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제목: 여름나기 – 맛, 멋, 쉼
전시장소: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 Ⅱ, 야외전시장 오촌댁
전시기간: 2016.7.20.–8.22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찜통 같은 날씨와 주변을 감싸는 여름의 습한 공기는 짜증을 유발하기 충분하다. 시원한 소나기조차 제대로 내리지 않는 요 며칠의 날씨는 여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추운 겨울, 서늘하고 화사한 봄, 가을과 함께, 여름 역시 자연스럽게 지나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여름이 무조건 짜증과 불쾌지수만 유발하는 시간은 아니다.
이 더위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물놀이, 더위를 이기기 위해 즐기는 음식들, 풍성한 과일, 어느 때보다 짙은 자연의 신록. 더위와 함께 찾아오는 풍성한 자연의 선물과 먼 옛날부터 차곡차곡 생활에 축적된 ‘여름나기’를 위한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과 풍속들은 더위를 즐길 수 있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전시 전경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립민속박물관 기획전시실Ⅱ와 야외전시장 오촌댁에서 진행되고 있는 ‘여름나기-맛, 멋, 쉼’전은 다양한 여름나기의 방법 가운데 ‘음식’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여름 이야기를 풀어간다. 국립민속박물관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함께 주관한 이번 전시는 한식에 내재된 여름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맛의 공간’, ‘멋의 공간’, 두 갈래의 커다란 줄기를 중심으로, 20세기 이전의 유물과 현대 공예, 영상, 체험 등 유기적이고 입체적인 전시 언어로 관람객에게 유쾌하게 전달한다.
‘여름’의 음식하면 각 지방에서 발달한 고유의 시원한 ‘찬’과 ‘면’을 시작으로, 여름을 이겨내기 위한 다채로운 보양식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입에서 입으로 구전을 통해 조리법과 풍습이 전해지기도 하고, 이를 정리한 책을 통해 막연하게 떠올랐던 형태들이 명료하게 완성되어 우리에게 전해지기도 한다.
‘맛의 공간’ 입구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음식디미방』과 식문화 관련 유물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가마솥과 아궁이, 부엌에 서있는 어머니의 모습. ‘맛의 공간’은 디지털 영상으로 구성된 부엌과 음식을 조리하는 일상의 풍경에서 출발한다. 조선시대에 사용된 찬합과 여러 가지 식기와 물질들은 1670년 정부인 안동 장씨가 쓴 조리서 『음식디미방』을 감싸고 있다.
전시는 부엌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기물과 함께, 이문열의 소설 『선택』으로도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이 『음식디미방』을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부엌이라는 공간과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평범한 일상’임은 물론, 우리의 전통이 내재된 문화임을 환기시킨다.
‘멋의 공간’, 대청마루의 여름 상차림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시원한 대청마루에 맛있게 한상 그득 차려진 음식들. 음식을 즐기며 더위를 이겨내는 생활의 공간을 그대로 재현한 ‘멋의 공간’의 출발은 인상적이다. 현대공예작가들의 작품과 한식연구가들의 연구를 통한 구성으로 재현된 이 공간은 삼계탕을 비롯한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사랑받는 보양식의 상차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식재료들도 함께 풍성하게 놓여있어, 이들이 일상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물질들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그 근본은 고스란히 간직한 채 현재에 이르렀음을 암시한다. ‘삼계탕’이라는 음식과 ‘보양식’이라는 전통의 본질은 그대로지만 지금은 소반이 아닌 식탁에 올려놓고 먹는 것처럼.
찬방 모습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찬방 모습 ⓒ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상차림의 공간을 지나면 ‘찬방’에 다다른다. ‘멋의 공간’의 또 다른 주요 공간인 찬방은 각종 식기와 소반, 술병 등 음식을 차리고 보관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각종 물건들이 놓여있던 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여기에는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유물은 물론, 현대작가들이 제작한 소반, 도자기, 유기 등 각종 공예 작품들이 함께 이질감 없이 놓여 있다.
또한 ‘감자통’, ‘쌀통’ 등 지역에 따라 다른 전통 저장용구가 원래 사용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찬방에 놓여있어, 지역의 특징에 따른 공예품의 면모와 본래의 용도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실을 나오면 야외 전시공간 ‘오촌댁’과 마주한다. 오촌댁에는 현대도예작가 이인진의 작품이 곳곳에 공간에서의 활용에 맞춰 전시되어 있다.
‘음식’은 우리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삼시세끼. 정말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된 음식과 음식을 둘러싼 여러 요소들은 적재적소에서 다채로운 음식 문화와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번 전시는 ‘음식’ 그 자체와 음식의 조리와 상차림, 음미, 보관으로 대변되는 ‘생활’과 식기, 소반, 보관용구 등의 ‘물질’, 이를 실제로 향유하고 활용하는 ‘공간’이 전시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전시를 구성하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전통시대부터 현재를 관통하는 ‘생활문화’였음을, 다채로운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우리의 일상이었음을 보여 준다. 덥고 짜증나는 여름을 버티며 생활공간에서 음식과 술, 다양한 행위를 통해 즐기는 ‘여름나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