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김종학 컬렉션, 창작의 열쇠
전시기간 : 2015.6.9.-2015.8.16
전시장소 : 서울시립 남서울생활미술관
인사동 골동거리는 오래된 만큼 별별 구수하고 재미난 횡재 이야기가 많다. 그 중에는 화가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 물건을 몹시 좋아하는 어느 화가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인사동 나들이를 하루걸러 하다시피 했는데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나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그림 하나를 그려주고 물건을 가져갔다고 한다. 긴가민가하던 가게 주인은 그 후 화가가 점점 유명해지면서 그림 값을 톡톡히 챙기게 됐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그 화가가 인사동에만 나타나면 가게마다 그림을 그려달라고 청했다는 얘기도 생겨났다고.
이렇게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기어코 손에 넣고야말았던 화가가 서양화가 김종학(77)이다. 그는 꽃과 숲 그리고 설악산을 잘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실은 그는 지독한 컬렉션 매니아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말대로 ‘비싼 것 싼 것 가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그대로 사다가 집에 그냥 쌓아 놓는 습벽이 있었다. 그래서 주변 친구가 일치(一癡)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그런데 이른 괴벽은 일찍부터 시작돼 그는 이미 중년에 일가를 이루게 됐다. 이때 그는 그때까지 모았던 목기, 목가구 28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몽땅 기증했다. 과거와 일단 선을 한번 그은 것인데 그 이후로도 마음과 눈을 빼앗는 물건들이 여전히 보이면서 그는 이것저것 다시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모은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치루는 실력테스트이기도 하다. 수십 년 동안 물건을 보고 수집한 화가의 전문 분야는 바깥사람들이 인정해주는 대로 목기, 목가구쪽이다. 그런데 그런 그도 ‘가짜를 사기도 했다’다고 했다. 물론 자기 자신에 치루는 실력테스트는 가짜를 가려내는 일에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높은 뜻(?)은 안목을 기르고 훈련하는 것이다. 그는 물건을 보는 눈을 갈고 닦기 위해 발걸음을 멈추고 그림을 그려주고 했던 것이다.
그는 ‘목기 수집에 내 작업에 준 영향이라면 조형적 안목을 넓힐 수 있었다는 점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좋은 목물(木物)을 가려낼 줄 아는 안목 덕분에 자기 그림 중에서도 ‘좋은 그림과 나쁜 그림을 알아낼 수 있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이런 화가가 본다면 나쁜 그림을 골라가면서도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화랑 주인이나 고객은 참으로 쉬워 보였을 것이다.
물건을 가려서 본다는 것은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다. 그리고 가치 중에서도 가장 개인적인 취향에 기초해 있는 미적 가치로서 물건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개인적 취향이나 기호에 근거한 미적 판단이 개성으로 현현(顯現))된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서안과 폭포
역사상 수많은 화가들이 물건에 사물에 집착했다. 이는 단순히 소유욕이나 정물화의 소재 따위를 얻기 위한 때문은 아니었다. 그 자체가 미학적 활동이며 아울러 자신의 미적 판단에 대한 증거를 확보, 수집하고 또한 위안을 얻기 위한 행동이랄 수 있다. 그래서인지 위대한 화가 중에는 물건에 집착 내지는 수집가들이 많이 있다.
조선시대 베개
김종학 <백화만발>
이 전시에는 그가 다시 모은 수많은 잡동사니, 목가구, 목기, 농기구, 조각보, 석물, 색바랜 베개 등이 그가 그린 그림과 나란히 소개돼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그의 그림에 담긴 영감(靈感)의 뿌리이다. 그런데 거친 필치로 북북 그은 표현주의적 경향의 강렬한 그의 채색화와 밋밋하고 단색조의 미니멀한 조선 목기라는 두 세계 사이에는 실제로 상당한 간극이 놓여있다. 그 간극 사이를 관람객 자신이 스스로의 미학적 상상력으로 채워 넣는 일이 이 전시가 의도한 중요한 관람 포인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