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자리에 올랐던 양반 실존 인물을 그린 것이니 초상화라고 할 수 있는데, 야외를 배경으로 풍속화처럼 그려진 이례적인 그림이다. 조선 후기의 화원 화가였던 김희겸(또는 김희성, 1710~1763 이후)이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유명한 그림.
주인공은 조선시대 무신이었던 석천 전일상(1705-1751). 그가 전라우수사를 지내던 시절에 한가롭게 쉬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전일상은 5대에 걸친 무인집안 출신으로 전라우수사와 경상좌병사를 지낸 인물이다. 화면 왼쪽에 "무진유월 일제 戊辰流月 日製"라는 글씨가 있어, 1748년 6월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전일상의 얼굴은 수북한 눈두덩이와 두둑히 살이 붙은 턱선에 붉은 얼굴, 긴 눈매와 큰 귀가 눈에 띈다. 구레나룻과 수염이 구불구불 곱슬이다. 이 사람의 진짜 얼굴과는 얼마나 닮았을까. 관복을 입은 전신 초상화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 그림의 얼굴과 많이 비슷하다.
전 김희겸 <전일상 초상> 18세기 중엽, 비단에 색, 142.5x90.2 cm 담양 전씨 보령공파 장충영각
초상화 얼굴 부분
손에 앉아 있는 멋진 사냥 매, 기둥에 장식처럼 걸어놓은 칼, 아래 냇가에서 씻기고 있는 점박이 백마로 무신으로서의 그의 성격과 관심사를 짐작할 만하다. 책, 붓, 벼루로 문무겸비를 뽐내고, 무늬를 넣은 백자 붓꽂이도 기물에 대한 취향을 드러나도록 하는 장치 같다. 술, 가야금과 여인으로 풍류를 즐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전일상의 초상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김희겸은 원래 이름인 희성(喜誠)을 버리고 희겸(喜謙)이라는 이름을 쓸 정도로 겸재를 존경했다는 겸재 정선의 제자이며, 궁중 행사에 참여한 기록이 다수 있는 중요 화원이다. 그가 남긴 옥계유거라는 시, 그의 아들 김후신이 중인층 화가와 여항문인들의 옥류동 모임에 참가한 것 등 여러 기록을 근거로 그의 집안이 대대로 서울 옥류동 근처에서 살던 중인 계층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정선의 제자이기도 하면서 강세황과도 평생 관계를 맺으며 지냈는데, 18세기 화단을 주도했던 양대 거장과 교유하던 셈이 된다. 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산수화에 있는 김광국의 제발에는 김희겸이 화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정선의 제자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써 있다.
해당 풍속 인물화는 2011년 KBS 진품명품에서 15억으로 감정을 받아 주목받았고, 이번에 2월 말에 열리는 경매에 ‘별도문의’ 가격으로 출품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초상화의 비밀》전시(2011년)에서는 전(傳) 김희겸으로, 이번 경매도록에서는 김희겸 작(作)으로 소개됐다.
김희겸, <석천한유(전일상의 한가로움)> 1748, 비단에 색, 119.5x82.5 cm, 서울옥션 전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