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바위에 앉아 귀를 씻는 허유. 소를 몰고 상류로 올라가는 소보.
잘 안 보이지만 위쪽 붉은 동그라미 안에 그려진 글씨는 ‘소허세이기우(巢許洗耳騎牛)’. 소허가 귀를 씻고 소를 끌고 간다는 뜻이다. 소허청절(巢許淸節)의 고사라고도 하는데 소보巢父와 허유許由 두 사람의 맑은 정절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서진(西晉)의 황보밀(皇甫謐, 215~282)이 지은 『고사전(高士傳)』에 등장하는 이야기.
두 사람은 아주 이상적인 평화로운 시대, 고대 요(堯)임금 시절의 고사(高士)로 그런 편안한 때에도 하남성 구석 기산(箕山)이라는 곳에 들어가 은둔하고 있었다. 요임금이 허유의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천하를 그에게 물려준다 했으나 거절당하고 구주(九州)의 장이라도 맡아달라고 했는데, 허유가 그 소리를 듣고는 구질구질한 말을 들어 내 귀가 더러워졌다고 하면서 영수(潁水)의 물에다 귀를 씻었고, 소보가 소를 끌고 와서 물을 먹이려 하다가 그 귀를 씻은 물을 먹이면 소를 더럽히겠다고 하면서 상류로 올라가 물을 먹였다는 임팩트 강한 이야기다.
이 그림은 민화 문자도 중 '염廉'자 아래쪽 속에 그려져 있다. 문자도 여덟 글자 "효제충신 예의염치" 중 ‘염’은 청렴하고 결백한 곧은 마음이다. 인간이라면 체면과 절개를 지키며 바르게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염자도에는 봉황이 상징으로 많이 그려지고 廉溪寒川, 前進後退, 鬱林戟石, 栗里松菊 등의 화제가 보이기도 한다. ‘염계한천’은 관직에 연연하지 않던 주돈이, ‘전진후퇴’는 먹이를 찾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가 뒤로 물러서는 습성을 빗대 분수에 맞지 않으면 물러서는 출처出處의 도리를 가리키는 것이다. ‘울림극석’ 효 문자도에도 나오는 육적의 이야기로 당나라 울림에서 태수를 지냈는데 워낙 청렴결백하여 벼슬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 가지고 갈 짐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타고 갈 배가 너무 가벼워 바다를 건너갈 수 없자 하는 수없이 배에다가 울림의 돌을 가득 싣고 갔다는 이야기. ‘율리송국’은 고향으로 돌아와 유유자적한 삶을 산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온 것이다.
작자미상 <염廉> 《문자도 8폭 병풍》 19세기, 종이에 채색, 74.2×42.2cm, 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