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내일 완성될 이해의 초도草圖 - 강선구展
전시기간: 2017.6.1 – 6.30
전시장소: 성남 수호갤러리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지금 쓰고 있는 사물에 대해 되짚어보면, 정말 무심코 사용한 사물이라 하더라도 시간과 의미가 존재한다. 컴퓨터 키보드를 쓰고 있는 필자의 지금 이 순간을 예시로 되짚어보면, 손은 끊임없이 여러 개의 키보드를 누르고 있으며 모니터를 보며 키보드를 눌러 글자를 완성하고 지우기를 반복한다.
생각이 손에 닿고 손은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키보드를 누른다. 생각을 구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키보드와의 시간을 새삼스레 되짚어보면 이렇게 사용하는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는 물론, 그 이전 조금 더 특별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사물과 조우해 시간을 공유하던 그 순간부터 펼쳐지는 이야기, 강선구의 작품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강선구의 작업은 가변설치 작업이 중심이다. 하지만 작품에 담긴 일상의 물질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그 기억을 따라가는 작품의 줄기는 현재 공예분야의 작업과도 일정부분 맞닿는다. 따라서 작가의 작업은 어느 특정 분야로 규정짓기 보다는 융복합적 성격이 강하다 할 수 있다.
강선구
작가의 작업 근간에는 시멘트와 일상의 물질 그리고 행위가 자리한다. 물질과 행위는 작가가 기록하는 혹은 전시장에서 관람객과 공유하는 시간과 의미를 담는 매개체이다. 작가는 그 물질을 접했던 그 순간, 물질의 상태를 그대로 남겨두기도 하고, 전시를 보는 관람객에게 작품으로 전시되어 있는 책이나 인쇄물을 넘기는 일을 하게 하는 ‘행위’에 참여하게 한다.
관람객은 그 순간을 특별하게 기억하는 것은 물론, 관람객이 넘긴 책장 하나, 인쇄물 하나가 작품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이처럼 하나의 완성된 물질 그 자체에 의미를 내재하기 보다는 그 물질과의 일상적인 시간과 물질이 담고 있는 평범했던 의미를 기억하게 하고 기록한다.
강선구 <잘 아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전경) 2016-2017 ⓒ수호갤러리
강선구 <잘 아는 사람을 위한 기념비> 관람객 정성연 씨의 작업 ⓒ수호갤러리
시멘트는 행위를 기록하고 박제화한다. 순간과 시간의 흐름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순간과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이치이자 순리이다. 하지만 물질에 담겨있는 일상의 의미와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망이다. 작가는 일상의 의미를 내재한 물질을 시멘트와 함께 굳혀 기억을 남긴다. 이를 작가는 기록이라 한다.
작가와 관람객의 기억을, 물질이 가진 의미를 작가는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의미의 간직을 극대화시킨다. 이러한 작업은 작가가 기억하는 시간, 역사를 오브제를 매장하고 발굴하는 작업을 반복한 조덕현의 ‘매장을 위한 발굴 (1996~)’ 프로젝트와도 일정부분 일맥상통한다. 조덕현은 <삶의 계보학-아버지에 대하여(1996)>, <구림마을 프로젝트(2000)> 등을 통해 기억의 순간을 담은 오브제를 매장과 발굴이라는 행위를 통해 작가의 사유가 담긴 기록을 지속했다. 강선구는 물질과 행위, 시멘트작업을 통해 이러한 기록 작업을 지속했다.
강선구 <만들어진 유물_잘 모르는 것에 대한 기록> 2015-2017 ⓒ수호갤러리
강선구 <만들어진 유물_잘 모르는 것에 대한 기록> 세부 ⓒ수호갤러리
일상을 대하고 물질을 접하는 방식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각기 다른 물질이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인간의 삶이 내재되어 있으며, 추억이 존재한다. 기성품이 위주인 현대사회에서 수공예품이 여전히 관심을 받고 명맥을 이어가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부터 이어진 우리의 삶과 삶을 기억하는 방식 그리고 문화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강선구의 작품을 보며 공예가 지닌 의미와도 일정부분 상통한다고 느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분야에 따라 풀어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지난 경기도자비엔날레(2017)에서도 구체적으로 드러낸 바 있는, 결국 공예를 포함한 미술은 인간의 삶이 내재된 그 자체가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그 자체가 인간 삶의 기록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작가 강선구]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및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하고 2002년 'Re-'를 시작으로 9회 개인전을 갖었다. 그 외 중한(中韓) 여성작가초대전(2011, 중국 장춘세계조소공원 전시관)' 'Wonder-full(2014, 서울시립미술관) 등의 단체전에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