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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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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7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1) 만해(萬海)

 

 
한용운,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7

  이에 차행(此行)의 목적(目的)되는 위창댁(葦滄宅)에 지(至)하여 중문(重門)을 입(入)하니 기정전(其庭前)에는 수분(數盆)의 국화(菊花)가 유(有)하여 위로(萎老)에 근(近)하였으니 기능상(其凌霜)의 만절(晩節)은 오히려 편시춘풍(片時春風)에 영고(榮枯)를 일임(一任)하는 도리(桃李)를 괴살(愧殺)할만한 기백(氣魄)이 유(有)하더라. 응접실(應接室)에 입(入)하여 좌(坐)에 취(就)하니 기우장(杞宇丈)은 여(余)를 위창장(葦滄丈)에게 소개(紹介)하여 지면(知面)의 예(禮)를 행(行)하니 그는 미송(微笑)의 안(顔)으로 담소유유(談笑悠悠)하여 대인접어(對人接語)에 자못 낙화유수(落花流水)의 취(就)가 유(有)한지라. 하방면(何方面)으로 보던지 특성(特性)이 유(有)한 호고가(好古家)로 뵈는 점(點)을 발견(發見)하기는 적이 용이(容易)치 않더라. 한훤(寒喧)의 화(話)를 필(畢)하고 본문제(本問題)에 입(入)하니 그는 언(言)하되 오가(吾家)에는 약간(若干)의 고서화(古書畵)를 유(有)하였는데 기일전(幾日前)부터 몇 분 선사(禪師)가 래관(來觀)코자 한다는 말은 기우장(杞宇丈)에게 루문(屢聞)하였으나 근간(近間)에 전거(轉居)를 인(因)하여 반이중(搬移中)에 재(在)한 고(故)로 미과(未果)하였더니 금(今)에는 대개(大槪) 정돈(整頓)되었으니 종람(縱覽)하시오 하고 기망년(其忘年)의 우(友)인 기우장(杞宇丈)을 고(顧)하고 소(笑)하면서 군(君)은 서화축운반(書畵軸運搬)의 책무(責務)를 임(任)하라하니 기우장(杞宇丈)은 흔연(欣然)히 기(起)하여 서화(書畵)의 고장(庫藏)으로 진(進)하면서 서화축(書畵軸)을 운래(運來)하기 전(前)에 먼저 벽상(壁上)의 서화(書畵)를 견(見)하라하니 차(此)는 상애(相愛)의 정(情)에서 유출(流出)하는 인생측면(人生側面)의 색태(色態)이더라.

  
오세창, 「제고구려고성각자(題高句麗故城刻字)」,
『서지청(書之鯖)』 所收, 黃紙, 26.5×15.3㎝, 1901

  여(余)는 두(頭)를 전(轉)하여 사벽(四壁)을 관(觀)하니 환벽(環壁)의 서화(書畵)가 다 가관(可觀)할 점이 유(有)한데 제일(第一) 먼저로는 북벽상(北壁上)에 부(付)한 주정(周鼎)의 명(銘)을 그대로 기정(其鼎)에서 □고(□叩)한 것인데 차(此)도 심상(尋常)히는 뵈지 않고 가장 격렬(激烈)한 인상(印象)을 주는 것은 서벽상(西壁上) 즉(卽) 서화(書畵)의 고장(庫藏)을 출입(出入)하는 문미(門楣)에 게(揭)한 서(書)인데 차(此)는 석각(石刻)한 서(書)의 중(中)에서 기자(幾字)씩 모인(摸印)한 오개(五箇)의 편폭(片幅)을 연장(聯裝)한 것이라. 제일행(第一行) '物苟小兄'의 사자(四字)는 고구려(高句麗) 고성벽(故城壁)의 자(字)니 대략(大略) 일천오백여년(一千五百餘年)의 성상(星霜)을 경(經)한 수적(手跡)이라 차(此)를 견(見)할 시(時)에 위창장(葦滄丈)은 일목갑(一木匣)을 개(開)하고 일편(一片)의 석(石)을 시(示)하니 차(此)는 곧 物苟小兄 등자(等字)를 각(刻)한 성석(城石)이라. 여(余)는 차석(此石)을 무(撫)하면서 물었노라. 여(汝)는 당시(當時)에 영예(榮譽)있는 인(人)의 수(手)에 각자(刻字)되었으리라.

 
오세창, <상형고문(象形古文)>, 종이에 먹, 25×36㎝, 1939

  고구려(高句麗)는 동(東)으로 흑룡강(黑龍江)의 피안(彼岸)까지 북(北)으로 몽고(蒙古)까지 서(西)으로 발해(渤海)까지 사실상(事實上)으로 토지(土地)를 개척(開拓)하고 흉해(胸海)에는 소(小)하여도 아세아대륙(亞細亞大陸)을 일수(一手)로 통괄(統括)코자 하는 대이상(大理想)을 포장(包藏)한 광개토왕(廣開土王)과 여(如)한 대영웅(大英雄)을 산출(産出)치 아니하였다. 아 백만(百萬)의 수병(隋兵)을 살수(薩水) 이북(以北)에 편갑(片甲)도 생환(生還)치 못하게 한 대영웅(大英雄) 을지문덕(乙支文德) 기인(其人)을 잉육(孕育)하였었나니라. 그러나 그러한 고구려(高句麗)도 조화소아(造化小兒)의 기롱(欺弄)을 해탈(解脫)치 못하여 만고흥망(万古興亡)의 복철(覆轍)을 도(蹈)하였고나 여(汝)는 얼마나 추우빈분(秋雨繽粉)한 오탄강상(烏灘江上)에서 행인(行人)의 지점(指點)을 수(受)하다가 마침내 여(余)의 안(眼)에까지 영(映)하나냐고 무성(無聲)의 문(問)을 발(發)하였으나 기석(其石)은 천년(千年)을 일일(一日)과 여(如)히 침묵(沈黙)이더라.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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