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달밤 울창한 대숲이 말해주는 것 - <설죽도> 2016.04.28
특이한 대나무 그림입니다. 조선의 대나무는 전기와 후기의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한두 그루가 삐죽하고 치올라가는 것이 보통입니다.굵게 그린 통죽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정도는 아닙니다. 대나무가 무성한 대밭을 통째로 그렸습니다. 그리고 운치 있게 눈 오는 달밤입니다.조선시대 문인화가들...
산인가 구름인가 머흐도 머흘시고 -<사미인곡도> 2016.04.21
아무리 전문가라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름도 도장도 아무것도 없는 그림의 경우입니다. 더욱이 책 속의 한 페이지로 끼어 있을 때는 더욱 난감합니다.18세기 문인이자 글씨로도 이름난 배와 김상숙(坯窩 金相肅 1717-1792)은 1970년 무렵 무슨 생각인지 정철(鄭澈 ...
의주에서 중국 사신을 맞이하며 그린 그림 - 의순관영조도 2016.04.18
외교 정세가 일반 사람이 보고 있어도 결코 만만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지내던 중국이 재등장하면서 새로운 판세가 벌어지는 형국입니다. 새 중국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국제 정치학자도 쉽게 짐작하지 못하는 만큼 일반은 그저 바라만 볼 뿐입니다.과거 조선은 당연히 중국 외교에 고심했습니다. 중...
매화 축제에 이런 초옥 운치가 더해진다면 - 허련 <매화서옥도> 2016.04.12
이제는 본격적으로 봄입니다. 봄의 전령은 참 많습니다. 꽃도 있고 새도 있고 비도 있습니다.하지만 이들 중 가장 앞서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매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찬바람이 채 가시지 않은 대지 위에 이파리 하나 없이 꽃부터 피워 향기를 냅니다. 굳굳하면서도 기품 있는 자태는 진작부터 선비의 상징이었...
활 쏘고 연회 즐기기 좋은 날 - <북일영도> 2016.04.05
조선시대 수도방어 군영인 훈련도감에서 설치한 여러 군영 중 사직단이 있는 인왕산 끝 경희궁 북쪽에 아담한 군영이 있었습니다.15칸짜리 이 아담한 군영이 북일영北一營입니다.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하는 <북일영도>에는 큰 활터와 북일영 건물의 모습이 보입니다. 북일영 활터에서 활을 쏘고 연회를 ...
심심 무료한 대가가 끄적거려 놓은 솔직한 낙서(?) 백남준 판화 <V-Id... 2016.03.09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은 생전에 판화를 많이 제작했습니다. 본업이 비디오아트였지만 시간과 함께 빠직빠직 움직이는 화면은 무언가의 틀이 없으면 보여줄 수 없습니다. TV는 일종의 틀입니다. 그러나 종래의 관점에서 보면 비디오아트는 생소하기 마련입니다. 판화는 그래서 서비스로 생각해낸 매체일지 모릅니다.그는 ...
근원 김용준 <동십자각> 공사 장면 2016.02.18
근원 김용준은 동서양화를 두루 그렸던 화가이자 해박한 미술이론가로서 해방 이후에는 서울대 미술학부 교수를 지낸 분입니다. 아름답고 고아한 글 솜씨를 지닌 빼어난 문장가로 납·월북 문화예술인들의 해금 이후 그의《근원수필》이 40여년만에 다시 발간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데뷔작은 이 유화 작품 <동십자각...
오색 좀벌레가 '신선'자를 파먹고 살듯 <백매도白梅圖> 2016.02.02
화사하여 정신을 쏙 빼놓는 매화가 간절히 기다려지는 겨울 끝자락입니다.매화를 잘 그렸던 조희룡의 그림 중에 작고 아름다운 이 <백매도>는 <홍매도>와 한 쌍으로 《편우령환첩》이라는 화첩 속에 들어 전해지고 있습니다.<백매도>흰 매화 아래에는 매화와 글과 도인같은 삶을 사랑...
19세기초 한양, 밤을 밝혀 즐기는 야회가 그림 속으로 <수갑계연회도> 2016.01.28
조선시대 그림은 먹과 붓으로 대강 쓱쓱 그렸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꼼꼼하고 정확한 게 많습니다. 의궤 같은 궁중 행사도만이 아닙니다. 시대의 생활상을 그림으로 그린 풍속화에도 의외로 꼼꼼한 표현이 적지 않습니다.이 그림은 서울 중부에 사는 중인(中人) 가운데 1758년에 태어난 사람들이 모여서 동갑...
조선 후기에 그려진 구름 속의 용그림 - 전 이인문 <운룡도> 2016.01.19
날이 추워지니 따뜻한 곳을 절로 찾게 됩니다. 공중목욕탕도 그런 곳 중 하나입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온탕과 쫄깃쫄깃 살갗이 줄어드는 것 같은 냉탕을 오가는 일은 겨울철 목욕의 신선놀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곳의 한 장면입니다. 냉탕에서 차가운 물줄기를 머리에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라사대 ‘이러면 ...
내가 탄 버스의 운전사가 유능하길 - 장우성 <아슬아슬> 2016.01.14
월전 장우성의 2003년 작 <아슬아슬>은 오늘의 일상적 풍경을 풍자적으로 묘사하는 수묵화입니다. 현대의 주제와 소재를 전통 수묵화, 문인화 형식을 빌어 표현했습니다.갈필의 버스 그림 아래 화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무심코 집어 탄 버스가 갈지자로 가는구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어쩔 줄 ...
이상화된 법보사찰 통도사 전경 2016.01.12
아무 것도 없는 배경에 삐죽삐죽한 산봉우리를 그린 것으로 봐서 영화 아바타의 허공에 떠있는 소행성을 그렸나 싶은 그림입니다. 행성의 주인공은 가운데 널찍하게 자리한 사찰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절은 숭고하고 심원한 종교 철리를 주재하는 이상(理想)의 성소(聖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양산의 통...
그리움을 해학으로 - 정유승의 군원유희(群猿遊戱) 2016.01.05
원숭이해를 맞아 오늘은 원숭이 그림을 감상할까 합니다.‘군원’ 즉, 원숭이가 떼로 모여 ‘유희’, 놀고 있는 그림입니다.흔히 보는 원숭이의 모습인 이잡아주기, 춤을 추는 듯한 동작, 곤충을 잡아 줄에 매려고 하는 원숭이도 있어 놀랍습니다.원숭이 그림은 조선에는 흔치는 않습니다. 그런데다가 이 그림에는 이...
쓰러질 듯 쓰러질 듯, 그러나 버티는 것이 인생 <송하관폭도> 2015.11.27
티비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다가 앗, 하고 떠오른 이 그림한 점. 누워있지만 결코 쓰러지지는 않을 것 같은 나무의 자태가 닮아서였을까요?<송하관폭도>의 주인공은 폭포라기보다는 눕다시피 가로로 버티고 있는 거대한 소나무입니다.이인상의 또 다른 나무 그림인 <설송도>에서도 곧은 소나무 ...
'토끼가 낸 깎아지른 벼랑길'을 걸었던 추억-<토잔도> 2015.11.19
이미 낙엽이 지고 이런 저런 일에 파묻혀 달콤했던 지난여름의 휴가는 먼 꿈속의 일처럼 돼버렸습니다.조선시대에 여름휴가 따위가 있을 리 없었겠지만 한때를 즐기는 여행쯤은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입니다. 수장가로 이름난 김광수(金光遂 1699-1770)는 어느 해 경상도 한 지방을 여행했습니다. 그리고 한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