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만물은 유전한다-Panta Rhei 윤성필展
전시기간: 2017.3.4.–3.26
전시장소: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판타 레이(Panta Rhei)는 ‘만물은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화하고 전해지고 생성하며 순환한다’는 뜻을 가진 고대 그리스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에서 출발한다. 이는 사람의 삶은 물론 모든 만물조차도 순간순간 흘러가고 결코 멈춤이 없음을 의미한다. 요즘 책이나 광고카피에서 흔히 보이는‘삶은 리허설이 없다’라는 말들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물론 만물이 탄생하는 순간부터 아무런 대가 없이 반복이나 수정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부여되더라도 시간까지 주어지지는 않는다. 삶의 고리 안에서 시간은 균일하면서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또 순환한다.
삶의 순간과 각기 다른 가치가 만들어내는 궤적과 생동성은 다르다. 하지만 궤적과 속도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삶의 끝을 향해 이르는 흐름과 운동성은 동일하다. 마치 지구, 화성, 금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자전하고 공전하는 것처럼.
윤성필
윤성필 작품은 기본적으로 원에서 출발한다. 원은 만물에 담긴 공통적인 흐름을 상징하는 고리의 기본형이다. 만물의 공통적인 시간 흐름의 에너지는 형식, 가치, 의미 등 만물에 부여된 혹은 추구하는 각기 다른 자아의 발현에 따라 발생하는 에너지와 함께 삶의 순환에서 각기 다른 모양과 궤적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 고리의 세부모양과 순환 그리고 방사의 방향과 궤적의 흐름은 제각각이다. 마치 각기 다른 삶의 형태와 궤적의 흐름을 상징하는 듯하다. 또 다양한 소재 위에 원의 모티프로 평면화시키거나 입체화로 만들었다. 또 선의 표현을 강조하기도 하고 조각이나 양감(量感)을 극대화시키면서 적극적으로 주제를 담고자 했다.
윤성필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14> 스테인리스스틸 MDF 동작감지센서 등 2013ⓒ영은미술관
윤성필 <넓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다 F-02-1> 알미늄판 동작센서 타이머 등 2016ⓒ영은미술관
그는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상호의존적 변화와 변용이 우주의 본질적 본래모습이라고 가정한다면, 궁극적 실재는 곧 보이지 않고 움직이는 힘이라고 추론해 본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물리적 힘에 의해 나타난 하나의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이 등식에 입각해 바라보려 한다’고 작가노트를 통해 작품의 함의를 밝히고 있다.
윤성필 <이것이 그것이고 그것이 이것이다 01> 스테인리스스틸 알미늄판 사운드 동작감지센서 등 2016ⓒ영은미술관
헤라클레이토스의 판토 레이를 비롯해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새옹지마(塞翁之馬) 같은 인생의 흐름을 담은 수많은 명구의 출발은 동서양 모두 오랜 시간 지속된 삶에 대한 고뇌와 인간의 탐구 그리고 의식의 흐름에서 출발한다. 윤성필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운동하는 원의 형태는 결국 공통적으로 부여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인간의 군상(群像)의 함축이랄 수 있다.
이 전시는 주어진 동일한 시간 안에서 빚어지는 삶의 궤적과 형태는 물론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울지 혹은 추할지는 온전히 그것을 빚은 자신에게 달려있음을 결국 언젠가는 반추하게 될 자신의 자화상임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