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5월 1일자 『동아일보』에 일제시기의 대표적 화상인 오봉빈(吳鳳彬: 1893-?)의 「서화골동의 수장가 - 박창훈씨 소장품 매각을 기(機)로」라는 장문의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오봉빈은 당시 주요한 고미술품 수장가로 “오세창⋅박영철⋅김찬영⋅함석태⋅손재형⋅박창훈”을 꼽은 후 "외과의(外科醫)의 태두(泰斗)"인 박창훈이 "혜안(慧眼)과 온축(蘊蓄)과 욕심과 희생을 성경(盛傾)하여 엄선(嚴選)에 경가정선(更加精選)하며 수집하신 서화와 골동"을 "전부 출방(出放)"함을 아쉬워하였다.
滄江 趙涑(창강 조속), <梅鵲圖(매작도)>, 紙本水墨, 縱 3尺3寸3分, 橫 1尺8寸4分, 李秉直(이병직)氏 藏,
『조선고적도보』 14. 5908
오봉빈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1940년 당시 가장 중요한 조선인 수장가는 '오세창⋅박영철⋅김찬영⋅함석태⋅손재형⋅박창훈'이라 할 수 있다.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부친 오경석(吳慶錫)으로부터 내려오는 수장 전통이 있는 서화가이자 민족지사인 오세창(1864-1953), 친일무관 출신으로 중추원 참의를 지낸 거부 박영철(1879-1939), 평양 갑부의 자제인 화가 김찬영(金讚泳: 1893-1963), 진도 갑부의 자제인 서예가 손재형(孫在馨: 1903-1981), 한국최초의 치과의사 함석태(1889-?), 당대의 스타의사 박창훈(1897-1951)은 일제강점기를 대표할 만한 수장가임에 틀림이 없다.
蓮潭 金明國(연담 김명국), <深山行旅圖(심산행려도)>, 苧本水墨, 縱 3尺 4寸, 橫 1尺9寸5厘,
李秉直(이병직) 氏 藏, 『조선고적도보』 14. 5910
이병직은 비록 오봉빈이 거명한 6인의 수장가 명단에는 빠졌지만,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 유일의 미술품 경매회사인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회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두 번의 경매회를 개최한 인물은 오직 박창훈과 이병직 뿐이라는 점을 통해 이병직의 수장가로서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병직의 수장품 가운데 먼저 꼽을 수 있는 것은 1934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간한 『조선고적도보』 14(조선시대 회화)에 실려 있는 작품들이다.
南里 金斗樑(남리 김두량), <高士夢龍圖(고사몽룡도)>, 縱 1尺1分, 橫 8寸6分, 李秉直(이병직) 氏 藏,
『조선고적도보』 14. 5945
일제강점기 조선 유일의 미술품 유통기관이었던 경성미술구락부에서 발간한 경매도록에는 출품작이 『조선고적도보』에 실려 있을 경우 반드시 그 내용을 병기한 것을 통해 『조선고적도보』의 권위를 실감할 수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1934년에 발간 한 『조선고적도보』 제14책 ‘조선시대 회화편’에 수록되어 있는 이병직의 작품은 아래와 같다.
蕙山 劉淑(혜산 유숙), <米元章拜石圖(미원장배석도)>, 縱 8寸9分, 橫 9寸4分, 李秉直(이병직) 氏 藏,
『조선고적도보』 14. 6035
5908 滄江 趙涑(창강 조속)의 <梅鵲圖(매작도)> 5910 蓮潭 金明國(연담 김명국)의 <深山行旅圖(심산행려도)> 5945 南里 金斗樑(남리 김두량)의 <高士夢龍圖(고사몽룡도)> 5946 南里 金斗樑의 <牧牛圖(목우도)> 5975 兢齋 金得臣(긍재 김득신)의 <神仙圖(신선도)> 6035 惠山 劉淑(혜산 유숙)의 <米元章拜石圖(미원장배석도)> 6046 吾園 張承業(오원 장승업)의 <王羲之觀鵞圖(왕희지관아도)> 6047 吾園 張承業의 <紅白梅十扇[疊의 오류]屛風(홍백매십첩병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