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에 개최된 박창훈 수장품 경매회에서 먼저 주목되는 작품은 1940년 4월 5일자 『동아일보』에 보도된 ‘東翰類編’, ‘冽上精華’’와 ‘小華墨蹟’, ‘碎金零珠’이다. 당시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발간한 『부내박창훈박사매립목록』의 기록을 통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黃喜 등 1,200여 인, ≪東翰類編≫(전47책), 『府內朴昌薰博士所藏品賣立目錄』, 1940. 4. 도 一
1. ≪동한류편≫: "一 東翰類編 本編 43冊 補遺編 4冊 李朝初葉 黃喜를 筆頭로 歷代順으로 末葉의 金弘集, 閔泳煥, 金允植 等에 이르고 補遺編에는 李珥, 李德馨, 鄭忠信 等을 筆頭로 丁若鏞, 田琦, 金玉均 等에 이르는 1千 2百餘名의 一人一點의 手札眞蹟 等 李朝五百餘年의 名相, 名將, 名士, 名學者, 名畵家 等의 墨蹟集"으로 소개되었다.
李嵓 등 50여 인, ≪小華墨蹟≫(전3책), 『부내박창훈박사소장품매립목록』, 1940. 4. 도 二
2. ≪소화묵적≫: "二 小華墨蹟 全參冊 李杏村, 安平大君, 韓石峯 等 朝鮮古書家 約 五十名의 墨蹟을 모음"으로 도판설명이 되어있다.
李舜臣 등 9 인, ≪碎金零珠≫, 『부내박창훈박사소장품매립목록』, 1940. 4. 도 三.
3. ≪쇄금영주≫: "三 碎金零珠 李舜臣 等 九人 墨蹟 (手札眞蹟을 모음) 吳世昌氏 提拔 李漢福氏 箱書"라 설명이 되어 있는데, ≪쇄금영주≫의 도판은 전해지는 실물이 극히 적은 이순신의 글씨이기 때문에 중요성이 크다.
申命準 등 100여 인, ≪冽上精華≫(전5책), 『부내박창훈박사소장품매립목록』, 1940. 4. 도 五.
4. ≪열상정화≫: "五 畵帖 冽上精華 全五冊 金殷鎬氏 題簽 李漢福氏 題簽 朝鮮一流畵家 百有餘名의 一人一点의 古畵集으로 作者氏名의 諺文順으로 分類"하였다고 되어 있다. ≪열상정화≫는 吳世昌의 『槿域書畵徵』에 언급된 ≪冽上畵譜≫가 아닐까 싶다. ≪열상화보≫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서 언급된 화첩으로서 박지원의 그림에 대한 그의 견해를 읽을 수 있다. 金淨, 李霆, 李慶胤, 李澄, 金明國, 金埴, 鄭敾, 尹斗緖, 趙榮祏, 柳德章, 沈師正, 許佖, 金允謙, 姜世晃 등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었다.
정리하자면 1,200인의 글씨로 이루어진 47책의 서첩 ≪동한류편≫, 100명이 넘는 조선 명사의 글씨와 그림으로 이루어진 서화첩 ≪열상정화≫, 50인의 글씨로 된 ≪소화묵적≫, 이순신의 글씨가 들어있는 ≪쇄금영주≫ 등은 모두 현재 전해지지 않는 유물로서 그 역사적⋅예술적 중요성은 쉽게 언급하기 어렵다. 이상의 유물들은 방대한 양과 수록된 인물들의 면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서첩과 화첩이 현재 전해진다면 우리의 전통시대 서화를 보는 시야가 훨씬 다양해지고 깊어졌을 것이라는 안타까운 언급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1940년의 경매회에 대한 “朝鮮 初有의 盛況”, "朝鮮서 初有의 賣立總額이 七萬數千圓에 達하였다"는 오봉빈의 표현은 박창훈이 수장했던 고미술품의 수준과 수량을 간결하게 요약해준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