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정은미 전
전시 장소: 대전 모리스갤러리
전시 기간: 2017. 2. 16 – 2017. 3. 1
글: 김세린(공예 평론가)
추운 겨울, 소복하게 쌓여있는 눈을 자세히 보면 육각의 결정체가 보인다. 육각의 작은 결정체는 쌓이고 쌓여 하나의 모양과 형체를 이룬다. 결정체의 모습은 서로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물과 만나며 또 다른 형태로 거듭난다. 하나하나의 눈의 결정체는 여러 형태에 더해지면서 눈이 오는 날의 다채로운 풍경을 완성한다.
공예품을 구성하는 재료. 재료를 구성하는 미세한 물질과 광물. 그리고 미세함 속에 존재하는 결정체. 이들은 인간의 욕망과 필요에 의해 완성되는 구체적이고 다양한 형상의 근간이 된다.
태토와 유약, 안료 그리고 불의 결합으로 완성되는 도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각각의 최소단위가 서로 작용하고 결합돼 하나의 공예품으로 완성된다.
정은미 <접시> 백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정은미의 작업은 유약이 불속에서 녹아 우연적인 결정체를 이루는 결정유 기법(결정유 시유)에서 출발한다. 유약은 도자의 가장 기본 재료이다. 태토가 소성 과정에서 다른 물질로 바뀌는 것처럼 결정유 역시 그 모습을 바꾼다. 그리고 완성된 도자 위에 유약 결정체로서 전체의 색다른 모습을 완성한다.
정은미 <접시> 백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정은미 <워머> 혼합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정은미 <화병> 혼합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접시, 워머, 화병 등 작품의 주요 기형은 실생활에서 흔히 쓰는 것들이다. 세부 용도와 담는 사물의 성질과 형태가 다르듯 기형은 각각의 개성 있는 형태와 질감을 표출한다.
우리가 식탁에서 사용하는 그릇들이 제각각의 모양과 용도를 가진 것처럼 작가는 쓰임을 중심으로 이들의 고유한 개성이 각기 다르다는 점을 환기시켜준다.
작품의 주요 포인트인 유약과 그 결정은 ‘의도된 시도 아래 여러 작용을 통해 빚어진 우연의 결과물’로 대변된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 노트에 ‘그릇이 어떤 색을 입었는지 혹은 잘 녹았는지는 가마를 열기 전에는 알 수가 없다”라고 쓰고 있다.
기물 전면에 유약을 입히고 온도 변화를 반복한다 하더라도 어느 작품이든 차이가 없을 수 없다. 설사 기계로 모든 것을 표준화한다 해도 마찬가지이다. 가마 속에 쌓는 위치, 불이 닿는 각도와 온도 등에 따라 유약의 발색이 달라진다. 또 그에 따른 문양과 패턴의 형태는 물론 외형도 각기 다르다. 작가는 쓰임이나 형태가 가진 ‘공통’ 속에 드러나는 다름을 1차적으로 보여준다.
정은미 <사각접시> 백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정은미 <사각접시> 혼합토, 결정유 ⓒ모리스갤러리
그리고 유약 바르기(시유), 가마내의 쌓기(재임), 불 때기(소성)의 완성의 과정에서 빚어지는 무수한 변주와 작용, 즉 ‘의도한 우연’을 거쳐 다채로운 외피로 완성되는 개성을 보여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사물은 다양한 성질의 재료, 사용자의 욕망과 필요, 제작자의 의도 그리고 이를 실현시키는 기술로 완성된다. 수공예든 기성품이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들 요소를 기본으로 하는 것임에는 변함없다.
작가는 이를 간과하지 않으면서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재료와 그 재료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 기본인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았던 요소에 대한 작가의 섬세한 고찰과 실험이 시선을 끄는 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