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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소한 그림, 짧은 문장 그리고 어울림 - <노석미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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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시 명 : 노석미展
전시기간 : 2015.9.23-10.31
전시장소 : 서울 갤러리 레이블
글 : 박영택(경기대 교수, 미술평론가)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는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상 모든 활동의 총체가 현상일 텐데 이 세계가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은 곧 의미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세게는 이미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 보여 지기 이전에는 아직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본다는 것은 오랜 기간 삶의 체험에서 축적된 결과에서 비롯된다. 

현상학적 의미를 발생시키는 동력은 인간의 지성이 아닌 몸에 축적된 삶의 체험이라고 한다. 본다는 것, 그린다는 것, 쓴다는 것은 모두 나에게 보인 세계의 현상에 대한 몸의 반응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몸은 개별적으로 다른 체계이기에 그로부터 배태된 예술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아니 전적으로 다른 것, 그 사람만의 몸의 기억과 반응으로 이루어진 작품이 좋은 작품일 것이다. 외부세계에 대한 인간의 반응을 지각이라고 부른다. 


이 지각이 바로 총체적인 몸의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미술작품이란 따라서 단지 눈을 위한 것 장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시각적 충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구체적인 몸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공간을 창출하는 일이다. 

노석미는 그림을 그리고 문자를 기술한다. 이 두 요소를 한 화면에 공존시킨다. 자신의 몸이 보고 느낀 세계의 현상을 그리고 쓴다. 그것이 이 작가의 작업이다. 이 행위를 규정짓는 특정한 목적이나 의미는 무의미하다. 오로지 몸이 살아있는 동안 세계를 접촉하고 그로부터 생각거리가 발생하고 자신의 지각이 작동한다. 그것을 온전히. 솔직히 드러내는 일이 그림 그리는 일이고 쓰는 일이다. 


자연에 거주하면서 고양이 몇 마리와 적조한 삶을 보내는 작가는 자신이 사랑하는 생명체와 사물, 그리고 일상에서 접한 그 모든 것들을 편하게 그려내고 매혹적인 잠언과 같은 짧은 문구를 주문처럼 적어놓는다. 그것은 현상에 대한 자신의 몸의 반응에 대한 충실한 고백이고 사랑하는 것들을 수집하는 일이고 가슴에 품는 일이자 그것들을 앨범의 갈피에 묻어두는 일이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 가슴에 남아 가라앉는 것들, 모두 다 사라지지만 그 찰나의 순간 자신의 지각에 다가와 박힌 보석 같은 것들을 다시 기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것은 마치 하이쿠의 단호한 문장과도 같은, 비애와 애도가 뒤섞인 미적인 행위와도 닮았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2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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