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위창선생 방문기 - 『신천지(新天地)』 서울신문사(1946) 2014.07.15
기미운동(己未運動)의 선구자(先驅者) 위창선생방문기(葦滄先生訪問記)본지기자, 『신천지(新天地)』 통권 2호(제1권 제2호), 서울신문사, 1946. 3기자의 임무는 위창 오세창 선생 댁에 방문하여 선생께 기미운동의 회고담을 듣고 오는 것이다. 선생은 누구나 아다 시피 기미년 독립운동의 대선배이시며 삼천만...
91. 오세창: 한국 미술사 연구의 아버지 2014.06.11
“로마는 호수”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개울과 강물이 모여 호수가 되고 호수는 담아 두었던 물을 바다로 보내 대자연의 순환의 중요한 고리를 이루 듯 서양 문명은 로마로 흘러들었고 로마에서 다시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이세득, <위창 초상&g...
90.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941-1950) 2014.02.04
1940년의 서울 숭례문 근처의 풍경. 일제시기의 의사, 수장가 박창훈(1897?-1951) 1940년 4월에 개최된 '부내 박창훈 박사 소장품 매립 목록'에 수록된 <이순신 수찰>1940년 4월에 개최된 '부내 박창훈 박사 소장품 매립 목...
89.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931-1940) 2013.12.16
고유섭, 자화상 개성 현화사비 앞에서(왼쪽부터 고유섭, 황수영, 김경배) 개성부립박물관 전경 종로 교차지점의 화신백화점(현 삼성종로타워 자리, 일제강점기) 서력 고미술, 미술시장, 수장가 관계 참고사...
88.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921-1930) 2013.11.19
경성 조선은행 앞(鮮銀前) 광장(현 한국은행 앞 광장). 경성 남촌의 중심지인 이곳은 일본식민통치의 상징과 같은 곳이었다.일본인 상가와 일본어 간판으로 가득한 1920년대의 본정(本町: 혼마치, 충무로) 도미타 기사쿠(富田儀作: 1858-1930): 한국에 건너 와 성공한 일본의 기업가 가운...
87.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911-1920) 2013.10.29
석굴암, 20세기 초 촬영경복궁 총독부박물관 본관 서력 고미술, 미술시장, 수장가 관계 참고사항 1911 ◦2월. 총독부, 각 道에 사찰소유 보물목록을 제출케 함.◦10월. 창경궁 안에 이왕가박물관 완공.◦11월. 조선총독부상품진열관 개관.◦석굴암. 경...
86.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889-1910) 2013.10.07
함석태(1889-?)김찬영(1893-?), <자화상> 장택상(1893-1969)오봉빈(1893-?) 서력 고미술, 미술시장, 수장가 관계 참고사항 1889 ◦치과의사․수장가 咸錫泰 生(-?). ◎5월. 파리만국박람회 개최. 1890 ...
85. 한국 근대 미술시장사 연표(1864-1889) 2013.09.17
한국 근대미술사 연구는 1990년대 이후 연구자의 수효와 연구 업적이 급증하는 등 그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비약적 발전을 이룩하였지만 연구 관점의 다양화가 요구됨은 물론이다.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우리나라 근대 미술시장사 연구는 미술과 사회, 소비 및 향유 구조 등을 중심으로 미술에 접근하고...
84. 박영철 연보 2013.08.09
박영철의 아버지 박기순(朴基淳: 1857-1935) 박기순의 회갑기념으로 건립된 전주의 취향정 서기 나이 주요경력 기타 1879 02.02 生 12월. 지석영, 종두 실시 7세에서 15세까지 서당에서 한문수학 후, ...
83. 박영철: 박영철의 ‘부전’과 수장가로서의 위치 2013.07.04
다산진장부전多山珍藏附箋1930년대는 고미술품 거래가 대단히 활성화된 시기로서 박영철과 같은 이름 있는 수장가는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고미술품을 수장할 수 있었다. 박영철의 수장품은 경성제대에 기증한 115점 외에도 훨씬 다양한 종류에 많은 수효의 고미술품을 수장하였을 것임은 물론이다. 그 증거가...
82. 박영철: 경성제국대학 기증품 목록 2013.05.16
박영철의 주요 수장품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가 『고박영철씨기증서화류전관목록故朴榮喆氏寄贈書畵類展觀目錄』이다.(이하 『목록』) 박영철은 타계 전에 자신의 수장품과 진열관 건립비를 경성제국대학에 기증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고,『목록』은 박영철 사후 1년 뒤인 1940년에 경성제국대학에서 기증전시를 할...
81. 박영철: 근역서휘, 근역화휘 2013.04.04
『고박영철씨기증서화류전관목록(故朴榮喆氏寄贈書畵類展觀目錄)』(이하 『목록』)은 명칭만이 열거되어 구별하기가 어렵지만, 1930년 동아일보사 주최로 개최된 ‘조선고서화진장품전람회’의 김옥균의 <행서>, 심사정의 <용호도>, 김홍도의 <신선도>와 역시 동아일보사에서 주최한 19...
80. 박영철: 경성제국대학 박물관의 기초를 마련하다 2013.03.14
조선총독부에서 1935년에 출간한 『조선고적도보』 14 - 조선시대 회화 편에 3점의 수장품이 수록되었는데, 이는 조선인으로는 김용진(金容鎭) 12점, 이병직(李秉直) 8점, 이한복(李漢福) 7점, 박재표(朴在杓) 5점 다음으로서 오봉빈과 수효가 같다. 박영철 수장품은 『조선고적도보』 14의 수록번호 5...
79. 박영철: 연암집, 오세창, 조선고서화전람회 2013.02.14
박영철이 그의 나이 53세 때인 1932년 5월에 17권 6책으로 간행한 '박영철본 『연암집(燕巖集)』'은 국문학․한문학계에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박영철본은 시문 만이 아니라 『열하일기(熱河日記)』, 『과농소초(課農小抄)』까지 포함된 책으로 박지원의 모든 저작의 실체를 최초로 공간하여 세상에 알렸다는 ...
78. 박영철: 친일과 문화애호가의 사이 2013.01.22
박영철의 출세비결은 일제에 대한 충성 때문이었다. 3․1운동 당시 그가 쓴 '만세망동론萬歲妄動論'에는 조선독립 불능론과 당시 친일파들이 일반적으로 주장하고 있던 실력양성론 등은 그의 출세지향주의를 잘 뒷받침해 주고 있다. 친일파들이 당시 주장하고 있던 실력양성론은 박영철이 『매일신보』, 1919,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