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수장가의 조건 2011.03.28
어렵게 수집한 막대한 양의 고미술품을 1940년과 1941년의 두 차례의 경매회에서 '처분'해 버린 박창훈에 대한 주변의 평은 탐탁지 않았다. 오봉빈은 "박씨는 의업(醫業)으로 성공자 중 일인(一人)이니 물적 고통이 만무할 것이다. 그러면 그 - 진의가 어디 있는가. 우리 지인은 매우 궁금하였고 속으로 ...
16.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1941년의 경매회 2011.03.21
1941년 11월 1일(토)에서 2일(일)까지 이틀 동안 역시 경성미술구락부에서 행해진 박창훈 소장품 경매회는 1940년에 실시된 경매회에서 유찰되었거나 출품하지 않았던 물품(愛殘品)을 처분하는 행사로서 이번에는 전 해의 도록과 거의 같은 편집방식으로 된 『부내박창훈박사서화골동애잔품매립목록(府內朴昌薰博士...
15.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1940년의 경매회 (2) 2011.03.14
1940년에 개최된 박창훈 수장품 경매회에서 먼저 주목되는 작품은 1940년 4월 5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東翰類編’, ‘冽上精華’’와 ‘小華墨蹟’, ‘碎金零珠’이다. 당시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발간한 『부내박창훈박사매립목록』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黃喜 등 1,200여 인, ≪東翰類...
14.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1940년의 경매회 2011.03.07
박창훈은 여러 전람회에 자신의 수장품을 출품하였지만 그의 수장품의 전모를 개관할 수 있게 해준 것은 1940년과 1941년에 그의 수장품을 처분하기 위해 개최된 경매회이다. 1940년 4월 5일(금)에서 7일(일)까지 서울 南山町 京城美術俱樂部에서 개최된 경매회 당시 발간된 『府內朴昌薰博士所藏品賣立目錄』...
13.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두 번의 전람회 2011.02.28
박창훈은 한중일의 서화와 도자기는 물론 금동불, 가구, 목공예품 등에 이르는 다양한 고미술품을 소장하였다. 그의 주요 소장품 내역은 1940년과 1941년 두 번에 걸쳐 개최한 경매회 당시 발간된 경매도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1940년 당시 그의 나이는 43세였다. 박창훈이 28세 때인 1925년 일...
12.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재기발랄한 '몽키선생' 2011.02.21
박창훈의 외모는 일본사람으로 오해받을 정도였고 학창시절부터 '원숭이 상'으로 놀림을 받았으며 ‘몽키선생’이라는 별명도 갖고 있었다고 한다. 1930년과 32년에 게재된 『별건곤』의 두 기사는 박창훈의 외모와 함께 조선후기의 화가 변상벽(卞相璧)의 그림을 애장하는 등 고미술품을 수집하였던 그의 모습을 엿볼...
11.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비상한 천재 2011.02.14
일제강점기 동안 가장 대표적인 미술품 수집주체는 이왕가박물관과 총독부박물관이었고, 개인으로는 총독부 고관이나 관료, 군인, 은행가, 사업가, 법률가, 학자, 교원 등이 주요 수집가였다. 고미술품 수장가 역시 일본인들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였고 조선인 곧 한국인 수장가들은 상대적으로 열세를 면치 못하였다....
10. 의사 박창훈의 서화수장: 오봉빈의 글 2011.02.07
* 오늘부터 새로운 근대 수장가, 박창훈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194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에는 일제시기의 대표적 화상(畵商)으로 조선미술관을 경영한 오봉빈의 「서화골동의 수장가 - 박창훈씨 소장품매각을 기(機)로」라는 장문의 글이 실렸다. 오봉빈은 이 글에서 당시 주요한 고미술품 수장가로...
9. 장택상 인터뷰: 도자기 수집의 권위 장택상씨 2011.01.31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朝光』은 1937년 3월호에서 당시 유명한 조선인 고미술 수장가 한상억, 장택상, 이한복, 이병직, 황오의 5명을 찾아 인터뷰한 특집 「진품수집가 비장실역방(珍品蒐集家 秘藏室歷訪)」을 게재하였다. 이 인터뷰에서 장택상의 우리 미술품에 대한 애정과 수장가로서의 긍지를 느낄 수...
8. 장택상의 글: 조선미술의 구세주가 다시나지 않는가 2011.01.24
「수장가의 고금」은 장택상이 그의 호 '滄浪散人'이라는 필명으로 1934년 6월 22일(금)부터 30일(토)까지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朝鮮中國名作古書畵展覽會)’를 앞두고 세 번에 걸쳐 『동아일보』에 쓴 글 중 마지막 글이다. 장택상은 이 글에서 조선시대의 대수장가 안평대군 이용, ...
7. 장택상의 글: 조선, 중국서화의 특색 2011.01.17
장택상은 그의 호 '滄浪散人'이라는 필명으로 1934년 6월 22일(금)부터 30일(토)까지 동아일보사가 개최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朝鮮中國名作古書畵展覽會)’를 앞두고 세 번에 걸쳐 『동아일보』에 「조선, 중국서화의 특색」(상․하, 6월 17․19일)과 「수장가의 고금(古今)」...
6. 장택상 수장품의 행로 2011.01.10
『조선고적도보』 15권(1935. 6)에는 당시 장택상이 수장했던 도자기 8점이 수록되어 있어 “천여 점”에 이를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던 그의 수장품의 편린이나마 알 수 있게 해준다. 게재 순서대로 보면 다음과 같다. ① <白磁透彫煙管臺及陽文煙管> ② <染付花鳥文甁> ③ ...
5. 장택상 수장 고서화 2011.01.03
장택상이 수장했던 고서화의 수효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34년 6월 22일부터 30일 까지 9일간 개최되었던 동아일보사 학예부 주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에 출품한 그의 소장품을 통해 대강을 엿볼 수 있다. 아래는 『동아일보』 1934년 6월 22일자 6면에 실린 내용이다. ‘조선중국고서화명작전...
4. 장택상의 수장품 2010.12.27
우리나라 근대의 대표적 수장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장택상이 수장했던 고미술품의 전모를 알 수는 없으나 일제시기의 신문․잡지 등의 간행물과 도록류를 통해 그 편린이나마 볼 수 있다. 1937년 3월에 발간된 『조광(朝光)』 3권 3호의 특집 「진품수집가 비장실역방(珍品蒐集家 秘藏室歷訪)」에 당...
3. 장택상의 고미술품 수장 활동 2010.12.20
장택상은 재기발랄한 데다 "로맨스는 인생이요, 인생은 로맨스다"라는 지론을 가질 정도로 감성이 풍부했다. 그가 고미술품을 많이 수집한 것은 본래의 풍부한 예술적 감성에다 영국 유학 당시 직접 경험한 서구인들의 고미술품과 예술에 대한 높은 인식에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장택상은 고미술품 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