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김동식展
전시기간: 2017.6.16 – 7.4
전시장소: 전주부채문화관 지선실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부채는 예부터 국가와 종교에서 의례의 상징물이었고 일상생활의 필수품이었다. 부채에 그려진 문양 하나하나는 적재적소에 사용되어 의례의 의미와 법식을 시각적으로 상징했다. 일상에서는 더위를 이겨내고 얼굴을 가리거나 선물용으로 쓰이는 등 실용적 목적을 통해 사용자의 취향과 풍류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단선(團扇)> 조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중국의 회화와 유물에 보이는 부채, 영화에서 보는 프랑스 베르사유궁의 화려한 귀부인 부채 조선시대 그림은 물론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색지가 사용된 여러 문양의 합죽선과 단선 등. 다양한 문화권에서 확인되는 부채들은 부채의 오랜 역사와 전통 그리고 다채로운 면모를 말해준다.
<접선(摺扇)> 조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경국대전』에서 확인되는 원선장(둥근 부채 장인), 접선장(합죽선 장인), 선자장(부채 제작의 골격을 만드는 장인)과 같은 여러 장인의 명칭과 기록 역시 당시에 부채에 주어진 역할과 의미를 짐작케 한다.
<윤선(輪扇)> 조선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기계가 일상 사물의 제작을 주도하고 기성품이 생활용품의 대부분을 차지한 요즘 전통시대에 사용되었던 수공예품 가운데 멸실된 사례가 적지 않다. 또 같은 용도이지만 기계 제작품으로 대체된 경우도 상당하다.
부채 역시 대체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선풍기가 있고 에어컨이 있으며 최근 유행하는 에어서큘레이터도 있다. 부채가 이런 시대에 아직도 널리 사랑받고 있는 이유는 휴대의 편리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휴대형 선풍기에 각종 휴대형 쿨러들이 등장하고 있기는 하다.
서천부채장 이한규의 작업 모습(사진=한국학중앙연구원)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고유의 영역과 넓은 저변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전통 부채의 저력이 새삼 궁금해지게 된다.
전통 부채는 크게 접선(摺扇), 단선(團扇), 윤선(輪扇)으로 나뉜다. 접선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부채로 달리 합죽선(合竹扇)이라고 한다. 단선은 요즘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부채로 부채 면에 손잡이가 달린 것이다. 윤선은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며 폈을 때 원형으로 펼쳐지는 것을 말한다.
부채 제작과 관련해 1993년 이기동(전북무형문화재 10-1호)의 선자장 지정을 시작으로 서천의 부채장 이한규(충남무형문화재 21호)가 지방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그리고 2015년에는 전북무형문화재 선자장 보유자였던 김동식이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승격됐다.
그외 지정되지 않았지만 남원 부채, 전주 부채, 통영 부채(특히 세미선이라고 한다), 옥과 부채 등 지방적 개성을 보이는 부채들이 지금도 계속해서 제작되고 있다.
김동식 <한지 옻칠선> 대추나무
전주부채문화관에서 열린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김동식전’은 전통부채의 틀 안에서 새로운 다양성을 추구하는 그의 작업 세계는 물론 다채로운 기법과 색채가 활용된 전통 접선(합죽선)의 매력을 보여준다.
대나무를 균일하게 쪼개 대를 만들고 대 위에 한지를 붙여 완성하는 부채는 대나무를 가공하고 방충 및 방수 등 손상을 방지하기 위해 칠을 하고 또 한지를 크기에 맞춰 마름하고 대에 붙이는 과정 등 여러 정교한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또 그 과정 속에서 사용되는 풀이나 나무, 종이 등 재료의 종류와 가공, 사용, 장식에 따라 섬세한 차이가 나타난다. 전시에서는 이러한 전통부채의 정교함과 섬세함을 엿볼 수 있다.
김동식 <한지옻칠 백접선> 먹감나무
전시의 부채들은 색도 제각각이지만 대나무에 장식된 문양도 다양하다. 나무의 결과 색을 그대로 살린 문양으로 장식한 부채도 있는가 하면 자개를 부착해 화려함을 더한 것도 있다.
또 나무의 결과 한지 본래의 질감을 그대로 살린 <백선(白扇)>은 보는 사람들에게 선인들의 풍류와 당시의 청량한 느낌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더불어 하얀 노란 한지와 황칠이 어우러진 <황칠선(黃漆扇)>은 칠과 종이에서 오는 화사함이 인상적이다.
김동식 <황칠선> 화목(火木)
전주부채문화관에서는 전시 감상뿐 아니라 부채 제작의 체험도 가능하다. 이를 통해 전통 부채의 기본적 제작 원리는 물론 전주 부채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전주 부채는 유명한 전주 한지와 대나무 그리고 다양한 수종의 지역 재배 나무를 재료가 전주지역의 부채제작기술 발달과 전승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동식 <백선> 유창목
공예가 일상에 쓰이는 거의 모든 용품의 제작을 도맡았던 시대에 공예품에는 지역마다의 개성과 특색을 담고 있었다. 이는 지역의 기후와 산물 그리고 사회적 환경과 결합되면서 개성으로 드러나고 또 특산품으로 발전해 전국적으로 이름나기도 했다.
요즘 공산품 이외에도 공예품 쪽에서도 값싼 중국산 모조품들이 넘쳐나고 있다. 공예의 보존과 발전에 지역공예문화는 절대적 위치를 차지한다. 최근 다행히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역문화의 활성화와 곁들어 지방공예 발전을 정책 과제의 하나로 삼고 있는 경우가 많이 눈에 뜨인다.
부디 이런 지역공예의 활성화 정책이 결실을 맺어 전통 공예의 발전은 물론 다채로운 지역적 공예 개성이 뿌리 깊게 전승되기를 바라고 싶은 마음이다.(*)
*전주부채문화관은 특별전 외에 상설전이 열리고 있다. 또 일반인과 어린이를 대상으로 전통부채를 제작해 볼 수 있는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