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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 오세창: 한국 미술사 연구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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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호수”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개울과 강물이 모여 호수가 되고 호수는 담아 두었던 물을 바다로 보내 대자연의 순환의 중요한 고리를 이루 듯 서양 문명은 로마로 흘러들었고 로마에서 다시 흘러 나왔기 때문이다.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                                   이세득, <위창 초상>, 유채, 60×45.6㎝, 1949년


우리나라 근대 서화사에서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 1864-1953)은 호수와 같은 또는 서양문명에 있어 로마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서화의 감식, 수장, 제작은 물론 여러 수장가를 독려하여 민족문화를 보존하는 데 이르기 까지 오세창의 정성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세창은 언론인, 천도교인, 독립운동가, 민족지사, 서화가, 감식가, 미술이론가, 전각가 등 다양한 활동을 한 인물로서 서화 등 예술 분야에서 당대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오세창의 가계와 생애 및 예술 등에 대해서는 그동안 미술사에서는 물론 근대사, 언론사 등에서 여러 각도에서 조명되어 왔다. 특히 1996년과 2001년 2차례 이루어진 예술의 전당 특별전은 오세창에 대한 자료를 종합적으로 수집하고 소개한 대규모 전시로서 종합적 접근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2001년 7.27-8.26일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서예사 특별전 20, 8월의 문화인물
<한국미술사 연구의 아버지 오세창의 전각 서화감식 콜렉션 세계> 안내장 표지


  오세창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 미술사, 언론학 등 여러 전공자들에 의해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졌다. 오세창에 대한 평가는 "亂世를 義로 산 先覺人"(조용만), "근대 한국사에서 누구보다도 폭넓은 역사적 활동과 공적을 남긴 인물…최고의 서화 감정가"(이구열), "초창기 언론인 가운데 가장 오랜 기간 신문과 관련을 맺었던 … 대단히 중요하고 특이한 업적을 남긴 사람"(정진석), "독립운동보다 예술가의 길에 더 충실했던 … 정치적으로 큰 공적을 남기지 않았지만 바른 애국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이화), "『근역서화징』을 통해 한국미술사의 초석을 마련"(홍선표)하였고 "우리나라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전각가이자 탁월한 안목을 지닌 서화감식가이며 연구자"(이완우), "한국 근대 전각의 선구자적 개창자"(김양동)라는 평가에서 "주체적인 정치의식․민족의식을 체득하지 못한 채 … 취약한 민족의식을 드러낸 근대사 속에서의 중인층의 한 사람"(김경택)에 이라는 비판적 견해에 이르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오세창, <임남해각자(臨南海刻字)>, 비단에 먹, 24×33㎝, 1924년도(좌)
오세창, <萬歲報社之章> ‘만세보’는 1906(고종 10) 6월 17일 천도교 교주 손병희의 발의로 창간된
일간신문으로 오세창이 사장이었다. (우)


  이 글에서는 기존의 여러 층위에서 분석하고 해석된 연구를 토대로 오세창의 일생을 개관한 후 그의 미술품 수장내역과 의미 그리고 수장가로서의 역할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아직까지 본격적 의미에서의 접근이 이루어지지 않은 수장가로서의 오세창의 면모를 파악함은 물론 우리나라 근대 미술시장의 성립과 구조의 파악을 위한 시도이다. 


오세창이 각(刻)한 인장들


오세창, 『근역서화사(槿域書畵史)』 상·중·하 3책, 필사, 24.8×16.5㎝.
1928년 계명구락부에서 출간할 때에는 『근역서화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글/사진 관리자
업데이트 2024.11.1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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