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잡지 『朝光』은 1937년 3월호에서 당시 유명한 조선인 고미술 수장가 한상억, 장택상, 이한복, 이병직, 황오의 5명을 찾아 인터뷰한 특집 「진품수집가 비장실역방(珍品蒐集家 秘藏室歷訪)」을 게재하였다. 이 인터뷰에서 장택상의 우리 미술품에 대한 애정과 수장가로서의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한편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재에 대한 무지를 직설적인 어투로 비판한 것도 볼 수 있다. 당시 "京城(서울)에서 도자기 매매로 생활하는 이가 오륙백명, 판매가격이 칠팔 십 만원어치나 된다"는 그의 말은 한국 근대의 미술시장과 유통에 대한 생생한 증언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1935년 당시 등록된 서울의 고물․골동상은 180개 였는데, 그 중에서 '문화재수집가들이 출입할 만한' 고미술상은 대략 20여개 내외의 점포로 추정된다. 이러한 실정에서 당시 서울에서 도자기 매매로 생활하는 일본인이 500-600명이라는 언급은 놀랍다.
“조선색(朝鮮色) 조선질(朝鮮質)을 자랑하는 도자기 수집의 권위 장택상씨”
장택상과의 인터뷰가 실린 『朝光』 3권 3호(1937. 3)
몇 십년 동안이나 도자기를 모으고 이 방면에 각고(刻苦) 연구하는 장택상씨를 그의 자택으로 찾았다. 아래 위에 보랏빛 의복을 입고 만면에 패기를 띠신 씨는 아침 세수를 하시다 말고 기자를 맞아주신다. 씨의 서재에 들어가니 책상 문갑 주전자 화로 등 이상한 진품이 죽 늘어있고 더욱이 화려한 도기 병에 한포기 난초가 겨울도 모르는 듯이 아담이 피어있다. 기자는 씨에게 인사를 드리고 다짜고짜로 "도자기를 수집하시는지가 몇 해나 되었습니까?" 하였더니 여기까지 일사천리격으로 문답을 계속하였으나 씨는 목표라는 말에 기운이 나는지 돌연히 그 동안(童顔)에 열을 띄우시고 말을 계속하여 "동양 사람과 서양 사람이 도자기에 대한 관념이 전혀 다르지요. 서양 사람은 좋은 도자기가 있으면 값을 아끼지 않고 몇 십만원이라도 주고 삽니다. 중국 사람도 좋은 도자기라면 그 조각이라도 수건에 싸가지고 다니고 혹은 품에 품고 다닙니다. 조선 사람같이 이 방면에 무관심한 사람이 어디 있겠소. 조선 사람은 그 훌륭한 도자기를 본정(本町: 충무로)으로 들고 가서 오전 십전에 파는 구려. 참 기가 막히지요. 조선 사람은 죽어야 해요. 그저 죽어야 해요…" 하고 기자도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씨는 기자를 바라보며 "여보세요. 글쎄 몇 □만원이나 되는 세계적 국보를 오전 십전에 모두 팔아먹었구려. 외국박물관을 다녀보면 좋다는 도자기는 모두 조선 것이구려. 이것이 모두 조선 사람들이 오전 십전에 팔아먹은 것들이오" 씨의 열화같은 설명에 기자는 다못 얼이 막혀서 고개만 숙일 뿐이었다. 씨의 말은 끊일 줄을 몰랐다. "조선도자기는 세계 제일이에요. 어느 나라 사람이나 세계 어느 공장에서나 조선 자기같은 것을 만들 수 가 없다는 구려. 참 지난 십일월에 저축은행(貯蓄銀行) 두취(頭取: 은행장)이든 모리 고이치(森梧一)씨의 유애품(遺愛品)을 경매하였는데 그 중 이조염부난진사철사국화문대병(李朝染付蘭辰砂鐵砂菊花紋大甁: 高 一尺四寸)이라는 것은 실로 □실(實)한 진품(珍品)인데 일만사천오백팔십원에 경매가 되었습니다." "그 병은 누가 샀습니까?" 씨는 입을 쩍쩍 다시며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본다. 기자도 옳은 말이라고 머리를 숙였다가 "그래 그처럼 세계적이라는 조선도자기에 대하여 그 가치가 어디 있습니까?" 하고 일탄을 보내었다. 그러나 씨는 백발백중(百發百中)이요, 백발백방(百發百防)이었다. "그 가치는 형으로나 색으로나 또는 칠한 약으로나 도저히 외국 사람이 따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일본 내지(內地)만 하여도 각 대학의 공과(工科)를 졸업한 기사(技師)들이 대규모의 공장을 설립하고 여러 가지로 연구를 하여보나 도저히 조선 자기 같은 것을 만들 수 없는 모양입니다." 이때 씨는 옛날 조선 죽도(竹刀)를 꺼내어 그 정교하고 우미한 것을 말씀하고 다시 진귀한 도자주병(陶磁酒甁)을 꺼내어 기자에게 뵈이며 "자 이렇듯 좋은 자기가 세계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도저히 외국 사람으로는 따르지 못할 일이지요." 기자는 얼른 그 주병을 바라보았다. 그 우미(優美)한 맛이 문외한인 기자에게도 실로 좋은 듯하였다. 뿐만 아니라 양측에 다람쥐의 부조(浮彫)가 있고 전후면에 매죽(梅竹)의 부조가 있는 것은 참말 진귀하였다. 기자는 "이 병 가격이 얼마나 됩니까?"하고 좀 타산적인 말을 내어 걸었다.
"모두 역수입이지요. 조선 물건이지만 모두 일본내지인의 손을 통하여 사게 됩니다. 경성만 하여두 이런 도자기로 생활하는 일본 내지사람이 오륙 백 여명이나 되고 그 판매가격이 칠 팔 십만원 어치나 됩니다. 전 조선을 치면 아마 일천만원이상이 될 것입니다. 이런 거액이 모두 조선 사람의 손에서 십전 이십전에 팔려나갔으니 왜 기가 안 막혀요. 글쎄 세상을 모르고 어떻게 삽니까? 죽어야 해요. 죽어…" 씨는 감개무량한 듯이 연해 죽어야 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기자는 다시 기운을 내어 "선생의 가지신 도자기중 어느 것이 제일 진귀품입니까?" 하며 씨는 일어서서 뒷 방문을 여신다. 기자는 따라 들어갔더니 널따란 방에 물건이 가득이 쌓여있다. 모두 조그마한 궤짝을 짜서 일일이 넣어놓고 품명과 번호와 연일을 적어놓았다. 씨는 기운을 내어 "이 방에 있는 물건은 모두 조선 물건입니다. 심지어 모자털이까지 조선 것입니다." 하며 조그마한 모자 술을 내어 보이신다. 사실 씨의 방에는 화로 문고 주전자 밥상 책상 찻잔 문갑 담뱃대 할 것 없이 모두 조선 것이다. 씨는 조선 것을 모아쓴다는 점에서 자랑을 느끼시는 모양이다. 기자는 씨의 수집품을 일일이 구경하고 "조선자기 중 지금까지 제일 고가의 것은 어떤 물품이 있습니까?" 씨는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였으나 조금도 염증을 느끼지 않으신다. |
* 한자를 대폭 한글로 바꾸었고 일부 한자를 병기하였으며 설명을 ( )안에 추가한 부분이 있다. 일부 현대문법에 맞게 바꾸었으며 ‘□’는 판독할 수 없는 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