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섭이 『동아일보』 1936년 4월 14일-16일 3번에 걸쳐 연재한 골동수집과 도굴에 관한 글 가운데 두 번째인 4월 15일자 글이다. 불상, 불구류 를 위시한 금속류의 감정 방법과 전세품을 ‘전세고(傳世古)’, 출토품을 ‘토중고(土中古)’, 물 또는 바다에서 건져낸 유물을 ‘수중고(水中古)’라 구분하여 언급한 내용이 흥미롭다.
(※ 원문의 한자를 대폭 줄였고, 한글병기를 하였으며 일부 현대문법에 맞게 한 부분도 있다. 편집자의 해설은 [ ] 안에 넣었다.)
만근(輓近)의 골동수집
- 위조와 기술과 그 감별법 (2), 『동아일보』 1936. 4. 15
고유섭 선생 자화상
이리하여 귀중한 자료가 소실되는 반면에 가져나온 고물도굴상(古物盜掘商) 중에는 몹쓸 물건까지도 고물(古物)이면 귀중한 것인 줄 알고 터무니없는 호가를 하는 우(愚)□도 적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 손에 발굴되는 유물이야 어찌 가엾지 아니하랴 마는 덕택에 과거 삼사십년까지도 고분서 나온 것이라면 귀신이 붙는다하여 집안에 들이기커녕 돌보지 않던 이 땅의 미망가(迷妄家)들이 자기네 신주(神主) 이상으로 애지중지케 된 것은 무엇보다 치사(致謝)할 노릇이요 이곳에 예술신(藝術神)의 은총보다도 골동으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재화의 위세를 한층 더 거룩히 쳐다보지 아니할 수 없다.
고유섭 선생 유필(遺筆),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論語』, 爲政篇)”
고유섭, 개성박물관 앞에서(오른쪽).
위선 알기 쉬운 감별법을 들자면 동철기에는 전세고색(傳世古色)과 토중고색(土中古色)과 수중고색(水中古色)의 세 가지를 구별하는데 조선의 동철기라면 대개 토중고색이 있을 뿐이요 전세고색이나 수중고색은 없다하여도 가(可)하다. 전세고색이라는 것은 세전(世傳)하여 사용하는 가운데 자연히 생겨난 고색(古色)이니 속칭 ‘오동색(烏銅色)’이라는 색소에 근사하여 불구류(佛具類)에서 다소 볼 수 있을 뿐이요 토중고색이라는 것은 토중(土中)에서 생긴 고색인데 심청색(深靑色)을 띠운 것이 보통인데 위조하는 것들은 후자 토중고색의 □□이 많으나 그러나 단시일간에 □색(色)을 내느라고 유산(硫酸)같은 것을 뿌린다든지 오줌독에 잠거 둔다든지 시궁창에 묻어둔다고 하여 대개는 소금버캐[액체 속에 들었던 소금기가 엉겨 생긴 찌끼]같은 백유(白乳)가 둔탁(鈍濁)하게 붙어있고 동철(銅鐵)의 음향도 청려(淸麗)치 못하다. 특히 불상 같은 것에는 순금은(純金銀)으로 조성된 것이 지금은 절대로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 가(可)할 것이요 동표(銅表)에 그윽이 보이는 도금의 흔적만 가지고 갈아본다든지 깎아 본다든지 하여 모처럼 얻은 보물을 손상치말 것이며 혹 기명(記銘)이 있는 예도 있으나 대개는 의심하고 들어 덤비는 것이 가장 안전한 편이다.
개성 현화사비 앞에서(왼쪽부터 고유섭, 황수영, 김경배).
1930년대 경매도록에 실린 불상들(경성미술구락부 간행).
특히 용모라도 좀 얌전하고 의문(衣紋)도 명랑(明朗)히 되었거든 대판[大板: 오사카] 나라(奈良) 경도(京都) 등지의 미술학생의 조작인줄 알 것이며 조선서 위조된 것 중에는 진철(眞鐵)덩어리에 마검(磨劒)의 흔적이 임류(淋溜)한 것이 많고 아주 남작(濫作)에 속하는 것으로는 악연(惡鉛)으로 주조(鑄造)된 것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이 미술사적으로 말하더라도 지금 돌아다니는 종류의 불상들은 대개 척촌(尺寸)에 지나지 않는 소금상(小金像)들인데 조선에 있어서 소금상으로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것은 삼국시대와 신라시대에 한(限)하고 있다고 하여도 가(可)하다. 그런데 삼국시대의 불상은 원체 많지 못한 것이며 신라시대의 불상이라도 우수한 작품은 거개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어 가히 볼 만한 것은 민간에 돌게 되지 아니한다. 경성의 누구는 현재 창경궁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삼국기 미륵상의 모조품을 사가지고 하는 말이 “어느 날 믿을 만한 사람한테서 저것을 샀는데 그 후 똑같은 것이 다시 나오지를 아니하는 것을 보니까 저것이 진자(眞者)임이 틀림없겠지요”한다. 이런 사람을 ‘□芽出度□人’이라 하는데, 백발이 성성한 자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보니까 일편 가엽기도 하였다. 어떤 놈이 몹시도 골려 먹었구나 하였지만 오히려 이러한 숙맥(菽麥)의 부옹(富翁)이 있는 덕택에 없는 사람이 살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사는 사람은 돈 있는 사람이요 파는 사람은 돈 없는 사람이니, 그 돈 있는 자가 하나님의 아들 같은 자가 아니요 ××를 건너와서 별짓을 다하여 축적한 돈이니 이악보덕(以惡報惡)으로 그런 자의 욕안(慾眼)을 속여서 구복(口腹)을 채우기로 유태인 배척하듯 그리 미워할 것도 없다. 이러한 것은 오히려 나은 편이요 개성지방에는 도자기열(陶磁器熱)로 말미암아 위조기매(僞造欺賣)도 그럴 듯하게 연극이 꾸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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