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를 모르면 세상 분위기를 못 따라가기 십상. '냉파'는 아마 따끈한 신조어는 아닐 거다. 한참 전에 나온 말인데 냉장고를 파먹듯 남은 재료를 알뜰하게 요리해 먹는다는 말이라고 한다. 그림에도 냉파처럼 ‘그림 파먹기’를 해야 진면목(眞面目)이 보이는 그림이 있다.
이 장면이 냉장고 속 두부에 해당하는지 파에 해당하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클로즈업 해서 보면 ‘이런 장면이 있었는가’하고 새삼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조선 그림에 세밀한 묘사는 의외에 속한다. 문인화가 유행한 조선 후기에는 특히 일필휘지라고 하면서 적당히 ‘쓱쓱’ 그린 그림이 태반을 넘었다.
여기에는 놀라운 솜씨가 발휘돼 있다. 우선 오른쪽에 시꺼멓게 서 있는 절벽 바위부터 보자. 먹으로 윤곽을 그리고 준(皴, 주름 그리는 법)을 더했다. 짧은 준을 무심하게 긋고는 군데군데 먹점을 찍었다. 그 위에는 옅은 먹과 옅은 청색을 살짝 입혔다. 이로써 바위는 깊은 산속처럼 거칠면서 한층 중후하게 됐다. 바위뿐 아니다. 나무도 탁월하다. 왼쪽에 그린 소나무를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에 산속 마을에 보이는 사람도 하나하나가 정밀하다. 세심한 관찰과 연습이 더한 위에 나오는 필치이다. 절벽 아래에는 붉게 물든 나무가 한 그루 있다. 그 위에 집이 보이는데 아마 주막인가. 탁자를 사이에 두고 술잔이라도 나누는 듯한 두 사람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 속의 산골 마을은 그냥 평범한 마을이 아니다. 사람들이 번다한 속세를 떠나가서 즐기고 싶고(可遊) 살아보고 싶은(可居) 마음이 생기게 하는 곳이다. 이런 산중 마을은 산수화가 그려지는 초기부터 그려졌다. 당시의 거장 관동(寬仝, 10세기초 활동) 그림에 있는가 하면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도 이런 마을이 그려져 있다.
이상의 자연 속에서 속세를 떠난 생활 모습을 정교하게 그린 화가는 이인문이다. 그는 동갑내기 천재화가 김홍도의 명성에 가린 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역시 이런 솜씨가 가능한 탁월한 화가였다.(이인문의 <강산무진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