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보』, 1916. 12. 14
고서화의 삼일 (4) 만해
정학교, 「근역서휘 표제[근묵(槿墨)]」, 1911년, 29.0×44.4㎝, 서울대학교박물관
제이축(第二軸)의 사십일인서(四十一人書)를 간(看)할 시(時)에는 성삼문(成三問)의 서(書)처럼 오래 본 서(書)는 없도다. 서(書)한 문(文)은 즉 "蓮兮蓮兮 旣通且直 不有君子 曷以此德 在泥不朽 在水不着 君子居之 何陋之有 蓮兮蓮兮 倩名之曰 淨友"가 시(是)라. 성삼문(成三問)의 성삼문(成三問) 된 소이(所以)는 기단(其端)을 차문(此文)에서 견(見)하여도 족(足)하지 아니한가. 성삼문(成三問)은 참 소양(素養)이 유(有)하였음을 지(知)하리로다.
성삼문, 「연찬(蓮贊)」, 종이에 묵서, 22.4×10.4㎝(『근역서휘』 2-1)
일조(一朝)의 실현(實現)은 백년(百年)의 이상(理想)에서 출(出)하나니 평거(平居)의 수양(修養)이 무(無)하고 일시(一時)의 요행(僥倖)을 희관(希觀)하는 자(者)는 우중(愚中)의 우(愚)니라. 제삼축(第三軸)의 삼십팔인(三十八人) 서(書)와 이퇴계(李退溪) 조남명(曺南溟) 병(並) 삼십사인(三十四人)의 제사축(第四軸)을 종(終)하고 삼십육인(三十六人) 서(書)의 제오축(第五軸)을 대(對)하니 이산해(李山海)의 홍묵서(紅墨書)는 실(實)로 만록총중일점홍(萬綠叢中一點紅)의 이색(異色)을 대(對)하고 심의겸(沈義謙) 김효원(金孝元) 정철(鄭澈) 제인(諸人)의 서(書)를 견(見)할 시(時)에는 조선(朝鮮)의 계급사회(階級社會)로 수라장(修羅場)을 작(作)하던 색당(色堂)을 연상(聯想)하겠고 송익필(宋翼弼)의 서(書)에는 자시중(自詩中)에 가장 후인(後人)의 구(口)에 회자(膾炙)되는 "花欲開時方有色 水成潭處却無聲"의 구(句)가 유(有)하여 백감(百感)이 교회(交會)하는 중(中)에 기분시취(幾分詩趣)의를 야기(惹起)하더라.
이순신, 「서간(書簡)」, 1564년, 종이에 묵서, 24.5×32.2㎝(『근역서휘』 6-28)
삼십삼인서(三十三人書)를 유(有)한 제육축(第六軸) 중(中)에는 이원익(李元翼(梧里))의 서(書)가 유(有)하니 기문(其文)은 즉(卽) "令監荷 恩攉乘間不知 令監將何以報國 一念耿耿不少弛也 卵反魚尾感情 感情 但 如此修人事生 所不喜只願綏定 軍民壯固南鎭屹然 爲國家長城則老生死而無憾矣謹拜"라 한 친간(親簡)이니 의(意)컨대 당시(當時)에 남방(南方)의 하병사(何兵使)로 재임(在任)하는 인(人)이 란(卵)과 어(魚)를 궤정(饋呈)하여 차(此)를 답(答)한 서(書)인듯 하도다. 차서(此書) 중(中)에는 근엄(謹嚴)한 재상(宰相)의 풍도(風度)가 유(有)한 뿐아니라 또한 우국(憂國)의 지성(至誠)을 견(見)할지라 차문(借問), 군민(軍民)이 수정부(綏定否)아 남진(南鎭)이 장고부(壯固否)아 그의 영(靈)이여 감(憾)이 유(有)한가 감(憾)이 무(無)한가 허난설부인(許蘭雪夫人)은 자시(自詩) "烟鎻瑤空鴈未歸 桂花陰裡閉珠扉 溪頭盡日神靈雨 滿地香雲濕不飛"를 서(書)하였으니 기(其) 여운(餘韻)을 가국(可掬)이라. 자못 적막(寂寞)지 않고 송상현(宋象賢) 이순신(李舜臣) 석유정(釋惟政, 泗溟)의 제서(諸書)에 대(對)하여는 난만(爛漫)한 감상(感想)을 초월(超越)하여 침묵(沈黙)의 경의(敬意)를 수(守)하고 제칠축(第七軸)은 이십구인(二十九人)의 서(書)라.
