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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 한용운이 본 오세창: 고서화의 삼일 5-2(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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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16. 12. 15
고서화의 삼일 (5) 만해

 
미군정으로부터 옥새를 인수받는 오세창(1946. 8․15, 83세)

차외(此外)에도 아직 미성축(未成軸)한 진묵(眞墨)과 진적(眞跡) 이외(以外)의 종정고자(鐘鼎古字)와 임본각본(臨本刻本)과 및 현재인(現在人)의 서화(書畵)에 지(至)하여는 기수(其數)가 자못 심다(甚多)하여 다소(多少)의 기념(記念)될 만한 것도 불무(不無)하나 여(余)의 단필(短筆)로는 일일(一一)이 채록(採錄)하기 곤란(困難)하더라.


오세창 제(題), 경남 남해(南海) <금산마애전각(錦山磨崖篆刻) 묵탁(墨拓)>, 종이 두루마리, 55.5×105.5㎝

 
오세창, <운수재(雲樹齋)>(해강 김규진의 당호), 목재 편액, 55.5×105.5㎝

조선고서화(朝鮮古書畵)를 이렇듯 수집(蒐集)함은 실(實)로 일조일석(一朝一夕)의 사(事)가 아니라 그 가전(家傳)의 사업(事業)인데 중간(中間)에 세고(世故)의 황파(荒波)를 인(因)하여 유실(流失)된 것도 불소(不少)하고 그가 전력(專力)으로 착수(着手)하기는 거금(距今) 칠년전사(七年前事) 인데 기신로(其辛勞)와 성권(誠勸)에 대(對)하여는 하인(何人)이라도 동정(同情)을 표(表)치 아니할 수 없도다. 서화(書畵)의 원본(原本)을 취집(聚集)함에는 종종(種種)의 방법(方法)을 시(施)하여 혹(或) 중가(重價)로 매득(買得)도 하며 혹(或) 타인(他人)의 기증(寄贈)도 유(有)하며 혹(或) 차득(借得)도 유(有)하여 심수박방(深搜博訪) 함에는 원(遠)에 지(至)치 아니한 지(地)가 무(無)하고 심(深)을 궁(窮)치 아니한 처(處)가 무(無)하며 원본(原本)을 득(得)함에 기필주(其筆主)의 역사(歷史)를 고구(考究)하며 기연대(其年代)를 심사(審査)하여 폭(幅)의 차서(次序)를 정돈(停頓)하며 폭(幅)을 연(聯)하여 축(軸)을 제(製)하기에 골몰(汨沒)하여 정신상(精神上)으로나 체력상(體力上)으로나 거의 편시(片時)의 간극(間隙)이 무(無)하였다하니 그는 차외(此外)에는 우려(憂慮)도 무(無)하였으리로다.

 
오경석 대(代)의 인보(印譜).
오른쪽부터 『몽화루인보(夢華樓印譜)』(오경석의 妹弟 硏香 李昌鉉의 인보),
『석년인고(石年印攷)』(오경윤 인보), 『천죽재인정(天竹齋印政)』(오경석 인보),
『오씨인집(吳氏印集)』(오세창 인보), 『해주오씨인신(海州吳氏印信)』(오경석의 인보)

 
오세창의 인보. 오른쪽부터, 『찬화실인보(粲花室印譜)』, 『철필잔영(鐵筆殘影)』,
『오씨단전(吳氏丹篆)』, 『위창인보(葦滄印譜)』

칠년(七年)의 성상(星霜)이 구(久)치 아니함에 안이어날 칠년(七年)을 일일(一日)과 여(如)히 노고(勞苦)도 불탄(不憚)하고 금전(金錢)도 희생(犧牲)하여 지나(支那)나 일본(日本)의 것도 아닌 서양(西洋)의 것도 아닌 그리 명필명화(名筆名畵)만도 아닌 때깃고 좀먹고 한 조선고인(朝鮮古人)의 수적(手跡)을 이같이 모음은 하(何)를 위(爲)함인가 고물(古物)이 하(何)인지 부지(不知)하는 조선인(朝鮮人)의 안목(眼目)으로는 심상(尋常)히 견(見)치 아니하면 반드시 편괴(偏怪)하되 하기 이(易)하리로다 여(余)는 문(聞)하였로라 기국(其國)의 고물(古物)은 기국민(其國民)의 정신적(精神的) 생명(生命)의 량(粮)이라하더라. 여(余)는 차(此) 고서화(古書畵)를 견(見)한 시(時)에 대웅변(大雄辯)의 고동연설(鼓動演說)을 청(聽)함 보다도 대문호(大文豪)의 애정소설(哀情小說)을 독(讀)함보다도 하(何)에서 득(得)함보다도 더 큰 자극(刺戟)을 수(受)하였노라.

 
오세창의 수장품, 『삼한금석록(三韓金石錄)』 등 금석학 관련 서적

 
오세창의 자각(自刻) 실인(實印) 부분

위창 선생(葦滄先生)은 조선(朝鮮)의 독일무이(獨一無二)한 고서화가(古書畵家)로다. 그런 고(故)로 그는 조선(朝鮮)의 대사업가(大事業家)라 하노라. 여(余)는 주제(主題)넘은 망단(妄斷)인지는 모르지마는 만일 사태(沙汰)났으나마 북악(北岳)의 남(南), 공원(公園)은 되었으니마나 남산(南山)의 북(北)에 장차 조선인(朝鮮人)의 기념비(記念碑)를 입(立)할 일(日)이 유(有)하다하면 위창선생(葦滄先生)도 일석(一石)을 점령(占領)할 만하다 하노라. 조선고서화(朝鮮古書畵)의 필주(筆主) 되시는 여러 어른의 영(靈)이시어 위창선생(葦滄先生)이시여 일한(日寒)이 여차(如此)하니 유명자애(幽明自愛)어다. (完)

 
'오세창의 - 전각 서화감식 콜렉션 - 세계' 전시회 안내문 표지, 8월의 문화인물 ․ 한국서예사 특별전 20,
예술의 전당, 2001.7.27-8.26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2.02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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