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소마 인사이트_지독한 노동전
전시기간 : 2016.3.18.-5.29
전시장소 : 서울 소마미술관
글: 김세린(공예평론가)
작품에는 작가가 자신의 정신을 담고 표출하기 위해 행하는 행위와 기술이 담겨있다. 모티브가 되는 장소에서의 사생, 불현듯 떠오른 영감에서 비롯되는 열정적인 드로잉과 작업 등 모든 것은 작품 속에서 작가의 신체적, 정신적인 활동으로 나타난다. 작가의 이런 활동들은 밀도 짙게 쌓이는 지층처럼 작가 자신의 삶과 정신을 드러낸다.
‘소마 인사이트_지독한 노동’전은 작가의 생각이 펼쳐지는 작품의 제작과정에 초점을 맞춘 전시이다. 전시에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작업 행위와 그리고 이를 위한 조사, 사생, 기록 등의 과정이 전면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시는 작가의 ‘예술’ ‘정체성’은 단순한 것이 아닌 끊임없는 정신적 사유와 육체적 노동(수공 작업)이 쌓여 이뤄진 것임을 단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서해영 <산에서 조각하기>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4년 ⓒ 소마미술관
출품작에는 예술로서 제작되는 과정을 상세히 소개한다는 기획에 따라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공간과 행위가 그대로 나타난 작업들이 다수 포함돼있다. 자신의고민을 등산, 답사, 사생을 통해 해결하고자 하며 한편으로 장기 프로젝트로 이를 작업으로 기록하는 서해영의 <산에서 조각하기>(2012년부터 현재까지 진행중)를 비롯해 8명 작가의 작품 30점이 소개중이다.
이세경 <작가의 부산물> 가변크기 혼합매체 2012년 ⓒ 소마미술관
공예를 소재로 한 작업은 이세경의 <작가의 부산물>이다. 이 작업은 작가가 활동하는 작업공간에서 시작된다. 그 공간은 작가가 작업을 하다 빠져나간 것을 사진으로 찍은 것처럼 정지돼있다. 작품 가운데 작업대가 있다. 작업대에는 흑칠 바탕 위에 여러 색상의 머리카락을 붙여 문양을 완성하는 미완의 작업과 이런 행위를 도와주는 접착제가 놓여있다. 주변의 선반과 벽에는 청화백자, 채회백자 그리고 흑칠과 금채로 완성된 마키에(蒔繪), 채회칠기(彩繪漆器) 등 다양한 공예품이 배치돼있다.
이세경은 오랫동안 머리카락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해왔다.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과 신체에서 떨어져 나온 머리카락. 본질은 같지만 시각에 따라 달라진 머리카락에 대한 인식과 가치를 수공예적 작업을 통해 ‘아름다움’이란 개념으로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이세경 <작가의 부산물>(세부 1, 2) ⓒ 소마미술관
이세경은 완성된 ‘머리카락’ 작품보다 주변의 사물과 작업 도구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작가의 의도 내지는 정신을 보여준다. 즉 주변에 놓인 사물들은 ‘아름답다는 생각과 인식에 대한 고민의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작업도구와 작업대 그리고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들은 작가의 생각이 오랜 시간을 거쳐 그리고 노동과 함께 완성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전시는 작가와 작가, 그리고 그의 정신과 예술이 어느 한 순간에 혹은 단순한 천재성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자본주의적 시각에서 ‘돈’과 ‘시간’이라는 잣대로만 이들을 평가할 수 없음도 함께 시사해준다.
작가는 자신의 작가적 정신과 예술을 완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고뇌하며 또 육체적인 노동을 이어간다. 이 고단한 작업은 물질적인 가치로 쉽게 평가할 수도 없고 아울러 평가받을 수도 없다. 이들은 스스로가 지닌 열정과 선택으로 이를 지속하는 것이다. 시대를 반영한 작가 정시과 예술 그리고 작품을 통한 소통의 의지가 이 고단함을 지탱하게 하는 든든한 힘일 것이다.(*)