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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 장택상 수장 고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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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상이 수장했던 고서화의 수효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934년 6월 22일부터 30일 까지 9일간 개최되었던 동아일보사 학예부 주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에 출품한 그의 소장품을 통해 대강을 엿볼 수 있다. 아래는 『동아일보』 1934년 6월 22일자 6면에 실린 내용이다.


조선중국고서화명작전람회’ 기사 중 장택상 소장품 부분, 『동아일보』 1934년 6월 22일 6면.

[朝鮮之部]

作 家   品 幅 點數 所藏者
雅 號 姓 名     張澤相
琴 軒
西山大師
蕙 園
謙 齋
毫生館
上 同
上 同
古松流水館道人
晩香齋
黃 山
阮 堂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大院君
小 痴
上 同
古 藍
春 舫
芸 楣
心 田
謙 齋
金 紐
 
申潤福
鄭 敾
崔 北
 
 
李寅文
鄭弘來
金逌根
金正喜
 
 
 
 
 
 
 
 
 
 
許 鍊
 
田 琦
金 瑛
閔泳翊
安中植
鄭 敾
寒山寺圖
行書絶句
五□圖
京城八景圖 八幅中屛
扇面山水
漁□晩歸圖
蕉仙圖
叢石亭圖
山君圖
行書對句
隸書對聯 左書
行書對聯 長江萬里
行書對聯
行書對聯
東坡笠屐圖
耄耋圖, 濟州行中作, 芸楣舊
米法山水□圖
石蘭□圖
篆額海鄰書室
隸額茶□書室
墨蘭二幅屛
東坡笠屐圖 彛齋題跋
富春山圖大幅
淡彩山水
淡彩田家圖 心田舊藏
墨蘭 吳昌碩□ 作英□□
秋林策杖圖
斷髮嶺望金剛




























 

[中國之部]

海 岳

陽 明
衡 山
香 光

石 谷
聾 公
夢 廬
秋 言
甫 湖
叔 平
墨 耕
少 白
上 同
缶 廬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上 同
作 英
雪 庵
板 橋
上 同
石 庵
覃 溪
上 同
上 同
翁覃溪
星 原
子 貞
容 伯
少 荃
吳昌碩
李□淸
趙 起
缶 廬
玄 凡
米 芾
朱之蕃
王守仁
文徵明
董其昌
劉黃裳
王 翬
高 邕
朱 □
王 禮
楊伯潤
姚鎔葆
倪保田
周 棠

吳昌碩





浦 華
羅飯牛
鄭 燮

劉 墉
翁方綱


以外三十八人
翁樹崑
何紹基
程恭壽
李鴻章
等三十二人

何維樸等十人
吳昌碩
任 預
行書帖 快雪堂本 阮堂題跋
小楷
行書小幅
極細山水橫卷
春景帖 □頤朝內部藏 亦梅芸楣兩先生舊藏
行書橫披百詳樓詩 壬辰役明朝東援軍備□主事
四季圖帖 紫霞題詠 古東舊藏
楷書對聯 園丁舊藏
花卉對幅 園丁舊藏
菖蒲壽石 米舫舊藏
四時之景 園丁舊藏
千尋竹齋圖 園丁舊藏
翎毛對幅 園丁舊藏
太湖石
石竹 石竹蘭對幅
躑躅 園丁舊藏
梅石 園丁舊藏
木蓮 園丁舊藏
篆聯 園丁舊藏
鐘鼎文 園丁舊藏
行書橫披
楷書 陋室銘橫披 園丁舊藏
夏山晴雨圖 翁覃溪 權彛齋 兩先生舊藏
蘭竹雙幅 平安館 葉志詵 金慶山兩先生舊藏
行書
行書七言對聯 彛齋舊藏
行書五言對聯 秋史舊藏
歐陽文忠公像 翁方綱父子□ 贈金秋史
隸額貞碧□ 書贈柳最寬
積水□作 西涯生日圖長卷 亦梅芸楣兩先生舊藏
行書臨天際烏雲帖 秋史舊藏
約山 領相金炳德雅號
行書對聯 朴瓛齋舊藏
行書對聯 書贈南尙書廷哲
各□書大屛

設彩山水人物翎毛大屛
枇杷圖
淡彩山水 園丁舊藏







































* ‘□’는 판독할 수 없는 글자임
* 이 그림들 가운데 金弘道의 <蕉仙圖>와 金正喜의 <耄耋圖>, 鄭板橋의 <蘭竹> 2폭은 각각『동아일보』 1934년 6월 19일, 20일, 21일 지면에 소개되었다. 김홍도의 <초선도>는 『동아일보』 1934년 6월 22일자 6면의 목록에는 ‘崔北’으로 잘못 실려 있다.

 
김홍도, <초선도(蕉仙圖)>, 크기 미상, 장택상 소장,
『동아일보』 1934년 6월 19일 3면.
"金檀園弘道는 正宗朝 內廷供奉員으로 畵聖의 稱이 있다.
이 畵幅은 南北畵를 兼한 神品으로서 筆致가 豪放하고 緻密하다(張澤相氏 所藏)"
지금은 소재를 알 수 없다

추사에 대한 극찬
장택상은 이 전람회에 조선의 그림과 글씨 28점(그림 20점, 글씨 8점), 중국의 그림과 글씨 38점(그림 20점, 글씨 18점) 도합 66점을 출품하였다. 대련(對聯) 등이 여럿이어서 낱폭으로 계산하면 83점이 된다. 그리고 장택상은 이 전람회를 앞두고 6월 17일, 19일, 21일 세 번에 걸쳐 『동아일보』에 글을 썼다. 17일과 19일의 글은 조선과 중국서화의 특색에 대하여 썼고 마지막은 수장(收藏)의 중요성에 대하여 쓴 글이다. 이 글들은 감상가, 수장가로서의 장택상의 안목과 식견 등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특히 17일에 게재된 글 중의 "朝鮮은 姑舍하고 極東 大陸에 唯一無二하고 漢字가 發生된 以後에 처음 보는 能書家 大匠 金阮堂 先生…先生의 書法은 朝鮮山川과 같다…"라는 김정희의 예술에 대한 평가와 수장가로서의 오경석(吳慶錫), 민영익(閔泳翊)에 대한 평가는 주목할 만하다.(※ 전문은 '장택상' 연재의 말미에 소개하고자 한다.)


김정희, <모질도(耄耋圖)>, 크기 미상, 장택상 소장,
『동아일보』 1934년 6월 20일 3면.
"阮堂선생은 朝鮮 藝術界에 千古不朽한 英名을 傳한 이다.
이 耄耋圖는 선생이 濟州配所가는 길에 □剌한 意味로 寫出한 것이다(張澤相氏 所藏)"
6․25때 불타 없어졌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20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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