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이재삼展 전시기간 : 2015.9.22.-12.12 전시장소 : 서울 신미술관 글 : 박영택(경기대 교수, 미술 평론가)
이재삼은 자신의 일상에서 만난 자연(나무)을 주목해서 그렸다. 그 특정한 소재인 자연/타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존재다. 그것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다가와 감정의 파문을 일으키는가 하면 익숙한 세계에 구멍을 내고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자신의 일상에서 매번 접하는 ‘아무것도 아닌’ 풍경이 어느 날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왔던 것이다.
이해하기 힘든 그러나 분명 자신의 내부에서 감지하는, 더구나 욕망하는 힘에 의해 그 대상을 다시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이를 집요하게 그렸다. 단색으로만 이루어진, 목탄의 입자에 의해 응고된 이미지는 사실적이면서도 어딘지 초현실적이다. 목탄가루들이 엉겨 붙어 이룬 이 검은 세계는 침침하고 음습하며 더없이 깊다. 작가는 그 검음, 깊음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이 현실계와는 다른 차원의 세계다.
그는 그 안에 칩거하며 자신의 예술세계의 고고함을 드러낸다. 이 결벽과 자존성이 그의 그림을 지탱하는 축이다. 그는 그것을 가시화하기 위해 식물과 물, 달 등 고독하며 불멸하는 자연물을 빌어 자신을 의탁한다. 그리고 단호한 어둠, 검음으로 그리고 문질러가며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밀도를 강박적으로 추구한다. 그러니 이재삼의 그림은 좀 무섭기도 하다.
이재삼, 달빛, 캔버스에목탄화, 291x388, 2010
나는 그 밀도, 집요함. 시간성이 응축된 그의 그림을 그래서 즐겨 본다. 거대한 크기의 그림은 보는 이를 화면 안으로 불러들인다. 그래서 자연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고, 저 대상과 단독으로 마주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유발시킨다. 그래서 보는 이의 심체, 감각을 빨아들인다. 벗어나기 힘든 그림이다.
또한 그의 그림은 고고하고 괴이하다. 음산한 밤의 기운과 서늘한 한기와 뾰족한 정신들이 무성하다. 빽빽한 대숲과 한줄기 폭포수, 얽힌 매화등걸 등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이면서도 이상하게 낯설고 축축하다. 짙고 어두운 밤에 달빛에 의지해 드러난 자연계의 몸들인데 그 몸은 전면적으로, 본질적으로 다가온다. 그것 이외에 다른 것들과는 절연된 체 육박해오는 것이다.
고독하고 자존적인 이 대상들은 실은 작가 자신의 은유다. 적막하고 적요한 밤에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사물의 피부는 익숙한 대상을 무척 낯설게 보여준다. 그리고 그로인해 식물의 피부에 얹혀 지는 그림자를 매력적으로 포착해 그린다. 그것은 또한 현실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서식하는 존재성으로 다가온다.
목탄이라는 식물성 재료가 대나무가 되고 매화가 되었다. 식물을 태워서 이룬 결정으로 식물을 그린다는 것으로 이는 일종의 환원에 해당한다. 면천의 바탕 역시 자연적인 소재이다. 목탄이 면천에 스며들어 깊이 있는 색감을 내고 온전한 식물성의 세계를 표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나무나 매화 같은 사군자, 식물성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다.
고향과 연관된 이미지이자 다분히 전통적인 미감의 기호로도 다가오고 나아가 자존과 자아의 표상이자 내면의 상징들인 셈이다. 그 상징들을 절대적 침묵과 단호한 평면성, 그리고 ‘미니멀’(단색주의)하면서도 극사실주의를 통해 본질적인 깊이로서 선보이고자 한다. 한국적 정체성이나 내면의 은유와 함께 말이다. 70년대 한국미술의 유산과 방법론이 여전히 그의 그림 안에서 지속되고 연장되고 있음을 본다.
오늘날의 회화/타블로의 가능성에 대해서 여러 각도에서 점검하고 있는 여러 작가들이 대두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해서 마치 마감된 듯한, 즉은 듯 밀쳐져있던 평면과 회화, 형상의 논의가 흥미롭게 연장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다시 구상과 재현회화, 극사실적인 회화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모색, 방법론이 활발하게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이재삼의 목탄화가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