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8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2) 만해(萬海)
제이행(第二行)은 '통격석비□(通擊石飛□)'의 오자(五字)라 차(此)는 백제유허비(百濟遺墟碑)의 자(字)니 일천이백여(一千二百餘)의 고적(古跡)이라. 차(此)를 견(見)할 시(時)에는 자연(自然)히 암담(暗澹)한 계룡산(鷄龍山)의 월색(月色), 명열(鳴咽)한 백마강(白馬江)의 파성(波聲), 기중간(其中間)에 재(在)한 백제(百濟)의 고도(古都)인 부여(夫餘)를 연상(聯想)하는데 아울러 동타형극(銅駝荊棘)의 감(感)을 기(起)하여 부세흥망(浮世興亡)의 관계(關係)를 부지(不知)하는 여(余)로도 유유(悠悠)한 감회(感懷)가 점점록창(漸漸綠漲)되야 편각(片刻)의 우주(宇宙)는 도화담수(桃花潭水)로 화(化)하더라.
이세득, <위창초상>, 유채(油彩), 60×45.6㎝, 간송미술관
제삼행(第三行)은 지리산단속사(智異山斷俗寺) 신행선사(神行禪師)의 비문(碑文) 중(中) '동우불광청(同遇佛光淸)'의 오자(五字)라 차(此)는 신라(新羅) 승(僧) 영업(靈業)의 서(書)니 해동사탑문자(海東寺塔文字)의 최고(最古)한 자(字)라. 해동금석록(海東金石錄)에 운(云)하되 '영업유릉운지필(靈業有凌雲之筆)'이라하니 기(其) 필세(筆勢)를 가지(可知)오. 제사행(第四行)은 충주(忠州)에 재(在)한 정토사법경대사자등탑비문(淨土寺法鏡大師慈燈塔碑文)의 중(中) '대사유악강(大師惟岳降)'의 오자(五字)니 고려사찬(高麗沙粲) 구족달(具足達)의 서(書)오 제오행(第五行)은 '일시동인실개유지(一視同仁悉皆宥之)'의 팔자(八字)라. 윤공부(尹孔俯)의 서(書)니 양주(楊州) 회암사(檜岩寺)에 재(在)한 무학선사(無學禪師)의 비문(碑文)이라. 상삼행(上三行)은 불가(佛家)에 관(關)한 명적(名跡)인데 불문(佛門)의 일인(一人)된 여(余)가 스스로는 몽상(夢想)도 아니하였다가 타인(他人)의 소장(所藏)을 견(見)하고 □하나무나 자극(刺戟)을 수(受)함은 참괴(慙愧)를 불감(不堪)하리로다.
한용운,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 2, 『매일신보(每日申報)』, 1916. 12. 8
어느 겨울에 기우장(杞宇丈)은 칠폭(七幅)의 화첩(畵帖)을 당중(堂中)에 치(置)하고 열람(閱覽)을 최촉(催促)하는지라 벽상(壁上)의 서(書)를 간(看)하던 모(眸)를 전(轉)하여 시선(視線)을 화첩(畵帖)에 주(注)하니 기화첩(其畵帖)의 제장(製裝)은 의장(意匠)이 정교(精巧)하고 재식(裁飾)이 정제(整齊)하여 신밀(愼密)과 정투(精透)를 극(極)하고 표제(標題)는 '근역화휘(槿域畵彙)'라 하였으니 다 위창장(葦滄丈)의 수제(手製)라 하더라.
오세창 편, 『근역화휘』 天地人 3첩
근역화휘(槿域畵彙) 제일축(第一軸)은 삼십일인(三十一人)의 사십화(四十畵)로 성(成)한 것이라. 궐두(闕頭)의 제일폭(第一幅)은 즉 고려수망(高麗垂亡)의 군(君) 공민왕(恭愍王)의 화양(畵羊)인데 아경(俄頃)에 고구려(高句麗) 고성(故城)의 자(字)와 백제유허비(百濟遺墟碑)의 자(字)를 견(見)할 시에 유동(流動)하였던 감회(感懷)의 여파(餘波)는 돌연(突然)히 흉해(胸海)를 진탕(振盪)하여 전속력(全速力)으로 패초잔와(敗礎殘瓦)의 일편황지(一片荒地)를 유(留)할 뿐인 개성(開城)의 만월대(滿月臺)에 경주(傾注)되더라.