허난설헌, 「시」, 1587년, 비단에 묵서, 21.6×17.0㎝(『근역서휘』 6-4)
이덕형(李德馨)의 송운대사(松雲大師)에게 송(送)한 서(書)와 석언기(釋彦機, 鞭羊)의 서(書)에 시선(視線)을 잠정(暫停)하고 한호(韓濩, 石峯) 차천로(車天輅) 병(並) 삼십삼인(三十三人)의 서(書)를 유(有)한 제팔축(第八軸)을 과(過)하여 삼십이인 서(三十二人書)의 제구축(第九軸)에 지(至)하니 이괄(李适)의 서(書)가 빨리 인상(印象)되고 정두경(鄭斗卿) 병(並) 이십팔인(二十八人) 서(書)의 제십축(第十軸)과 삼십삼인(三十三人) 서(書)의 제십일축(第十一軸)과 이십칠인(二十七人) 서(書)의 제십이축(第十二軸)과 이십팔인 서(二十八人書)의 제십삼축(第十三軸)을 주마등(走馬燈)과 여(如)히 간과(看過)하니 동관(同觀)하는 김남천사(金南泉師)는 너무 속(速)히 본다고 서서(徐徐)히 열(閱)하기를 요구(要求)하니 남천사(南泉師)는 조선불가(朝鮮佛家) 제일류(第一流)의 명필(名筆)인 고(故)로 서법(書法)의 자황(雌黃)을 감별(鑑別)코자 함이라.
허목, 「글씨(興閣)」, 종이에 묵서, 34.0×40.5㎝(『근역서휘』 14-5)
서법(書法)보다 역사적(歷史的)으로 견(見)하는 여(余)와는 동관이취(同觀異趣)의 감(感)이 유(有)한 듯 하더라. 이십칠인서(二十七人書)의 제십사축(第十四軸)에서 송우암(宋尤庵)의 서(書)와 유명(有名)한 허미수(許眉叟)의 전(篆)을 견(見)하고 김수항(金壽恒) 병(並) 이십칠인(二十七人) 서(書)의 제십오축(第十五軸)과 남구만(南九萬) 병(並) 이십육인서(二十六人書)의 제십육축(第十六軸)을 열(閱)하고 이십육인서(二十六人書)의 제십칠축(第十七軸)을 열(閱)하고 이십육인서(二十六人書)의 제십칠축(第十七軸)에서 박태보(朴泰輔)의 서(書)를 견(見)하니 "차철(此鐵)이 냉(冷)하니 경자래(更煮來)하라"한 어음(語音)이 이막(耳膜)을 고동(鼓動)하는 듯하다. 이십사인서(二十四人書)의 제십팔축(第十八軸)과 이십육인서(二十六人書)의 제십구축(第十九軸)과 이십사축(二十사축)과 이십육인서(二十六人書)의 제십구축(第十九軸)과 이십사인서(二十四人書)의 제이십축(第二十軸)과 신청천(申淸泉) 윤사국(尹師國) 병(並) 이십팔인서(二十八人書)의 제이십일축(第二十一軸)과 정약용(丁若鏞) 병(並) 이십사인(二十四人) 서(書)의 제이십이인(第二十二人) 축(軸)과 김정희(金正喜, 秋史) 병(並) 이십칠인(二十七人) 서(書)의 제이십삼축(第二十三軸)을 간파(看罷)하니 즉(卽) 하오(下午) 사시반(四時半)이라. 범육백구십이인(凡六百九十二人)의 진묵(眞墨)을 불과(不過) 삼시간(三時間)에 열진(閱盡)함은 이득(易得)치 못한 승수(勝手)라.
오세창의 인장, <만법귀일(萬法歸一)>
또 기속첩(其續帖)이 유(有)한데 차(此)는 명일(明日)에 여(余)의 우거(寓居)로 회합(會合)하여 여연(餘緣)을 극종(克終)하기로 약(約)하고 귀래(歸來)하니 어느 고인(故人)의 상우(喪耦)한 부음(訃音)이 래도(來到)하여 안상(案上)에 재(在)하니 새삼스럽게 인세(人世)의 무상(無常)을 상기(想起)하겠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