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제목: 사물들_조각적 시도
전시 기간: 2017.1.11 ~ 2.18
전시 장소: 서울 두산갤러리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
리처드 세넷은 『장인: 현대문명이 잃어버린 생각하는 손』(김홍식 역, 21세기북스)에서 현대 기계문명에서 가치의 인식이 절하되고 있는 손, 손기술, 수공예를 만드는 제작자의 가치를 조망했다. 그리고 사람의 ‘손’은 단순히 기술을 구현하고 물건을 완성하는 도구가 아닌, 인간의 생각과 제작하는 것에 대한 가치를 온전하게 완성하는 주체라 규정했다.
이는 비단 수공업에 뿐만 아니다. 사회 전반에 두루 적용되는 가치이다. 책에서 예시를 든 정보화 사회의 산물인 컴퓨터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프로그램 구조와 실행에는 제작하는 사람의 구체적인 구현과 계획이 반영돼있다.
이런 첨단기술도 기성품에서처럼 ‘손’은 인간의 생각과 가치를 온전히 완성시키는 주체이다. 문명을 주도하는 주체가 바뀌어도 ‘손’의 역할은 변하지 않는다. 현대 미술의 한 축인 레디메이드 아트, 오브제 아트, 설치예술 등의 영역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전통시대 도자기 같은 공예품도 마찬가지다. 고려도 그렇고 조선 시대에도 도자기에 그림을 다시 그려 보수하거나(가화(加畵)자기) 손상된 도자기에 금구(金釦)를 씌워 기존의 역할을 살리거나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 경우에도 사람의 손과 거기에 담긴 생각을 통해 역할과 가치가 재부여되고 또 재탄생한다는 틀은 어찌 보면 현대 미술의 상황과 세부적으로 상통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손’의 이러한 역할과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계, 컴퓨터, 첨단기술이 주도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손’은 그 가치와 대중적 인식이 퇴색해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두산 갤러리의 ‘사물들: 조각적 시도’展은 이러한 ‘손’의 기본적 역할과 이를 통해 구현하는 가치에 집중한다. 용도, 역할, 가치, 표상 등 사물의 전통적 상징 및 쓰임이 아니라 사물에 담긴 기본적 형태와 이 형태의 본질에 대한 탐구한 의미가 가치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물 자체가 가진 통상적인 여러 쓰임 및 역할과 상징들이 결국 인간의 필요와 욕망, 사유가 근간이 되어 ‘손’으로 구현되었음을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전시작은 참여작가-문이삭, 조재영, 최고은, 황수영-의 개성을 담은 기법과 재료들이 다채롭게 활용되어 흥미롭다. 판자, 알루미늄, 에폭시 등 현대 조각과 공예에서 자주 활용되는 재료와 도구들이다. 그 외 공예 트렌드페어와 같은 경향제시형 아트페어에서 실험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3D 제작프로그램까지 등장한다. 이를 통해 사물을 기반을 한 다양한 질감과 형태, 공간 구성을 두드러지게 하여 평범한 사물에 대한 이채로운 느낌을 자아낸다.
문이삭 <세례 요한의 두상 6> 2016 ⓒ두산갤러리
문이삭 <표준 원형(지표면, 튜브, 주전자)> 2016 ⓒ두산갤러리
문이삭의 <세레 요한의 두상> <표준 원형>은 에폭시, 레진, 스티로폼 등의 소재로 다양한 형태의 근원을 보여주려 한 작품이다. 3D 제작프로그램을 사용한 이 작품은 여러 시점의 형상을 하나의 형태 안에 내재해 작업의 과정을 형상화했다.
조소작업을 할 때 측면 또는 정면을 수없이 돌려가며 수평을 맞추고 수정하고 다시 균형을 맞추고 비율을 맞춰가는 수작업의 연속을 하나의 작품 안에 담아 ‘손’으로 제작하는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탄생시켰다.
빚어내는 작업과 프로그램에 작가의 생각을 입력하는 작업에는 모두 ‘손’이라는 공통의 주체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즉 수공예와 첨단기술 사이에 작업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손의 역할이 변치 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조재영
조재영은 표상과 상징으로 꽉 차있던 전통시대 조각의 구성을 뒤집어 구현했다. 작품에는 계단과 기둥이 등장한다. 나무로 제작된 계단과 기둥에는 모란문, 당초문, 넝쿨문, 인물문 같은 문양은 보이지 않는다. 또 철이나 나무로 된 난간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뒤집은 형태를 한 계단이 중심을 이른다. 계단은 최소한의 격자무늬와 난간만을 구성해 계단이 가진 고유의 형태를 부각시켰다. 작품은 선, 면, 골격만을 그대로 표현했다. 형태는 역으로 구성해 손으로 제작하는 계단의 형태와 기능을 새롭게 밝혔다.
최고은 <토르소+물놀이> 2016 ⓒ두산갤러리
최고은과 황수연은 사물이 갖는 물성과 질감, 색채에 집중했다. 색은 사물의 표현과 구성에 빠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녀는 일상에 쓰이는 여러 가구와 가구의 형태를 구성하는 판재 그리고 거울을 주 소재로 사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녹색, 흰색, 청색이 가진 다양한 톤의 스펙트럼을 색으로 활용했다.
판재, 거울, 가구는 기성품으로도 활발하게 쓰이는 평범한 사물들이다. 여기에 색을 입히고 거울과 판재에 투영시킴으로써 색이 가진 다채로운 사물의 이미지를 찾아냈다. 그 속에서 꾸밈, 심미, 욕망, 부서진 것에 대한 보수와 같은 색의 여러 역할을 음미할 기회를 제공했다.
황수연 <더 단단한> 2014 ⓒ두산갤러리
황수연 <더 무거운> 2014 ⓒ두산갤러리
황수연은 색도 그렇지만 물성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 작가는 여러 형태를 손으로 빚었다. 구슬도 만들고 모래성도 만들면서 통상적인 상식을 뒤집어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힘을 가하면 구겨지는 알루미늄 호일을 뭉치고 빚는 작업을 반복한 것이다. 결과는 쇠구슬처럼 단단한 구슬이다. 또 조금만 툭 치면 부숴지는 모래성을 본드를 섞어 무겁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작가가 기존의 형상과 의미에 대해 색다른 방법과 재료를 적용해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구현한 것이다. 작품에는 재료의 성질과 그 성질을 활용한 손의 역할이 담겨있다.
기계문명이 발달하고 첨단산업이 더욱 발전한다해도 ‘손’의 기본적인 역할과 그에서 비롯하는 수공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역할이 좀 더 전면에 부각되는지 또는 일상에 더 효율적으로 활용되는지에 대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또 과거와 같은 제작기법으로 만들더라도 현대의 트렌드가 반영되는지 아니면 과거의 전통적 표상이 씌워지는지에 대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는 이분법적으로 현대와 전통으로 나누기보다는 과거를 잇고 현재를 반영하는 오늘의 문화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그런 점에서 사물에 대한 오늘날의 인식과 과거부터 이어온 ‘손’의 역할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기회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