공민왕, <이양(二羊)>, 비단에 채색, 15.7×22㎝, 간송미술관
공민왕(恭愍王)의 령(靈)이여. 왕(王)은 고려(高麗) 수망(垂亡) 당시(當時)에도 과연(果然) 도화(圖畵)를 학습(學習)할 여가(餘暇)가 유(有)하였더뇨. 혹(或) 습화(習畵)의 가극(暇隙)을 환(換)하여 경국(經國)의 위책(偉策)과 신민(新民)의 명덕(明德)을 강(講)하였던들 중흥주(重興主)의 금관(金冠)이 왕(王)의 두상(頭上)에 대(戴)하였을는지도 지(知)치 못하였으리로다. 차화양(此畵羊)은 혹(或) 고려중원(高麗中原)에서 각축(角逐)하던 록(鹿)의 후신(後身)이 아닌가하는 의(疑)를 발(發)하겠도다. 이율곡(李栗谷)의 모당(母堂) 신부인(申夫人)의 초충화(草虫畵)와 윤신지(尹新之)의 화(畵)에 기부인(其夫人) 정혜옹주(貞惠翁主)의 수(繡)를 가(加)한 연화(蓮畵)는 적이 희귀(稀貴)한 색채(色彩)를 대(帶)하였고 제이폭(第二幅)은 삼십인(三十人)의 사십일화(四十一畵)로 성(成)하였는데 별(別)로 인상(印象)되는 자(者)― 무(無)하고 제삼축(第三軸)은 삼십일인(三十一人)의 사십일화(四十一畵)로 성(成)하였는데 기중(其中)에 유덕장(柳德章)의 죽화(竹畵)가 유(有)한데 유(柳)는 아숙종시인(我肅宗時人)이니 유시(幼時)로부터 죽(竹)을 화(畵)함에 심력(心力)을 전주(專注)하여 학문(學問)을 방(妨)하는 고(故)로 기선생(其先生)이 화죽(畵竹)을 금(禁)하기 위하여 달초(撻楚)를 가(加)한 즉(卽) 유(柳)는 호읍(號泣)하면서 수지(手指)로 루흔(淚痕)을 화(畵)하여 죽(竹)을 화(畵)하였다는 기담(奇談)을 전(傳)하는 인(人)이라 시(是)로 유(由)하여 관(觀)하면 인(人)을 교(敎)하는 자(者)는 가급적(可及的) 기인(其人)의 소장(所長)을 수(隨)하여 지도(指導)함이 가(可)함을 지(知)할지로다. 제사축(第四軸)은 월성(月城) 김부인(金夫人)의 초과화(艸果畵)가 조금 주의(注意)를 □하더라. 이십인(二十人)의 이십구화(二十九畵)로 성(成)한 차축(此軸)을 종(終)함에 다과(茶果)를 진(進)하는지라.
신사임당, <노연도(鷺蓮圖)>, 비단에 먹, 22×18.8㎝, 『근역화휘』 天帖 9
여(余)는 안(眼)으로 화(畵)를 간(看)하고 수(手)로 필주(筆主)를 초록(抄錄)하기에 분망(紛忙)하여 수편(數片)의 감(柑)과 일개(一介)의 시(柿)를 끽(喫)할 뿐이니 차(此)는 그리워하던 영예(榮譽)스러운 아고인(我故人)의 수택(手澤)을 접촉(接觸)하니 하(何)의 인력(引力)보다도 강(强)한 그네의 미(美)의 광(光)에 탈연(奪戀)되어 과거환화(過去幻畵)의 염(艶)이 현전실물(現前實物)의 애(愛)를 초월(超越)함이라. '심수만경전(心隨萬境轉: 마음이 여러 가지 대상에 따라 자꾸 바뀜을 이르는 말, 편집자)'의 의(義)가 멂이안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