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명: 호랑이의 도약
전시일자: 2019년 5월 17일~5월 26일
전시장소: 서울 통의동 보안여관 구관
글: 김세린
통의동에 위치한 보안여관은 1930년대에 개업해 2006년 폐업한 여관이다.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 문인들이 즐겨 찾았던 공간이자 문학동인지인 ‘시인부락’이 창간된 곳이기도 하다. 경복궁과 청와대가 위치한 사잇길을 걷다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식건물에 현대식 건물이 결합된 곳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보안여관이다. 현재는 아트스페이스와 숙박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호랑이의 도약>전은 보안여관에서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함께 5월 공예주간의 일환으로 기획된 전시이다. 전시는 독일의 문예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의 역사철학적 관점에서 출발했다. 문예평론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과거를 소환해냄으로써 현재를 다시 바라보는 것을 ‘호랑이의 도약’에 비유했다. 전시는 우리의 현재 공예문화를 이에 적용해 기획되었다. 전시는 전통기술 또는 문화와 현재를 결합해 현재의 문화, 현재의 전통을 조망해 전통의 현재적 가치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했다.
전시에서는 전통 기술 및 문화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현재의 문화를 입히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는 작가 7인(김동준, 신원동, 유남권, 이지원, 장성우, 조현영, 토림도예, 몽세라 알바레즈)의 작업을 선보였다. 참여작가는 오랜 기간 작업을 이어온 중견작가부터 이제 막 작품활동을 시작하는 신진작가까지 폭넓게 구성해 현재의 경향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했다. 또 전시를 아뜰리에 식으로 구성해 작가의 스케치와 도구, 작업현장을 통한 과정과 완성된 작품을 유기적으로 보여줬다. 그리고 전시가 진행되는 기간 동안 작가의 시연 및 작가와 공예 관련 이론가,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작품세계와 앞으로의 향방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도 가졌다.
도1. 칠공예가 유남권의 공간(작품과 도구들)
도2. 도예가 신원동의 작업공간과 작품(도구, 파편, 작품)
전시공간은 보안여관의 원 건물인 구관에 위치했다. 여관의 각 방에 작가의 작품과 도구, 노트 등 구성요소들을 배치해 각각의 공간을 마치 참여작가 개개인의 아뜰리에처럼 볼 수 있게 했다.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칠공예(漆工藝)부터, 현재는 국가무형문화재의 작업이라는 인식이 강한 직조작업(비단, 명주, 삼베 등을 짜는 작업)까지 각 공간에는 다양한 공예분야의 작업을 볼 수 있다.
도3. 토림도예의 공간(작품과 작업스케치)
도4. 토림도예의 공간(작업도구와 파편)
도5. 토림도예의 공간(작업과정에서 생겨나는 각종 파편들)
특히 토림도예와 직조공예가 이지원의 공간은 생소하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주로 완성된 결과물만을 보는 기존 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작업과정에서 나오는 파편들, 베틀 등이 함께 전시되어 더욱 그러했던 것 같다. 토림도예의 공간은 각종 다구들과 함께 다구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흙과 첫 성형을 끝낸 기물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모티브가 되는 다양한 스케치와 그림들이 작품과 함께 걸려있다. 또 전시공간 한 켠에는 다구가 완성되기까지 거치는 수많은 실패와 고뇌의 과정을 깨진 흙, 파편들, 도구를 통해 보여준다.
도6. 직조공예가 이지원의 공간(베틀에 사용하는 바디, 실틀, 작업구상도)
도7. 직조공예가 이지원의 공간(직조에 사용하는 실의 재료인 목화 등의 솜과 솜으로 만든 양)
도8. 직조공예가 이지원의 공간(직접 짠 직물과 직물의 조직을 보여주는 확대경)
직조공예가 이지원의 작업은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작업의 과정을 보여준다. 직조공예는 비단, 삼베, 모시 등을 통해 대중에게도 친근하다. 하지만 전승공예라는 인식이 강해 현재의 작업이라기보다는 과거의 작업이라는 인식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리고 직물은 의복이나 공예품을 만들기 위한 1차적인 재료라는 인식도 있어서, 이를 하나의 공예품으로 보기보다는 옷이나 공예품의 재료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진작가인 이지원은 전통기술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면서 동시에 현대 사람들도 이를 현재의 공예로 인식해 함께할 수 있도록 작품의 방향을 전개해가는 작가이다. 작가의 작업은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재료와 기술의 결합을 통해 전개된다. 작품은 목화를 재배하는 등 재료의 수확 및 실을 만드는 제사(製絲)작업, 천을 짜는 직조작업 등의 단계로 구성된다. 전시 공간에는 이러한 과정을 수행하는 베틀, 물레 등 도구들과 작업노트, 작품으로 이뤄져, 작가의 작업 과정과 현재 문화와의 결합을 위한 치열한 작가의 작업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대까지 전통에 대한 인식은 과거에서 이어온 문화를 온전히 계승하는 전승을 전통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러한 인식은 2000년대 각종 비엔날레와 페어가 활성화되고 전통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가진 작가와 이론가들이 등장해 활동하면서 현재의 문화, 현재적 가치와의 결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확장된 인식으로 변모했다. 전승과 함께 현재가 더해지면서 전통이 지닌 본연의 의미 중 하나인 문화의 연속성에 대한 중요성도 비로소 부각된 것이다. 전통은 현재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문화는 물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공감과 문화를 담은 현재적 가치가 함께 작동해야한다. 이번 전시는 다시 한 번 환기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도 현재를 반추하고 고민할 수 있는 다양한 논의와 전시가 기획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