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박영철: 배정자와의 스캔들 2012.12.22
박영철의 이름이 일반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양녀로 일본의 밀정 노릇을 한 ‘한말의 요녀(妖女)’ 배정자(裵貞子: 1870-1951)와의 동거 스캔들이다. 이 스캔들은 정계에 파문을 일으켜 박영철은 시종무관 자리를 두 달 만에 그만두지 않을 수 없었다. 박영철 자신도 ...
76. 박영철: 친일, 풍류 그리고 배정자 2012.11.05
박영철의 친일행각이 이른바 ‘생계형 친일’의 단계를 넘어선 신념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은 사회진화론에 입각한 문명개화론에 입각한데다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이라는 일제의 이념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근대화를 추구하며 자신들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한편 중국과 조선의 후진성을 멸시하였는데, 이러한 경향은...
75. 박영철: 친일의 조건 2 2012.10.16
박영철은 조선의 독립과 문명화는 불가능하고 오직 일본의 보호아래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독립이 된다하더라도 그것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박영철이 이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대한제국기에는 물론 20세기 전시기에 걸쳐 우리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퍼져있던 사회진화론에 경도되었기 때문이다. 사...
74. 박영철: 친일의 조건1 2012.09.24
강원도지사 시절의 박영철(46세, 1925) 박영철은 그의 나이 50세 때인 1929년에 간행한 『五十年の回顧』에서 자신의 조상은 양반이었고, 아버지는 아전, 자신은 평민이라 하였다. 군인으로 출발하여 관리를 거쳐 실업계에서 뚜렷한 자취를 남긴 그는 봉건시대의 신분사회에 매우 비판적이었다. 자신...
73. 박영철: 군인, 고위관료, 반도의 은행왕 2012.09.04
1907년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된 뒤에 박영철은 군부(軍府)대신과 고종의 시종무관으로 근무하였다. 일본 육사 제11기 생인 노백린(盧伯麟:1875-1926, 독립운동가. 상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등이 독립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지만 박영...
72. 박영철 : 동경 유학과 팔형제배 2012.08.14
박영철의 본관은 충주(忠州), 호는 다산(多山)이다. 박영철의 생애는 그의 나이 50세 때인 1929년에 회고하며 쓴 『五十年の回顧』를 통해 그 대략을 알 수 있다. 박영철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 화담(花潭)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인 사암(思菴) 박순(朴淳)의 후손으로 본래는 양반이었으나 점차 가세가 기울...
71. 박영철: 취향정(醉香亭) 소견 2012.07.17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덕진공원은 전주의 대표적인 쉼터 가운데 하나이다. 덕진공원 정문. 전라북도 전주시덕진공원 정문 현판 ‘연지문(蓮池門)’ 김제 출신의 서예가 강암(剛菴) 송성용(宋成鏞: 1913-1993)이 썼다. 정문을 거쳐 조금 걸어가면 위풍당당한 정자를 마주하게 된다. '취향정(醉香亭)'이...
70. 이병직 연보 2012.07.03
<운지연(雲池硯)>, 길이 20.5, 폭 12.7, 두께 1.5㎝, 이병직 구장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이 사용했던 벼루. 1973년 6월 문화재관리국 주최로 창덕궁에서 개최된 ‘명연전(名硯展)’에 출품되었다. 벼루의 뒷면에 “이 두만강 돌은 쇳소리가 나고 미끄럽기는 하나 먹을 ...
69. 이병직: 수장가로서의 평가 2012.06.18
「조선미술관 개관 10주년 기념 10대가 산수풍경화전」 사고(社告), 『동아일보』, 1940년 5월 23일. ‘10명의 비장가 찬조출품’ 명단에 전형필, 장택상, 김덕영, 함석태, 한상억, 이병직, 손재형, 김명학, 박상건, 오봉빈 등 10명이 나열되어 있다. 우리나라 근대의 미술시장과 수장가에 대한 ...
68. 이병직 : 1950년의 '수진재장서' 경매회 2012.05.29
1950년 6월 11일 서울 남산동 2가에 있던 한국고미술협회에서 이병직의 수진재장서(守眞齋藏書) 약 1500여 책, 종수(種數)로는 261종을 경매하였다. 한국고미술협회는 광복 후 서울 남산동 2가에 있던 경성미술구락부의 건물을 인수하여 출발한 것으로 전한다. '수진재(守眞齋)'는 이병직의 서재 명으로...
67. 이병직: 1941년의 경매회 2012.05.15
이병직은 그의 나이 45세 때인 1941년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회에 내 놓았다. 일제시기에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자신의 이름 하에 두 번의 경매회를 개최한 조선인 수장가로는 외과의사 박창훈과 이병직 두 사람뿐이라는 점은 수장가로서의 이병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
66. 이병직: 1937년의 경매회 2012.04.30
이병직은 1937년, 1941년, 1950년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물건을 처분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유일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에서는 주요 경매시 경매도록을 발간하였는데, 1937년과 1941년 두 차례 개최된 이병직 수장품 경매회에도 경매도록을 발간하여 경매회에 출품된 물품을 소개하...
65. 이병직: 두 번의 전람회 2012.04.23
1934년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동아일보사 주최로 동아일보사 3층에서 개최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에 이병직은 장택상, 김찬영, 김은호, 함석태, 박창훈, 김영진, 김용진, 이한복 등 9인의 수장가들과 함께 출품을 하였는데 그가 출품한 작품 수는 모두 14인의 작품 25점이었다. 김...
64. 이병직: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이병직의 도자기 2012.04.10
백자수주(白磁水注), 總高 四寸三分七厘 口徑 一寸八分 胴徑 三寸二分, 『조선고적도보』 15, 6307 백자투조수적(白磁透彫水滴), 高 二寸七分二厘 徑 三寸一分二厘 徑 三寸一分, 『조선고적도보』 15, 6331 『조선고적도보』 제15책 ‘조선시대 도자기편’에 수록되어 있는 이병직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63. 이병직: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이병직의 그림 2012.04.03
194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에 일제시기의 대표적 화상인 오봉빈(吳鳳彬: 1893-?)의 「서화골동의 수장가 - 박창훈씨 소장품 매각을 기(機)로」라는 장문의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오봉빈은 당시 주요한 고미술품 수장가로 “오세창⋅박영철⋅김찬영⋅함석태⋅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