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 세밀가귀
장소 : 삼성미술관 리움
기간 : 2015. 7. 2 ~ 9. 13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리에게 유전자를 물려준, 이 한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본다. 무명천으로 된 흰옷을 입고, 질박한 그릇을 사용하고, 꾸밈없는 소박한 삶과 그러한 성정에서 우러난 미감.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미를 그렇게 떠올린다.
꼭 그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세밀한 일본 회화나 화려하고 치밀한 중국의 공예품을 보게 될 경우에는 특히 한국인에게는 도대체 꼼꼼함이란 없나 싶을 때도 있다. 허나 이미지와 실체는 언제나 차이가 나는 법. 다양한 분야의 미적 산물들을 모두 헤아려보면 ‘여백의 미’, ‘고졸미’ 외에 ‘화려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이 적지 않게 떠오르지 않는가. 많은 사람들에게 자리잡은 한국미의 이미지에 대한 조용한 반론이 바로 이 <세밀가귀>전이다.
전시의 정식 제목은 <세밀가귀細密可貴: 한국미술의 품격>으로, ‘세밀가귀’라는 말은 중국 송나라의 문신 서긍(徐兢)이 고려에 와 한 달간 머물다 가서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40권의 책 가운데 23권에 있는 어구이다.
(고려) 나전의 솜씨는 세밀하여 귀하다고 할 만하다.
螺鈿之工 細密可貴
청동은입사 보상당초문 합, 고려 11-12세기, 청동, 은, 지름 18.3cm 국보171호
우리나라 전통미술품에 대해 묘사한 옛 글들에는 공교(工巧) 등과 같이 세밀함을 묘사하는 단어가 많이 보인다. 시대에 따라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기술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로 여겨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임금이나 문인들이 뛰어난 예술품을 상찬할 때 마찬가지의 표현을 썼다. 적어도 공예품에 대해서는 정교함이 기본적 평가 기준이 되었음은 사실일 것 같다.
나전 국당초문 원형합, 고려말~조선초, 지름 24.5cm, 도쿄국립박물관
그렇다면 그것은 공예품에 대하여만 해당되는 미덕이었는가 하면 그렇다고 볼 수도 없다. 특히 조선시대의 초상화에 대해서는 터럭 하나도 다르게 그려서는 안 되는 엄밀한 기준을 부여했고, 주변 국가에 비해 양으로나 완성도로나 훌륭한 결과물을 남기고 있다. 불교회화나 의궤 등 다른 예들이 적잖이 떠오르는데, 그것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국내외의 뛰어난 한국 미술품들을 명확한 기준에 의해 모아왔다. 이 물건들이 외국인의 손에 의해 유출되었다는 아쉬움보다는 외국인에게 이렇듯 아름다움을 공히 인정받을 수 있었구나 하는 촌스런 부심마저 들었으나 굳이 누르지는 않았다.
청자상감 당초문 병, 고려 12-13세기, 높이 30.8cm, 야마토문화관
1부는 문양 중심으로, 2부는 형태를 중심으로, 3부는 세밀한 붓터치를 중심으로 구성하고, 역시나 첨단 기술을 활용하여 세밀하고 귀한 작품을 빠짐없이 모든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매우 훌륭한 인터랙티브 디스플레이를 제공한다.
전시의 절정은 고려시대의 국화문 자개함으로, 미국, 일본, 네덜란드, 프랑스 등 전 세계로 뻗어나간 고려시대의 자개 함을 한 공간에 모아놓아 입을 떡벌어지게 만들었다. 그 위풍당당함은 마치 전 세계에 퍼져 있는 태권도 사범처럼 조용히 국위선양하고 있는 고수의 모습이었다.
한국, 일본,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에서 모인 국당초문 경전함들
사족을 달자면... 전시장 도슨트께서 재미있고 깊이있게 설명을 잘 해주셨다. 그런데 전시장 투어 내내 작품이 어느만큼 유명한 먼 곳의 박물관에서 온 작품이며 얼마나 귀한 손님인지를 얼마나 아름다운지와 같은 빈도로 설명했다. 마지막 결국 세 점의 회화 앞에 섰을 때, 김홍도의 호랑이와 김시의 동자견려도는 쳐다보지도 않고, 보스턴미술관에서 온 이암의 <가응도>에 대한 설명만 한참 하고 해산시켰다. 설명을 듣던 관객들도 가응도 앞에서만 줄서서 인증샷을 찍고 흩어졌다. 다른 둘은 다시 볼 기회가 많으니까. 하면서도 어쩐지 씁쓸했다.
야나기 무네요시가 우리 민중들이 사용하던 질박한 일상의 무명잡기에서 미적 가치를 찾아내어 그것을 칭송한 덕분이었을지, 문인화가들이 사실적인 묘사를 천대했던 분위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을지, 어떤 이유에서건 조금은 과소평가되었던 조상들의 섬세했던 감각에 대해 모아 놓고 다소간 고정관념을 흐트릴 수 있는 좋은 전시였던 것은 확실하다. 9월 남은 기간 초중고대, 대학원 재학생과 청소년 무료에 어린이 청소년 동반 어른 일인도 오십퍼센트 할인이라고 하니 많은 이들이 감상의 기회를 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