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릉4 - 공릉, 예종의 정비 장순왕후 2015.02.04
예종의 계비 안순왕후도판1 창릉 안순왕후 능침 뒷쪽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도판2 창릉 안순왕후 능 족석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도판3 창릉 안순왕후 능침 장명등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 예종의 세자빈인 장순왕후 한씨가 승하하자 예종은 1462년 한백륜(韓伯倫)의 딸 안순...
창릉3 - 명군(明君), 흰 까마귀 날아들다 2015.01.28
명군(明君), 흰 까마귀 날아들다도판1 창릉 예종능 능침 동자석주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도판2 창릉 예종능 능침 난간석주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 예종은 겨우 13개월 재임했고 또 어머니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으로 자신의 업적을 쌓을 수는 없었다. 다만 <예종대왕 행장>을 ...
창릉2 - 왕권과 신권 그리고 종친의 갈등 2015.01.14
왕권과 신권 그리고 종친의 갈등 창릉 예종능 서쪽 문석인 -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 예종은 1450년 1월 1일 세조와 정희왕후(貞熹王后) 윤씨(尹氏 1418-1483) 사이에 둘 째 아들로 태어났다. 태어난 그 날이 범상치 않았지만 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이었고 또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므로 ...
창릉 1 - 예종, 안순왕후 한씨 2015.01.07
도판1 창릉 정자각 왼쪽이 예종능 오른쪽이 안순왕후능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도판 2 창릉 산릉도 <창릉지> 18세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서오릉의 유래 서오릉(西五陵)을 택지한 이는 세조다. 세조는 정변을 일으켜 조카의 왕위를 빼앗아 왕위에 오른 인물이었는데 그 벌이었던지 왕세...
광릉 4 - 여장부, 정희왕후 윤씨 2014.10.08
여장부, 정희왕후 윤씨도판1 광릉 정희왕후능 뒤에서 바라본 풍경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도판2 광릉 정희왕후능 정자각에서 바라본 풍경 -최열 촬영 정희왕후(貞熹王后 1418-1483) 윤씨는 윤번(尹璠)의 따님으로 세조와 결혼하여 2남 1녀를 두었다. 정희왕후가 세상을 떠나던 1483년에 지은 ...
광릉 3 - 세조의 업적 2014.10.01
세조의 업적 유능한데다가 그와 같은 군주관을 갖춘 왕이었고 따라서 자신의 이상과 재능을 실현하기 위하여 즉위하자 곧바로 신하에게 넘어가 있던 권력 다시 말해 신권(臣權)을 회수하여 왕권(王權)을 확립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단종이 즉위하면서 대신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였는데 이게 바로 의정부서사제(議政府...
광릉 2 - 세조, 다재다능한 군주 2014.09.23
어린 시절 세조는 1417년 9월 29일 세종과 소헌왕후(昭憲王后) 심씨(沈氏) 사이에 두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세조대왕 행장>에 따르면 “하늘로부터 받은 자질이 영명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게으르지 않았다”면서 “성품이 지극히 효성1)”스럽다고도 하였다. 세조가 16살 때 부친 세종대왕을 따라...
광릉 1 - 광릉, 태조릉에 버금가는 명당 2014.09.16
도판1. 광릉 하늘에서 본 풍경 -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광릉, 태조릉에 버금가는 명당 세조(世祖 1417-1468). 왕이 될 자격이 없는 사람, 세종대왕의 둘째 아들인 그는 수양대군(首陽大君)으로 잘 알려져 있다. 수양대군은 정변을 일으켜 조카의 권력을 찬탈했다. 쿠테타로 집권한 이들의 말로...
사릉 4. 정순왕후의 흔적 - 동망봉, 자줏골, 재동 2014.05.27
동망봉 동망봉(東望峯)은 정순왕후의 정업원 동쪽에 솟은 산봉우리다. 일제 강점기 때 이곳의 바위가 좋아 채석장을 개설한 이래 온통 그 자취가 사라져버렸고 지금은 그저 숭인근린공원이 흔적처럼 조성되어 거기 동망정(東望亭)을 세워두었다. 동망정 (출처홍미숙, 《왕곁에 잠들지 못한 왕의 여인들》) 정순왕후는 ...
사릉 3. 동대문에서 정순왕후를 찾다 2014.05.23
동대문에서 정순왕후를 찾다 오백년 동안 정순왕후는 잊혀지지 않는 왕비였다. 그가 살던 곳 동대문 밖 숭인동 일대는 온통 정순왕후의 이야기로 넘쳐난다. 멀리 영월 장릉을 가서 하루를 머물고 되돌아 오는 길에 남양주 사릉을 들렀다가 귀가한 뒤 매년 6월 4일이면 동대문 일대를 유람할 일이다. 만남과 헤어짐을...
사릉 2. 그 겸손한 아름다움 2014.05.13
사릉, 그 겸손한 아름다움사릉 전경 (출전《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순왕후는 남편과 자신의 복위가 이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지 몇 해 뒤인 1521년 6월 4일 승하하였다. 이에 중종은 “노산 부인 송씨 상사(喪事)는 의거할만한 전례가 없으니, 마땅히 왕자군 부인 호상(護喪) 예수(禮數)에 의...
사릉 1. 영원한 이별의 주인공 정순왕후 2014.05.07
사릉도 2폭(출전 《조선왕릉2》 국립문화재연구소)짧은 만남과 영원한 이별 정순왕후(定順王后 1440-1521)의 나이 열 다섯 때인 1454년 1월 22일 열 네 살의 단종(端宗 1441-1457 *재위1452-1455)과 혼인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 1455년 왕비에서 밀려나 대비(大妃)가 되었고 14...
장릉 4. 죽음 그리고 생육신의 노래 2014.03.24
영월가는 길도1영월부 해동지도 47.5x30cm, 18세기중엽. 규장각도2 영월 청령포 전경도3 월중도 중 <청령포도> 28.9x33.4cm, 1800년전후. 장서각도4 영월 청령포 옆 망향탑 세조는 어린 조카를 노산군으로 강봉하는 것도 성에 차지 않아 그 6월 21일에 강원도 영월 땅으로 유...
장릉 3. 단종과 사육신 2014.03.17
단종의 업적 그 위대함이여 단종은 왕위에 즉위하자 《고려사》 간행을 명하여 김종서가 다음해 《고려사절요》를 완성했다. 또한 《세종어제 악보(樂譜)》를 간행하였으며 또한 무기 제조를 위한 도회소(都會所)를 정하고 각각의 제조량을 정하거나 시전(市廛) 규모와 장인 등급을 등록함으로써 세금을 엄격히 통제하...
장릉 2. 단종의 명당, 장릉 2014.03.10
명당, 그 많은 이야기들 세조는 그 누구보다 풍수를 중시하던 인물이었으니까 결코 단종에게 능묘 터를 주어 그 어떤 풍수의 기운도 제공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므로 아예 그 싹을 자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냥 그 옥체를 강물에 떠나 보내버리는 방법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있는 단종의 능묘인 장릉은 서슬퍼런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