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릉 1. 영월의 장릉, 단종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 - 단종 2014.03.04
단종, 태백산 신선이 되다 단종 이홍위(李弘暐)가 이곳 영월 땅으로 유배를 왔다. 1457년 7월 초순의 일이었다. 그리고 4개월 뒤인 10월 24일 세조가 보낸 사형 집행관에 의해 살해 당했다.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단종조 고사본말>을 보면 일찍이 단...
현릉 2. 이승의 짧은 행복, 저승의 길고 긴 고통 2 - 현덕왕후 2014.01.16
어여쁜 현덕왕후의 원한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끌어 내린 뒤 유배를 보냈다가 그것도 부족해 끝내 목을 졸라 죽인 뒤 꿈을 꾸었다. 단종의 어머니이자 형수인 현덕왕후가 나타났다. "나도 네 아들을 데려가야 겠다." 그리고 얼마 뒤 멀쩡하던 수양대군의 아들이 죽고 말...
현릉 1. 이승의 짧은 행복, 저승의 길고 긴 고통 1 - 문종 2014.01.15
현릉 항공촬영, <동구릉> 『조선왕릉 종합학술보고서 2』, 국립문화재연구소문종 사후, 그 서글픈 운명 문종 재위 중 국가의 지관(地官) 다시 말해 나라의 풍수를 본다는 국풍(國風) 최양선과 지관 목효지, 이현로 세 사람 모두 억울하게 처단 당했다. 문종이 자신의 사후 묘지를 선택하게 하였을 무...
영릉 3. 소헌왕후의 참담한 세월 2013.09.24
소헌왕후 청송 심씨(沈氏) 조선 최초의 합장릉에 왕과 왕비가 함께 누운 금슬 좋은 영릉은 처음엔 물이 흐르는 습지였다. 물 속에서 지금의 영릉으로 빠져 나왔고 이 때도 나란히 누워 지금껏 금슬을 과시하고 있는 중이다. <소헌왕후 영릉지>에 정인지는 소헌왕후에 대하여 다음처럼 묘사하였다. "왕후...
영릉 2. 문예부흥시대의 풍토부동 노선 2013.08.17
동방의 요순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세종조 고사본말>에서 세종의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엮어두었다. 그 이야기에 끝이 없으나 이긍익은 세종을 다음처럼 묘사했다. "임금은 심묵(深黙)하여 말이 적고 제왕의 위의가 있었다. 왕위에 오르자 총명과 지...
영릉 1. 지혜를 훔친 군주 세종대왕 이도 2013.07.17
처음에 영릉(英陵)은 아버지 태종과 어머니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현 서울 서초구 내곡동) 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세종 이도(李祹)는 자신과 부인 누가 먼저건 죽으면 헌릉 곁에 묻히기로 하고 그 대모산 자락에 터를 마련해 두었다. 1446년에 먼저 부인 소헌왕후가 승하하자 그 자리에 묻었으며 또 몇...
헌릉 2. 들뜬 청년 이방원 2013.06.11
누가 쓴 글인지 알 수 없지만 <태조대왕 행장>을 보면 태종 이방원의 인물됨이 정말 그랬을까 싶을 정도로 묘사하였다. "왕은 부지런하고 검소하고 너그러우며 어질었다.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했으며 학문을 높이며 제사(祭祀)에 신중하고 어진 이를 가까이하고 착함을 좋아하였다. 정사(政事)...
헌릉 1. 장풍득수(藏風得水) 의 절대명당 2013.05.21
태종 이방원은 왜 한강 건너편에 터를 잡았을까 해마다 음력 5월 10일이면 비가 내린다. 태종(太宗 1367-1422, 재위1400-1418) 이방원이 승하하는 자리에서 "가뭄이 지금 심하니 죽은 뒤에도 아는 것이 있다면 반드시 이날에는 비가 오도록 하겠다"1) 고 했다. 그리고 그의 제삿날이면...
후릉 2. 정종의 부인, 추억의 정안왕후 김씨 2013.04.11
은퇴 시절 세자 이방원은 이러한 정종의 처신을 깊이 인정하고서 자신이 왕위를 물려받은 뒤 정종을 상왕(上王)으로 극진히 모셨다. 상왕으로 물러난 정종은 개경의 백룡산 기슭 인덕궁(仁德宮)에 머무르며 '한가하게 수양하기를 열아홉 해' 내내 '격구와 사냥, 온천, 연희'와 더불어 여생을 보냈다. 그 열아홉 ...
후릉 1. 정종과 정안왕후 김씨의 후릉 2013.04.04
후릉(厚陵)의 자리 조선을 건국한 창업군주 이성계는 첫 부인 신의왕후의 제릉이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정릉과 멀리 떨어진 건원릉에 누워 있는데 두 번째 왕 정종(定宗 1357-1419)은 부인 정안왕후(定安王后 1355-1412)와 함께 후릉에 나란히 누워있다. 다만 대한민국 사람들은 후릉에 가서 뵐 수...
정릉 2 - 260년만의 복권, 원한의 비가 내리다 2013.03.12
버들잎 같았던 신덕왕후 강씨 신덕왕후 강씨는 무척 아름다웠다. 태조 이성계가 장수로 이름을 떨치던 시절, 그 유명한 팔준마(八駿馬)를 타고 천지를 휩쓸던 어느 날, 샘물가에 이르러 물 긷는 처녀들에게 물 한 그릇을 청했다. 한 처녀가 그릇에 버들잎을 띄워 주었으므로 숨길을 멈칫 고르고서야 마신 뒤, 성질...
정릉 1. 첫 국모, 신덕왕후의 정릉(貞陵) -삼백년의 실종, 육백년만의 복권 2013.01.15
신덕왕후 강씨상 지금 청계천 광통교 다리 밑 돌담벼락의 하나가 되어 짓눌린 <신덕왕후 강씨상>도판 1, 2 은 그러나 무척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다. 구름무늬로 감싸인 복판에 합장을 한 자세로 선 왕후는 육백년이 지난 지금도 우아한 자태 그대로다. 굵은 옷 주름이 날개처럼 받쳐주고 얼굴보다 훨씬...
이성계의 첫부인,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릉(齊陵) 2013.01.04
신의왕후(神懿王后)의 제릉(齊陵) -세 남자를 왕으로 만든 여인 많은 사람들은 신의왕후(神懿王后 1337-1391) 한씨에 대하여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고 나 또한 그렇다. 게다가 능묘마저 갈 수 없는 땅, 휴전선 북쪽 개성시 판문군 상도리에 자리 잡고 있어 아예 없던 사람처럼 ...
건원릉 2 - 창업군주 이성계의 안식처 2012.12.11
건원릉 건원릉은 동구능의 가장 높은 터에 자리 잡고서 모두를 호령하고 있다. 이성계는 군왕의 운명을 타고 태어났는데 이긍익(李肯翊 1736-1806)이 지은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 "엄중하고 간묵(簡黙)하여, 평시에는 항상 눈을 감고 앉아 있었으므로, 바라보기에 두려웠으나...
건원릉 1- 창업군주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2012.12.06
왕들의 정원, 동구능 나는 태조 이성계를 좋아한다. 연속극 <용의 눈물>도 <불멸의 이순신>과 더불어 즐겨 보았던 사극이다. 내가 사는 곳이 이성계의 능묘인 <건원릉>와 무척 가까워서인지 <4.19혁명 국립묘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득 들리곤 한다.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