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측메뉴타이틀
  • 파리가 사랑한 동양미술관
  • 최열의 그림읽기
  • 영화 속 미술관
  • 조은정의 세계미술관 산책
  • 미술사 속 숨은 이야기
  • 경성미술지도-1930년대
  • 김영복의 서예이야기: 조선의 글씨
  • 한국미술 명작스크랩
  • 도전! C여사의 한국미술 책읽기
  • 왕릉을 찾아서
  • 시의도-시와 그림
  • 근대의 고미술품 수장가
타이틀
  • 65. 이병직: 두 번의 전람회
  • 3473      

1934년 6월 22일부터 30일까지 9일간 동아일보사 주최로 동아일보사 3층에서 개최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에 이병직은 장택상, 김찬영, 김은호, 함석태, 박창훈, 김영진, 김용진, 이한복 등 9인의 수장가들과 함께 출품을 하였는데 그가 출품한 작품 수는 모두 14인의 작품 25점이었다.

 


김홍도, <곤명전렵도(昆明畋獵圖)> 쌍폭, 이병직 소장, 1937년 3월 경매 출품.

  탄은灘隱      이  정李  霆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 
능호관凌壺館  이인상李麟祥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겸재謙齋      정  선鄭  敾
자하紫霞      신  위申  緯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 
상동上同
묵죽墨竹
선면산수扇面山水
선면산수扇面山水 
선면산수扇面山水
군계도群鷄圖
금강일경金剛全景
묵죽墨竹
대련對聯
예서심경첩楷書心經帖
예액고경당隸額古經堂









  * (이병직은 추사의 글씨 '古經堂'을 좋아하여 자신의 당호堂號로 삼았다: 필자) 
  상동上同 
상동上同
상동上同
상동上同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상동上同
상동上同
호생관毫生館  최  북崔  北
대원군大院君
오원吾園      장승업張承業 
상동上同
상동上同
심전心田      안중식安中植 
부춘산일각액도富春山一角額圖
묵란액墨蘭額
대련對聯
한예첩漢隸帖
수렵도狩獵圖
곤명지도昆明池圖
구룡연九龍淵
인물대폭人物對幅 
묵란대폭墨蘭對幅 
영모이첩병翎毛二帖屛
산수횡피山水橫披
추성부도秋聲賦圖
청록산수靑綠山水












 


변상벽, <군계(群鷄)>, 강세황·마군후 제발, 이병직 소장, 1937년 3월 경매 출품.


조광진, <전서(篆書)> 대련, 이병직 소장, 1941년 6월 경매 출품.

1940년 5월 28일에서 31일까지 4일 간 경성부민관 3층에서 '조선미술관 10주년 기념 십대가산수풍경화전'을 개최할 때에 부대행사로 이루어진 '조선미술관정선고서화백점(朝鮮美術館精選古書畵百點)' 행사에 '십명비장가찬조(十名秘藏家贊助)'라는 이름으로 전형필, 장택상, 김덕영金悳永[김찬영의 개명 후 이름], 함석태, 한상억, 손재형, 김명학, 박상건, 오봉빈과 함께 출품하였다. 이 전시회에 이병직이 출품한 작품은 아래와 같다.

근대명가 각체서(近代名家 各體書) ○ 김석준 정학교 현채 윤용구 이찬모 이용희 강진희 유창환(金奭準 丁學敎 玄采 尹用求 李贊謨 李容喜 姜晋熙 兪昌煥) ○ 장승업 백납병(吾園先生 百納屛 張承業) ○ 주당 괴석 4폭(少白先生 怪石四幅對 周棠) ○ 안중식 노안병(心田先生 蘆雁屛 安中植) ○ 춘정 사계산수(春亭先生 四季山水) ○ 김옥균 행서(古筠先生 行書 金玉均) ○ 송인 산수(頤菴先生 山水 宋寅)


정학교, <괴석> 대련, 이병직 소장, 1941년 6월 경매 출품.

앞에서 살펴 본 1934년 간행의 『조선고적도보』와 같은 해 개최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 1940년의 '조선미술관정선고서화백점' 행사의 '십명비장가찬조'에 출품된 서화작품 41점은 작품 제목 상으로 한 점도 겹치지 않는다. 이병직의 수장품은 그만큼 양적으로 다양했던 것이다. 이병직이 이와 같이 많은 작품을 수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1920-30년대에 고미술품 유통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특히 1930년대는 '고미술품 거래 호황기'로서 그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활발히 고미술품 거래가 이루어졌던 시기였다. 이병직은 이 시기에 고미술품을 활발히 수집하고 당시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수장가들 간의 교환 또는 매매에 적극 참여하였다.


장승업, <준마군묘이절병풍(駿馬群猫二折屛風)>, 이병직 소장, 1941년 6월 경매 출품.

전형필은 1958년의 좌담회에서 "[일제강점기] 당시에 고미술을 수집하던 한국 사람은 장택상 씨와 이병직 씨 등 몇 분이 있었지만…"이라 회고했고, 김은호가 “이병직이 6·25 당시 문화재 보따리만을 들고 단신으로 피난간 일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라고 한 것을 통해 이병직의 활발한 수장활동과 고미술품에의 애착은 애호가들 사이에서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음을 알 수 있다.

 

 

편집 스마트K
업데이트 2024.11.12 20:59

  

SNS 댓글

최근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