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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원릉 1- 창업군주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健元陵)
  • 5436      
-함흥갈대는 나부끼고

왕들의 정원, 동구능 

나는 태조 이성계를 좋아한다. 연속극 <용의 눈물>도 <불멸의 이순신>과 더불어 즐겨 보았던 사극이다. 내가 사는 곳이 이성계의 능묘인 <건원릉>와 무척 가까워서인지 <4.19혁명 국립묘지>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득 들리곤 한다. 그런데 4.19묘지를 갈 때면 4월인데도 그늘진 쌀쌀함이 느껴지지만 이곳 건원릉은 눈 내리는 겨울에라도 그렇게나 명랑하다.


건원릉 봉분 억새풀

  "해와 달과 별 빛이 항상 환하게 비치고, 바람과 비와 차고 더운 기후가 고르게 알맞은 곳이면, 인재가 많이 나고 또 병도 적다." 1

  이중환(李重煥 1680-1752)의 <<택리지(擇里志)>> 가운데 <지리(地理)> 편에 나오는 말이다. 동구능(東九陵)에 갈 때면 떠오르는 말인데, 이곳이 꼭 그래 보인다.

  내가 사는 하계동은 북쪽으로 연산(燕山)의 왕릉이며 남서쪽으로는 의릉(懿陵)도 있다. 이렇게 떠올리며 남동쪽의 태릉(泰陵)과 강릉(康陵)을 지나 퇴계원으로 빠져 나가면 곧바로 동구능이다. 동구능은 본시 양주군 노원면 지역이었다가 1986년에 구리시로 편입된 곳이다. 동구능의 배경을 이루는 이곳 갈매동(葛梅洞)은 한양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범데미가 있었는데 호랑이가 출몰하던 곳이었고 또 이곳의 산 모습이 칡[葛]이며 매화처럼 생겼다고 해서 갈매동이라 불렀다는데 그 이름처럼 아름답다.

  동구능 일대에는 여러 마을이 있는데 모두가 이성계 능묘와 연관이 있다. 사노리(四老里)는 건원릉 조성 때 저 멀리 강원도 영월에서 엄씨, 박씨, 주씨, 차씨가 부역으로 동원되어 왔다가 마치고서 되돌아 가지 않고 아예 눌러 살던 마을로 엄씨는 응달말, 주씨는 언제말, 박씨는 양지말, 차씨는 두레물골이라 이 네 마을을 사노리라 한다. 엄씨가 사는 응달말은 가장 안쪽이라 그늘져 안말이라고 부르고, 주씨가 사는 언제말은 언산이 놓여 있는 것 같아 언제말이라 부르며, 박씨네 양지말은 볕이 들고, 차씨네 두레물골은 샘물이 솟는 곳이다. 그뿐 아니다. 동구능 남쪽 인창동(仁倉洞)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엔 능골, 궁말 같은 이름을 지닌 마을이 있다. 능골은 가능골(假陵谷)이라 해서 처음엔 이곳을 능묘 터로 지목했었다고 하고, 궁말은 귀인 경주 김씨묘가 있어서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이성계가 손을 잡았던 상궁(尙宮)의 묘소가 있다고 해서 궁말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떠올리며 이곳을 지나는데 또 한 길이 있다. 청량리쪽에서 출발하면 상봉을 지나 망우리(忘憂里) 고개를 넘어 구리 읍내로 진입하기 전 왼쪽으로 틀어 동구능으로 가는 길이 있다. 이십년 전쯤엔 면목동에 살고 있었으므로 동구능을 가려면 이곳 망우리를 넘곤 했는데 이 망우리엔 공동묘지가 있어서 서울 사람들이 시름을 잊는 땅이라고 생각했었다. 망우리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자신이 묻힐 땅을 정하고 환궁하던 길에 이 고개에 잠시 쉬며 그 곳 동구능 터를 바라보며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 하였으므로 그 뜻을 따라 망우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태조가 자신이 묻힐 터를 한양 복판 신덕왕후가 묻혀있던 정동이라고 지목했었으므로, 이를 뒤집고서 동구능으로 다시 정할 리는 없다. 아마도 저 신덕왕후의 능을 강제로 없애버린 태종 이방원이 아버지 이성계의 능묘 터를 동구능에 잡고서 '이제야 모든 근심을 잊겠노라'라고 했던 것이겠다.

  태조 이성계가 동구능에 눕고 난 뒤 일대 드넓은 터에는 왕과 왕비 17위가 들어섰다. 두 부인과 헤어져 홀로 누운 태조의 건원릉과 더불어 문종과 현덕왕후의 현릉(顯陵), 선조와 의인왕후, 인목왕후의 목릉(穆陵), 인조 계비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현종과 명성왕후의 숭릉(崇陵), 영조와 정순왕후의 원릉(元陵), 헌종과 효현왕후, 효정왕후의 경릉(景陵), 문조와 신정왕후의 수릉(綬陵)이 이곳 에 자리 잡고 있으니 권력의 기운 넘치는 왕들의 정원이다. 

  왕들의 정원, 동구능은 어떤 땅인가. 경기도 구리시(九里市)에서 서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거대한 불암산(佛岩山)이 병풍을 이루고 그 아래 얕은 산들이 펼쳐져 있는데 바로 그곳이 동구능이다. 불암산은 바위 많은 골산(骨山)으로 살기 넘치는 세산(勢山)이고 그 아래 갈매동의 구릉산이며 검암산(儉岩山)은 흙으로 이뤄진 토산(土山) 또는 육산(肉山)으로 동구능이 자리하고 있다. 검암산은 풍수에서 말하는 이른바 형산(形山)으로 형산이란 여인의 긴 머릿결이 곱고 부드러운 모습을 갖춘 산이다. 여기서 형이란 形=幵+彡인데 평탄할 견(幵)과 머리카락 삼(彡)이 합쳐진 것이다. 또 삼(彡)은 붓 놀려 그린다는 뜻도 있는데 형산이란 그림처럼 아름다운 동산이란 뜻도 있다. 

  "주산(主山)이 수려하고 단정하며, 청명하고 아담한 것이 상(上)이다. 뒤에서 내려온 산맥이 끊어지지 아니하면서 들을 건너다가 갑자기 높고 큰 봉우리로 솟아나고, 지맥이 감싸 돌면서 골판[洞府]을 만들어, 궁궐 안으로 들어 온 듯한 기분이 나며" 2   주산인 불암산으로부터 구릉산, 검암산으로 흐르니 동구능은 바로 그런 곳인 게다. 그러므로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가 세상을 떠나자 태종 이방원(李芳遠 1367-1422) 이하 영의정 하륜(河崙 1347-1416)을 비롯한 모두가 왕릉 터로 쓸 길지(吉地)를 살폈다. 그렇게 고른 땅이 바로 이곳이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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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중환 지음, 이익성 옮김, <<택리지(擇里志)>>1751, 을유문화사, 1971. 162쪽.

2. 이중환 지음, 이익성 옮김, <<택리지(擇里志)>>1751, 을유문화사, 1971. 163쪽.   

글/사진 최열(미술평론가)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21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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