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을 그린 그림도 물론 찾기 쉽지 않다. 이런저런 그림에서 추정해보는 정도이다. 그런데 분명히 영의정이라고 여겨지는 그림이 있다. 1720년에 그려진 《기사계첩(耆社契帖)》 행렬도의 한 장면이다. 《기사계첩》은 그 전해에 숙종이 기로소(耆老所)에 든 것을 기념한 것을 그린 궁중 행사도 화첩이다.
행렬도에는 당시 기로소에 든 70살 이상 고위관료가 말을 타고 가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당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은 영의정 김창집(당시 72살)이었다. 녹색 관복의 말 탄 인물이 바로 그다. 뒤의 푸른색 관복 인물은 당시 두 번째 고위급이었던 영중추부사 이유(75세)로 보인다.
꼼꼼한 채색이 수준급이나 그린 화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화첩 말미에 화원 김진녀, 장태흥, 박동보, 장득만, 허숙 등 5명이 그렸다고만 돼 있다. 이들은 당시 1년을 매달려 12첩을 동시에 제작했다고 한다.
그림 속의 영의정 김창집은 당쟁이 격화되면서 2년뒤 거제도, 경상도 성주로 유배되었다가 끝내 사사됐다. (《기사계첩》 중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부분)
그림 속의 영의정 김창집은 당쟁이 격화되면서 2년뒤 거제도, 경상도 성주로 유배되었다가 끝내 사사됐다. (《기사계첩》 중 <어첩봉안도(御帖奉安圖)>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