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어시장, 1025: 사람과 사람 없이 – 윤석남展
전시일정: 2017년7월13일 – 2017년9월24일
전시장소: 춘천 이상원미술관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장승과 꼭두 등 민간에서 전해 내려오는 목 조각품은 조각이기도 하고 또 공예의 범주에도 포함된다. 조형적 형태와 수법은 조각에 가깝지만 용도와 제작 방식은 공예와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여주는 형상이나 시간이 지나며 갖는 성격은 딱히 조각이나 공예라고 구분할 수 없는 중의적(重意的) 의미를 지닌다.
윤석남 <어시장> 가변설치 2003 ⓒ이상원미술관
윤석남이 걸어온 삶의 여정과 작품을 생각하면 소설가 박완서가 떠오른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데뷔 나이보다 훨씬 늦게 세상에 나왔고 작품에는 그들이 살아온 삶이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소재 하나하나, 단어와 칼이 닿는 흔적 하나하나는 이야기에 스며든 편린이 오롯이 담겨 치밀함과 깊이를 더하고 이는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대중을 만난다.
스치듯 지나간 사소한 일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에 작가의 삶과 생각이 더해지고 인문학적 사유가 더 얹어지면서 어떻게 보면 작품을 완성해가면서 획득한 작가 자신의 자유와 치유의 산물을 작품에서 느끼게 하며 작품을 대한 대중 역시 대리 만족 속에 함께 치유하고 자유로움을 만끽하게 된다.
윤석남 <Green Room> 혼합매체 2013 ⓒ 이상원미술관
윤석남의 작품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노작가가 살아온 오랜 시간과 연륜만큼이나 깊고 넓은 스펙트럼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같은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영역과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탈(脫)경계를 지향하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종종 발생하는 어색함과 부자연스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노련하고 작품마다 가진 고유의 색이 분명하다. 이번 전시에서도 작품마다 존재하는 작가의 이런 면모와 개성은 뚜렷하게 확인된다.
작품은 기본적으로 나무에서 출발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나무라고 단정 짓기보다는 재료가 가진 본연의 물성(物性)에서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재료 고유의 물성을 극대화해 실용적으로 사용하는 공예의 성격도 느껴지는 것이다.
윤석남 <Green Room>(부분) ⓒ 이상원미술관
조각을 비롯한 다른 영역도 마찬가지이지만 공예는 오랜 옛날부터 실용과 직결되어 제작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실용을 위한 재료의 특성을 효율적으로 극대화시키는 일은 지상과제였다. 따라서 기성품이 위주인 현대사회의 공예에서도 공예가 지닌 이런 재료들의 가공과 사용 전통은 여전히 존재한다.
결이 지닌 흐름에 따라 들어가는 칼, 일정하지 않은 나무 본연의 색을 살려 작품에 적용하는 등 재료의 자유로운 사용이나 재료를 다루는 자연스러운 기술은 재료 고유의 개성과 함께 작가의 노련함과 깊이를 새삼 느끼게 한다.
윤석남 <1025-사람과 사람없이> 가변설치 2008 ⓒ 이상원미술관
그녀의 작품에는 기본적으로 ‘자유’와 ‘치유’가 담겨 있다. 그리고 거기에 ‘여성’과 ‘정체성’이 함께 한다. 여성은 여성작가가 지닌 태초의 정체성이다. 여성으로 태어났기에 자연스럽게 사회적 통념 안에 존재하는 여성의 삶과 역할을 해냈다. 작가는 같은 여성인 어머니의 자애와 지혜 속에서 자라며 자신의 존재가 완성되었다고 여겼고 작가에게 어머니란 존경의 대상이자 작품의 한 축이다.
한편으로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태초부터 사회적 통념 속에서 삶을 영위한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삶이 결국 자신에게 작가로서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자신에게 어느 순간 한계와 굴레를 가져와 지쳐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윤석남 <1025-사람과 사람없이>(부분) ⓒ 이상원미술관
굴레와 한계로부터의 탈피해 아내, 어머니 등 사회적 통념에서 흡수되는 자연스러운 역할이 아닌 개인, 작가 등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그것은 작가 작품의 또 다른 축이 되었다. 어찌 보면 작가 역시 현대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이기에, 보통의 여성들이 한번쯤은 느끼고 고민했을 화두가 작가에게는 작업의 출발선이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사회적 통념이 지닌 기본적 여성의 역할 및 정체성과 함께 한 인간으로서의 여성이 지닌 정체성, 이것에 대한 끊임없는 작가의 고민은 긴 시간 작가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작업과 함께 이어진 여정은 작가에게 자유와 치유를 안겼다. 어떨 때는 작가의 작품을 보고 유쾌함에 관람객이 미소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치유의 공유도 함께. 명쾌하고도 다양한 작가의 작업과 작품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작가의 치열한 삶과 사유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윤석남 <붉은밥> 2003
요즘 ‘지친다’는 말이 일상에서 자주 들린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개인은 자유를 갈망하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회가 자유롭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의외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가진 능력이 한계에 부딪치고 사회적 통념에 휩쓸려 어느 순간 의도와 다르게 생각이 구속된다.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제시해 고착된 기준에 맞춰야한다. 밤늦게 집에 돌아와 이른 아침의 출근이 반복되면서, 힘없이 ‘지친다’는 말을 되뇌이게 된다.
윤석남의 작품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지침이다.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고, 일상의 삶 속에서도 꿈이 있기에 지치면서도 나아간다. 정체성에 대한 갈망과 끊임없는 고민은 작가로서 그녀의 꿈을 이뤄나가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우리도 삶 속에서 꿈을 꾸기에 고민을 한다.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는 꿈을 위한 고민이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지치고 지쳐도 그래도 나아가기에 정체성은 점점 구축된다. 작가의 여정처럼. 작가의 작품에서 느낀 자유와 치유가 어쩌면 이러한 일상에서의 고민과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는 나답게’라는 삶과 정체성에 대한 키워드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