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직은 1937년, 1941년, 1950년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물건을 처분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유일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에서는 주요 경매시 경매도록을 발간하였는데, 1937년과 1941년 두 차례 개최된 이병직 수장품 경매회에도 경매도록을 발간하여 경매회에 출품된 물품을 소개하였다. 1937년 3월 26-28일에 개최된 경매내역은 당시 발간된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府內古經堂李秉直家書畵骨董賣立目錄: 이하 '37년 도록')’을 통해, 그리고 그 후 4년 후인 1941년 6월 7-8일간에 이루어진 경매내역은 역시 당시 발간된 ‘부내고경당소장품매립목록(府內古經堂所藏品賣立目錄: 이하 '41년 도록')’을 통해 그 내역을 알 수 있다.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府內古經堂李秉直家書畵骨董賣立目錄)』 겉표지, 22.5×15.1㎝, 경성미술구락부, 1937. 3. 26 |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 속표지 |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간행한 경매도록류는 앞쪽에 주요 출품작 사진이 수록되어 있고 그 뒤로 목록이 게재되어 있었다. 37년 도록과 41년 도록 역시 뒷면에 게재되어 있는 목록을 통해 1937년의 경매에 429점, 1941년의 경매에 328점 도합 757점의 고미술품이 경매장에 나왔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경매도록에는 그림이 쌍폭 또는 대련(對聯)일 경우나 여러 개의 도자기에도 하나의 번호만을 부여하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두 경매회에 출품되었던 실제 작품 수효는 800점이 훨씬 넘는다. 수효로만 보면 이병직을 일제강점기 당시 경성미술구락부 주최의 경매회에 한국인으로는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은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 ‘세화인(世話人)’ 부분 |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 ‘경매일시, 장소’ 등 알림 부분 |
경성미술구락부에서의 경매는 출자를 한 회원(=주주)들만 참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구매하려는 자는 경성미술구락부 회원인 골동상을 통해서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었다. 고객의 일을 대리하는 주선인(周旋人)을 일본식 용어로 '세화인(世話人)'이라 했는데 1937년 경매회의 세화인은 아래와 같다.
佐佐木聚古堂, 天池茂太郞, 新保溫古堂, 鈴木東古堂, 祐川宇吉, 太田尾鶴吉, 黑田 榮, 文明商店
이들의 이름과 상호가 섞여 있기도 한데 佐佐木聚古堂은 사사키 쵸지(佐佐木兆治)가 누상동에서 경영한 취고당(聚古堂)이고, 아마이케 시케타로(天池茂太郞)는 명동에서 천지상회(天池商會)를 경영했으며, 신보(新保)는 간송 전형필의 수장을 도왔던 일본인 고미술상으로 알려져 있고 스즈키(鈴木)와 구로다 사카에(黑田 榮)는 각각 명동과 회현동의 고미술상이었으며 유카와 유키치(祐川宇吉), 오타오 쓰루키치(太田尾鶴吉) 역시 고미술상이다. 문명상점(文明商店)은 이희섭(李禧燮)이 경영한 골동점으로 서울 시청 동측에 있었다.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 도자기 부분
1937년의 경매회에 출품된 이병직의 수장품은 목록상으로는 429점이다.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구 분 | 서화(書畵之部) | 골동 도기(骨董陶器之部) | 계 |
목록 수 | 100 (번호 1-100) |
329 (번호 101-429) |
429 |
게재도판 수 | 12 | 87 (도자 64, 공예 20, 조각 3) |
99 |
실제 출품된 작품 수 | 125 | 366 | 491 |
목록의 숫자와 실제 출품된 작품의 숫자가 다른 것은 ‘골동 도기’의 '382 오대징(吳大徵) 전서(篆書) - 403 심전(心田) 행서액(行書額)'까지의 21점과 '422 완당(阮堂) 영련(楹聯) - 425 완당(阮堂) 판액(板額)'까지의 4점, 도합 25점이 서화이기 때문에 서화가 25점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도자 및 공예의 경우 여러 점의 물건을 하나의 번호(예: 五客[5개] 11, 六客 1 등)를 부여했기 때문에 실제 출품된 낱낱의 개수는 429점에 61점을 더한 491점이 된다.
김정희,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 각 31.9×129.5㎝,
『부내고경당이병직가서화골동매립목록』 도 8, 현 간송미술관 소장
1937년의 경매회에 출품된 작품 가운데 현재 간송미술관 소장으로 김정희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大烹豆腐瓜薑菜, 高會夫妻兒女孫"이 가장 유명하고, 그림으로는 강세황(姜世晃)과 마군후(馬君厚)의 제발이 있는 변상벽의 <군계(群鷄)> 역시 유명한 작품이다. 37년의 경매회에는 번호 4. 김면국(蓮潭)의 담채산수(淡彩山水), 10. 장승업(吾園) 성재수간(聲在樹間), 37. 김득신(兢齋) 신선(神僊) 등 3점의 그림과 131. 이조산수형필세(李朝山水山形筆洗) 高一寸六分, 136. 염부오화형수적(染付五花形水滴) 徑二寸五分, 144. 이조각형진출(李朝角形振出) 高三寸五分, 197. 이조염부죽문필통(李朝染付竹紋筆筒), 412. 이조백자원형운룡투각연적(李朝白磁圓形雲龍透刻硯滴) 등 5점, 그림 3점과 도자기 5점을 합하여 8점이 『조선고적도보』 14 - 조선시대 회화 -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