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이병직: 스승 김규진 2012.03.26
내시로서의 이병직은 구한말 내시들 가운데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이 두터웠던 유재현의 손자뻘로서 내시들의 세계에서는 중요한 계보를 이은 인물의 하나로 평가되었다. 황현(黃玹)의 『매천야록』에 의하면 유재현은 갑신정변시 김옥균을 꾸짖다 죽임을 당하였다고 전한다. 갑신정변 이후 고종과 명성황후는 유재현에게 관...
61. 이병직: 출신과 가계 2012.03.18
내시가 되기 이전의 이병직의 가계 및 내시가 된 직접적인 이유 등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이병직의 이성손자인 곽영대(법명: 道慧)의 전언에 의하면 "1903년 그의 나이 7살 때 사고로 '사내'를 잃은 뒤 강원도 홍천에서 7000석꾼 내시 집안에 양자로 들어왔다"고 하였다. 조선 왕조 내시부의 마지막...
60. 이병직: 뛰어난 감식안 2012.03.12
정확한 감식안(鑑識眼)이 없다면 뛰어난 물건을 수장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장과 감식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병직이 굴지의 수장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감식안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미인데,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미 그의 고미술품 감식안은 정평이 났다. 김두량, <목우...
59. 이병직: 이용우의 기행 2012.03.05
묵로(墨鷺: 이용우)의 장난은 유명해 신문사 망년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그때(1930년대: 편집자) 신문사에서는 신년호에 화가와 서예가들의 서화를 받아 지면을 장식하기 위하여 망년회로 한 턱 내는 일이 있었다. 초청받은 서화가는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 석정(石丁) 안종원(安鍾...
58.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5-2(完) 2012.02.27
『매일신보』, 1916. 12. 15고서화의 삼일 (5) 만해 미군정으로부터 옥새를 인수받는 오세창(1946. 8․15, 83세) 차외(此外)에도 아직 미성축(未成軸)한 진묵(眞墨)과 진적(眞跡) 이외(以外)의 종정고자(鐘鼎古字)와 임본각본(臨本刻本)과 및 현재인(現在人)의 서화(書畵)에 ...
57.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5-1 2012.02.20
『매일신보』, 1916. 12. 15고서화의 삼일 (5) 만해 한용운, 「고서화의 삼일(三日)」 5, 『매일신보』, 1916. 12. 15 익일(翌日)에 동행(同行)을 약(約)했던 남천(南泉) 도봉(道峯) 양사(兩師)는 사고(事故)를 인(因)하여 동행(同行)치 못하겠다는 통지(通知)가 래(來)하고 김...
56.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4 2012.02.13
『매일신보』, 1916. 12. 14고서화의 삼일 (4) 만해 정학교, 「근역서휘 표제」, 1911년, 29.0×44.4㎝, 서울대학교박물관 제이축(第二軸)의 사십일인서(四十一人書)를 간(看)할 시(時)에는 성삼문(成三問)의 서(書)처럼 오래 본 서(書)는 없도다. 서(書)한 문(文)은 즉 "蓮兮蓮兮...
55.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3 2012.02.06
『매일신보』, 1916. 12. 13고서화의 삼일 (3) 만해 계속(繼續)하여 이십구인(二十九人)의 삼십이화(三十二畵)로 성(成)한 제오축(第五軸)을 열(閱)하니 기중(其中)에는 아순조시(我純祖時)의 기(妓) 소미(小眉)의 난(蘭)과 박창규(朴昌珪)의 낙화(烙畵)를 특색(特色)이라고 할 밖에는 없고 이...
54.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2 2012.01.30
『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8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2) 만해(萬海) 제이행(第二行)은 '통격석비□(通擊石飛□)'의 오자(五字)라 차(此)는 백제유허비(百濟遺墟碑)의 자(字)니 일천이백여(一千二百餘)의 고적(古跡)이라. 차(此)를 견(見)할 시(時)에는 자연(自然)히 암담(暗澹...
53.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1-2 2012.01.16
『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7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1) 만해(萬海) 한용운,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7 이에 차행(此行)의 목적(目的)되는 위창댁(葦滄宅)에 지(至)하여 중문(重門)을 입(入)하니 기정전(其庭前)...
52.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1-1 2012.01.09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은 1916년 11월 26, 27일, 28일의 삼일 간 박한영(朴漢永), 김기우(金杞宇) 등과 함께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의 서울 종로구 돈의동 집을 방문하였다. 한용운은 이때에 오세창이 엮은 ≪근역서휘(槿域書彙)≫와 ≪근역화휘(槿域...
51. 고유섭의 골동관 3-2 :기만과 횡재의 골동세계 2 2011.12.26
고유섭이 『동아일보』 1936년 4월 14일-16일 3번에 걸쳐 연재한 골동수집과 도굴에 관한 글 가운데 세 번째인 4월 16일자의 뒷부분이다. 만근(輓近)의 골동수집 - 기만과 횡재의 골동세계 (3), 『동아일보』 1936. 4. 16 개성박물관 계단 앞에 서 있는 우현 고유섭 그것을 그대로 믿...
50. 고유섭의 골동관 3-1 : 기만과 횡재의 골동세계 1 2011.12.19
고유섭이 『동아일보』 1936년 4월 14일-16일 3번에 걸쳐 연재한 골동수집과 도굴에 관한 글 가운데 세 번째인 4월 16일자 글이다. '황금광시대'라 불리는 1930년대 골동계의 기만과 사기로 점철된 추악한 면모를 실감나게 묘사하였다. 만근(輓近)의 골동수집 - 기만과 횡재의 골동세계 (3)...
49. 고유섭의 골동관 2 - 위조와 기술과 그 감별법 2011.12.12
고유섭이 『동아일보』 1936년 4월 14일-16일 3번에 걸쳐 연재한 골동수집과 도굴에 관한 글 가운데 두 번째인 4월 15일자 글이다. 불상, 불구류 를 위시한 금속류의 감정 방법과 전세품을 ‘전세고(傳世古)’, 출토품을 ‘토중고(土中古)’, 물 또는 바다에서 건져낸 유물을 ‘수중고(水中古)’라 구분...
48. 고유섭의 골동관 1-2 「만근(輓近)의 골동수집 - 빈번한 부장품의 도굴」... 2011.12.04
제47호에 게재한 고유섭의 「만근(輓近)의 골동수집 - 빈번한 부장품의 도굴」, 『동아일보』 1936. 4. 14의 나머지 부분이다. 고유섭 선생. 개성박물관 사택 뜰에서(1943년 경) 조선에 있어서의 고분도굴은 이미 삼국말기에 있었으니 오늘날에도 고구려 백제대 고분이 하나도 성치 못한 것은 나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