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감식안(鑑識眼)이 없다면 뛰어난 물건을 수장할 수 없기 때문에 수장과 감식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이병직이 굴지의 수장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뛰어난 감식안이 전제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의미인데, 일제강점기 당시에 이미 그의 고미술품 감식안은 정평이 났다.
김두량, <목우도(牧牛圖)>, 종이에 수묵담채, 31×51㎝, 이병직 구장(舊藏), 현재 평양미술박물관 소장.
이병직의 뛰어난 서화 감식안을 증명해 주는 예가 현재 평양미술박물관에 있는 조선 후기의 화원(畵員) 김두량(金斗樑: 1696-1763)의 <목우도(牧牛圖)> 또는 <목동오수(牧童午睡)>이다. 1934년에 간행된 『조선고적도보』 14(도판번호 5946)에 이병직 소장으로 수록되어 있는 김두량의 <목우도>는 여름 날 버드나무 밑에서 낮잠 자고 있는 목동과 사실적인 묘사의 황소를 대비시켜 그린 목가적 소재의 작품으로, 황소의 치밀한 묘사와 골격표현 등에서 당시 청나라를 통해 들어온 서양화풍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는 점으로 유명하다. 『조선고적도보』에 수록될 당시만 해도 화첩의 접힌 부분이 선명하였고 소의 뒷다리에 상한 부분이 보이며 화면 곳곳에 주름과 먹이 박락된 부분도 있었다.
김두량, <목우도>의 부분(왼쪽 아래에 '金德夏'라 쓴 글씨가 보인다)
이 그림의 맨 왼쪽 아래에 김두량의 아들로 역시 화원을 지낸 '김덕하(金德夏)'라는 작은 세로글씨가 있었는데, 현재의 그림에서는 지워져 있다. 이 그림이 김덕하라는 글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두량의 작품이 된 것은 이병직의 감식안에 의한 것으로 전한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정양모 선생은 "김덕하라는 관기가 있는 데도 김두량이라 한 것은 당대의 감식가인 송은 이병직씨의 고증에 의한 주장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며 이번에도 김두량 소작이라 한 것 역시 그 분의 안목을 존중한 것"이라 하였다.
김두량, <흑구도>, 18세기 전반, 종이에 수묵, 23×26.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두량의 작품으로 전하는 그림 가운데 <목우도>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흑구도(黑狗圖)>는 김두량의 서명이나 낙관은 없지만 역시 김두량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두 그림은 구도와 포치는 물론 음영법과 함께 해부학적 관심마저 보여주는 듯한 치밀한 표현이 유사하며, 특히 절파풍(浙派風)의 활달한 필치로 된 바닥 풀 묘사 역시 같은 경향이다.
김두량, <월야산수도>, 1744, 종이에 수묵담채, 81.8×48.8㎝,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와 같은 필치는 김두량의 대표작으로 유명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월야산수도(月夜山水圖)>와도 같기 때문에 이병직은 <목우도>와 <흑구도>를 김두량의 그림으로 판단한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