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一器; 日記; 一基; Thinking Hand – 김미경展
전시기간: 2018년 9월 4일-11일
전시장소: 유중아트센터
글: 김세린(미술평론가)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해도 되짚어보면 똑같은 하루는 없다. 작게는 같은 일이라 하더라도 해온 시간과 그날그날 겪은 일들이 약간씩 다르고, 마주하거나 스쳐간 사람 역시 다르다. 이렇게 보낸 하루를 반추하는 방식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상에서 일어난 일을 글로 간단하게 기록하기도 하고, 이를 둘러싼 상념을 규칙 없이 서술하기도 한다. 그림을 그려 형상화하기도 하고, 오늘 찍었던 사진을 정리하며 되짚기도 한다. 하루의 기록에는 정해진 방법도, 규칙도 없다. 뇌리에 남은 일상을 각자의 방식으로 표현할 뿐이다. 그리고 손이 이를 구체적으로 완성한다.
작가의 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작품에는 작가의 일상이, 문화적 배경이, 추구하는 작품세계 가, 그리고 기술과 기법 등 작가가 품고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내재된다. 이를 완성하는 작가의 손은 형태와 색채, 조형을 통해 생각을 형상화하고 구체화시켜 표출하는 출구라 할 수 있다.
이번 김미경의 전시는 작가의 일상에서 출발한다. 365일 하루하루 작가는 일기를 쓴다. 하루하루 일상의 시간, 가족, 주변의 사람들, 특별했던 순간, 그 외의 수많은 기억과 경험들 그리고 그 하루를 둘러싼 여러 상념들. 작가는 이를 자신의 작품을 통해 기록했다. 전시장에 처음 들어서자마자 마주하는 비슷하게 생긴 수많은 도자 그릇들은 이러한 하루의 형상이다.
전시 전경
전시 전경
두 층에 걸쳐 놓여있는 작품들의 군상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비슷한 도자기가 모여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치 우리가 하루하루 흘러가는 일상이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하지만 그 군상 앞에서 작품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크기도, 색채도, 유약이 흘러간 패턴도 제각기 다르다.
작품 세부
군상의 구성을 살펴보면 소성조차 하지 않은 정말 태토상태에서 성형만을 가하고 건조한 것과 같은 작품이 있는 반면 건조 및 번조과정에서 태토와 유약의 수축도에 따라 기물 면이 갈라지는 빙렬(氷裂)를 고스란히 살리거나 여기에 다채로운 색의 유약과 안료를 사용해 장식을 가미한 작품들도 있다.
작품 세부
작품 세부
또 기물 안을 텅 비우거나 부분 또는 전체를 각기 다른 색이나 유약의 혼합으로 채워 넣기도 하고, 유약을 구연부 일부만 감싸기도 하는 등 모여 있는 것만 봤을 때 거의 동일하다 여겼던 작품이 사실은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 그리고 다채로운 외피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작가는 작품 각각의 기벽에 제작한 날짜를 표기함으로써 구성된 작품 하나하나가 작가의 하루였음을, 그리고 하루가 모인 삶이라는 것을 관람객에게 상기시킨다.
작품에 찍힌 날짜들
전시는 비슷해보이지만 하루의 반추를 통해 기록한 작가의 일상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작가의 생각과 치열한 작업을 통해 표출된 다채로운 형태와 도자공예가 지닌 고유의 기술적, 조형적 면모를 함께 보여준다. 그리고 반복된다고 생각되지만 너무나 다른, 하루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일상, 사람들 등 잔잔하면서도 역동적인 하루가 하나하나 모여 완성되는 우리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고 의미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