 듯싶다.
사실 이 같은 시시콜콜한 지적은 전문가의 삐딱함일 뿐이다. 차분하면서도 알차게 마련된 근현대미술 걸작들은 가족을 동반한 시민들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었다. 김달진자료박물관의 세심한 미술교과서 전시도 ‘추억 돋는’ 코너였다. 그럼에도 “2 %” 부족한 것은, 이인성, 변관식, 김환기의 난만한 완숙기 작품이 빠진 것, 동시대 작가 이불이나 최정화 특유의 도발과 요란함을 받쳐줄 전시 스텍타클의 부재였다. 우리가 광복을 기념하는 벅찬 자리에 늘 미술을 빼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술은 외압과 내분으로 격렬했던 우리 근현대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민족국가를 세우기 위해서, 혹은 통일 논쟁으로 부딪혔던 열기마저 사그라져가는 요즈음 광복 70년을 기념하는 한국 근현대미술전람회는 한껏 소란하고 강렬해도 좋을 것이다.
*월간미술 2015년 8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