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직은 그의 나이 45세 때인 1941년에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을 경성미술구락부의 경매회에 내 놓았다. 일제시기에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자신의 이름 하에 두 번의 경매회를 개최한 조선인 수장가로는 외과의사 박창훈과 이병직 두 사람뿐이라는 점은 수장가로서의 이병직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부내 고경당소장품매립목록(府內 古經堂所藏品賣立目錄)』 표지, 경성미술구락부, 1941. 6. 7-8. |
『부내 고경당소장품매립목록』 속표지 |
1941년 6월 7일-8일 경성미술구락부에서 개최된 『府內 古經堂所藏品賣立圖錄』의 속표지 다음에는 아래의 이름이 '찰원(札元)'이라는 제목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찰원은 경매회를 개최한 실무자와 고객을 대리하여 경매회에 참가하는 '세화인(世話人)' 곧 주선인을 의미한다.
矢野韓好堂, 新保溫古堂, 天池茂太郞, 佐佐木兆治, 鈴木東古堂, 黑田 榮,
前田才一郞, 湊 佐吉, 本田義政, 劉用植, 李淳璜, 吳鳳彬
이들 가운데 유용식은 장택상의 집에 출입한 거간이고, '翰南書林'이라 특별히 기록되어 있는 이순황은 간송 전형필이 고서를 매입하기 위하여 후원 운영한 서울 종로구 관훈동의 고서점으로 1932년 경부터 운영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오봉빈은 조선미술관을 운영한 화상이자 전시기획자이다.
김정희, <해서 대련(楷書 對聯)>, 출품번호 1 | 남계우, <군접 쌍폭(群蜨 雙幅)>, 출품번호 327 |
1941년 이병직 경매회 목록에는 서화, 도자, 공예 등의 물품이 뒤섞여 기재되어 있는데 번호로는 328번에 이른다.
구 분 | 서 화 | 도 자 | 공 예 | 계 |
목록번호 | 1-64, 301-302, 304-307, 325-328 |
65-265, 267 (257, 260, 261 제외) |
266-300 (257, 260, 261, 303, 308-324 추가) |
328 |
게재도판 수 | 42 | 69 | 12 | 123 |
실제 출품된 작품 수 |
76 | 198 | 54 | 328 |
『부내 고경당소장품매립목록(府內 古經堂所藏品賣立目錄)』 분석표, 경성미술구락부, 1941. 6. 7-8.
<백자향로> 외, 출품번호 176 외
장승업 <준마군묘이절병풍(吾園 駿馬群猫二折屛風)>, 출품번호 48
41년 도록에 수록된 그림사진 가운데 제일 뒤에 수록되어 있는 “48 오원 준마군묘이절병풍(四八 吾園 駿馬群猫二折屛風)”은 1934년 6월 동아일보사 주최로 개최된 '조선중국명작고서화전람회(朝鮮中國名作古書畵展覽會)'에 출품되었던 "오원 장승업 영모이첩병(吾園 張承業 翎毛二帖屛)"으로 추정되며, 현재 ‘군묘(群猫)’는 <유묘(遊猫)>라는 이름으로 일본 동경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준마(駿馬)’는 <삼준(三駿)>이라는 이름으로 일본 유현재(幽玄齋)가 소장하고 있다. 41년 당시까지는 하나의 병풍 또는 가리개 형태로 되어 있다가 이후 나뉘게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인데, 이 사실은 일제강점기 당시 발간된 경매도록류가 작품의 원형을 이해하고 원상을 회복하는 데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